□ 동방의 부처님 아촉불(阿皾佛)과 보당불(寶幢佛)
○ 동방의 부처님, 아촉불
서녘 하늘의 노을이 마음의 안식과 평화를 준다면 동쪽 하늘의 태양은 희망과 용기와 새날을 약속한다. 동쪽 나라에는 언제나 새 생명과 희망이 용솟음친다. 거기에는 새 출발이 있으며 미래에 대한 기대로 울렁거리는 설레임이 있다.
아촉불, 그 분은 동쪽 나라의 부처님이다. 산스크리트 명은 악쇼브야 붓다(Aksobhya Buddha). 악소브야란 흔들리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래서 부동불(不動佛), 무동불(無動佛)이요, 동요하지 않으므로 결코 분노하지 않는 무노불(無怒佛)이라 의역된다.
그러나 그것은 움직임이 없는 고정물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동요하거나 머뭇거리지 않는 불퇴전(不退轉)의 용맹성을 뜻한다. 진리의 세계로 향하는 구도자에게 아촉불은 '흔들림이 없는' 굳센 믿음을 부여하는 것이다.
그 아촉불의 유래를 살펴보자.
이 세계에서 동쪽으로 1천의 불국토를 지나면 아비라타(Abhirata)라는 나라가 나온다. 일찍이 그 나라에는 대일여래가 출현하여 주존(主尊)으로 계셨다. 당시 한 수행자가 대일여래를 모시고 있었는데, 그는 그 여래 앞에서 보살행을 닦고 일체지(一切智)를 구하며 성냄, 애욕의 마음, 성문(聲聞), 연각(緣覺)의 마음을 일으키지 않겠노라고 원을 세웠다. 그리하여 열심히 수행한 끝에 '아촉'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나아가 그는 출가자로서 계행을 지킬 것을 서원하고 철저히 실천 수행하여 마침내 깨달음을 이루어 그 세계에 머물면서 설법하고 있다고 한다.
아비라타는 선쾌(善快), 환희(歡喜), 묘락(妙樂)이라는 의미며 아비라제(阿比羅提)로 음역된다. 그래서 동쪽에 있는 아촉불의 세계를 동방 묘희국(妙喜國)이라 했다.
그 국토는 쾌적하고 음욕, 악, 병과 추함이 없으며 여인에게는 생리로 인한 고통이 없다. 이 아촉불이 밀교 금강계 만다라 중대팔엽원(中臺八葉院)의 동쪽 방향의 부처님으로 등장한다. 금강계 만다라에서 아촉불은 깨달음으로 향하고자 하는 발심(發心)을 표현하는 부처님으로 그려진다.
이 부처님은 크고 밝은 거울과 같은 지혜인 대원경지(大圓鏡智)를 보여주며 색상은 불법의 가치를 더욱 빛나게 한다는 의미에서 청색을 하고 있다. 사방불에서의 수인은 항마촉지인이다.
태장계 만다라에서 동쪽의 부처님은 보당불(寶幢佛)로 나타나는데 이도 역시 깨달음으로 향하고자 하는 희망찬 발보리심(發菩提心)을 상징하는 부처님으로 정의된다.
대일경소(大日經疏)에서 나타난 그의 특징적인 모습을 살펴보겠다.
동방의 보당여래를 관하라. 새벽에 처음 나타나는 붉은 태양과 같지 않은가. 보라, 보당여래는 발보리심을 상징한다. 예를 들면 장병들을 통솔하는 장군과 같아서 당기와 지휘봉으로 전체와 부분을 잘 다스려 적군을 물리치는 것처럼 이 보당여래도 만행(萬行)을 실천할 때 일체지(一切智)의 원력으로 당기를 삼아 보리수 아래서 사마(邪魔)의 무리를 항복시킨다.
이렇듯 보당불은 보리심을 일으켜 일체지인 지혜의 횃불을 밝혀 모든 분별 망상의 티끌과 때를 태워 없애 버리는 작업을 충실히 수행해 내고 있다.
아촉불 역시 우리를 진리의 세계로 인도하는 희망과 굳건한 용기를 상징하는 부처님이다. 그 명호를 마음으로 간절히 부르면 분노가 사라지고 동요됨이 없는 굳건한 보리심을 내는 공덕이 생긴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보생불과 아촉불 보다는 약사여래를 강력한 동방의 부처님으로 섬겨 왔다.
○ 아촉불과 아미타불
아촉불이 계신 동방 묘희국에 태어나려는 신앙이 아촉 신앙이다. 이 아촉 신앙은 서방 정토에 태어나려는 아미타 신앙과 더불어 사람들로부터 많은 인기를 끌었던 타방 정토 신앙이었다.
이러한 타방불 신앙은 부처님 부재의 무불(無佛)의 시대에 고통에서 신음하던 일반 민중이며 깨달음을 구하는 구도자들의 탄식과 원에 대한 응답으로 그들의 마음 자리에 희망이라는 가슴 벅찬 희열을 심어 주었다.
아촉불과 아미타불은 모두 청정한 국토를 건설하였으며, 그들 나라에 태어나는 자는 항상 부처님 가까이서 상호(相好)를 뵈옵고 당신께서 설하는 법을 직접 들을 수 있으므로 수행이 진전되어 깨달음을 얻는 것이 빠르기 때문이다.
이렇듯 아촉 신앙과 아미타 신앙은 도솔천 상생 신앙과 더불어 타방 국토에 왕생하려는 대표적인 신앙인데 아촉 신앙이 아미타 신앙보다 일찍 성립했을 것이라고 학자들은 주장한다. 그 이유로서는 아촉불의 본원과 정토의 관념이 아미타불의 그것들보다 미숙하고 소박하다는 점(엄밀히 말해서 동방 묘희 세계는 아촉의 스승인 대일 여래의 불국으로 아미타불의 극락처럼 새롭게 건설된 국토가 아니다. 게다가 아촉불의 본원은 이타적 측면, 지옥에 떨어질 악인도 구제 받는다는 철저한 회심과 그로 말미암은 강한 타력 구제의 측면이 결여되어 있다), 동방을 중요시하는 인도적 그밖에 아촉불이 초기 대승경전인 유마경과 반야경에는 언급되고 있는데, 이러한 대승경전에 아미타불이 등장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 아촉 신앙이 아미타 신앙보다 먼저 성립했으리라는 추측이다.
어쨌든 아촉불이 발보리심을 상징하며 깨달음으로 향하는 수행자들의 마음을 안정시켜 준다고 해서, 그리고 아촉불을 신앙함으로써 마음이 선해지고 기뻐지며 말할 수 없는 환희의 세계를 맛본다고 하여 예전에는 많은 인기를 끌었던 신앙이 이 아촉 신앙이라고 한다.
두터운 무명의 껍질, 아집의 껍질을 벗겨 내어 진리의 밝은 빛을 드러내는 작업은 사실 영겁으로도 채울 수 없는 기간이 소요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요한 것은 진리의 세계로 향하고자 하는 첫걸음이다. 아촉불과 보당불은 진리로 향하고자 하는 우리의 진취적인 마음이며, 그러한 마음들이 일구어 온 동쪽 나라에 머물고 있는 님, 희망의 부처님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