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귀거래사 / 도연명
자, 돌아가자.
고향 전원이 황폐해지려 하는데 어찌 돌아가지 않겠는가.
지금까지는 고귀한 정신을 육신의 노예로 만들어 버렸다.
어찌 슬퍼하여 서러워만 할 것인가.
이미 지난 일은 탓해야 소용없음을 깨달았다.
앞으로 바른 길을 쫓는 것이 옳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인생길을 잘못 들어 헤맨 것은 사실이나,
아직은 그리 멀지 않았다.
이제는 깨달아 바른 길을 찾았고,
지난날의 벼슬살이가 그릇된 것이었음을 알았다.
※ 내자가추(來者可追)
과거의 일은 어찌할 수 없지만 미래의 일은 잘 할 수 있다
자리를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도연명(陶淵明)도 그런 심정이었을까. 도연명은 순시하는 상관을 의관을 갖추고 영접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을 알고 오두미(五斗米) 때문에 함부로 머리를 숙일 수 없다고 하며 그 날로 벼슬을 버리고 은둔했다. 돌아오는 심경을 시로 남겼으니 그 유명한 ‘귀거래사(歸去來辭)’다. 그 가운데 이런 내용이 있다.
“이미 지난 일은 탓해야 소용없음을 깨달았다(悟己往之不諫), 앞으로의 일은 아직 쫓을 수 있음을 알았노라(知來者之可追). 내가 인생길을 잘못 들어 헤맨 것은 사실이나, 아직 그리 멀리 가지 않았다(實迷塗其未遠). 이제야 오늘이 맞고 어제가 틀렸음을 깨달았노라(覺今是而昨非).”
여기서 ‘來者可追(내자가추)’라는 말이 유래됐다. 이미 지나간 일은 어쩔 수 없으니 앞으로의 일을 조심하면 지금까지와 같은 잘못은 범하지 않을 수 있음을 이르는 말이다. 늘 지나간 일은 어쩔 수 없으니 앞으로 잘 하자고 하는데 그게 쉽지 않다.
배는 흔들흔들 가볍게 흔들리고
바람은 한들한들 옷깃을 스쳐가네,
길손에게 고향이 예서 얼마나 머냐 물어 보며,
새벽빛이 희미한 것을 한스러워한다.
마침내 저 멀이 우리 집 대문과 처마가 보이자
기쁜 마음에 급히 뛰어갔다.
머슴아이 길에 나와 나를 반기고
어린 것들이 대문에서 손 흔들어 나를 맞는다.
뜰 안의 세 갈래 작은 길에는 잡초가 무성하지만,
소나무와 국화는 아직도 꿋꿋하다.
어린 놈 손 잡고 방에 들어오니,
언제 빚었는지 항아리엔 향기로운 술이 가득,
술단지 끌어당겨 나 스스로 잔에 따라 마시며,
뜰의 나뭇가지 바라보며 웃음 짓는다.
남쪽 창가에 기대어 마냥 의기 양양해하니,
무릎 하나 들일 만한 작은 집이지만 이 얼마나 편한가.
날마다 동산을 거닐며 즐거운 마음으로 바라본다.
문이야 달아 놓았지만 찾아오는 이 없어 항상 닫혀 있다.
지팡이에 늙은 몸 의지하며 발길 멎는 대로 쉬다가,
때때로 머리 들어 먼 하늘을 바라본다.
구름은 무심히 산골짜기를 돌아 나오고,
날기에 지친 새들은 둥지로 돌아올 줄 안다.
저녁빛이 어두워지며 서산에 해가 지려 하는데.
나는 외로운 소나무를 어루만지며 서성이고 있다.
돌아왔노라.
세상과 사귀지 않고 속세와 단절된 생활을 하겠다.
세상과 나는 서로 인연을 끊었으니,
다시 벼슬길에 올라 무엇을 구할 것이 있겠는가.
친척들과 정담을 나누며 즐거워하고,
거문고를 타고 책을 읽으며 시름을 달래련다.
농부가 내게 찾아와 봄이 왔다고 일러 주니,
앞으로는 서쪽 밭에 나가 밭을 갈련다.
혹은 장식한 수레를 부르고,
혹은 한 척의 배를 저어
깊은 골짜기의 시냇물을 찾아가고
험한 산을 넘어 언덕을 지나가리라.
나무들은 즐거운 듯 생기있게 자라고,
샘물은 졸졸 솟아 흐른다.
만물이 때를 얻어 즐거워하는 것을 부러워하며,
나의 생이 머지 않았음을 느낀다.
아, 이제 모든 것이 끝이로다!
이 몸이 세상에 남아 있을 날이 그 얼마이리.
어찌 마음을 대자연의 섭리에 맡기지 않으며,
이제 새삼 초조하고 황망스런 마음으로 무엇을 욕심낼 것인가.
돈도 지위도 바라지 않고,
죽어 신선이 사는 나라에 태어날 것도 기대하지 않는다.
좋은 때라 생각되면 혼자 거닐고,
때로는 지팡이 세워 놓고 김을 매기도 한다.
동쪽 언덕에 올라 조용히 읊조리고,
맑은 시냇가에서 시를 짓는다.
잠시 조화의 수레를 탔다가 이 생명 다하는 대로 돌아가니,
주어진 천명을 즐길 뿐 무엇을 의심하고 망설이랴.
이름은 잠(潛). 호는 오류선생(五柳先生). 연명은 자이다. 동진(東晉) 말기부터 남조(南朝)의 송(宋:劉宋이라고도 함) 초기에 걸쳐 생존했다.
강주(江州) 심양군(尋陽郡:지금의 장시 성[江西省] 주장[九江]) 시상현(柴桑縣:지금의 싱쯔 현[星子縣])에서 태어났다. 그의 가문은 대대로 남방의 토착 사족(士族)으로, 북조로부터 내려온 귀족이 절대적 실권을 장악하고 있던 당시의 남조 사회에서는 영달의 길에서 소외된 압박받는 계층이었다. 그러나 도연명이 평생 동경했던 증조부 도간(陶侃:259~334)은 동진 초에 장사군공(長沙郡公)·대사마(大司馬:최고군사령관)까지 승진했고, 할아버지 도무(陶茂)도 무창(武昌)의 태수(太守)로 재임했다. 그러나 아버지는 은둔생활을 했기 때문에 이름조차 알려져 있지 않다. 어머니는 정서대장군(征西大將軍) 환온(桓溫)의 장사(長史:막료장)였던 맹가(孟嘉)의 넷째 딸이었다. 도연명은 그 사이에서 태어난 외동아들이었던 것 같다. 도연명의 첫번째 관료생활은 29세 때 자기가 살고 있던 강주의 좨주(祭酒:州의 교육장)로 취임한 것이었으나 곧 사임했다. 2번째 관료생활은 35세 때 당시 진(晉)나라 최대 북부군단(北府軍團)의 진군장군(鎭軍將軍)인 유뢰지(劉牢之)의 참군(參軍:참모)으로 취임한 것인데 이것 역시 곧 그만두었다. 3번째는 유뢰지의 휘하를 떠난 직후, 36~37세 무렵 형주(荊州:지금의 장링[江陵]) 자사(刺史) 환현(桓玄)의 막료로 취임한 것이다. 그러나 며칠 안되어 모친상을 당해 고향인 심양으로 돌아가 3년상을 치렀다. 이후 강주자사·참군 및 팽택(彭澤) 현령(縣令) 등의 관료생활은 고향에서 가까운 심양군 안에서 지냈다.
도연명이 10여 년에 걸친 관료생활을 최종적으로 마감하고 은둔생활에 들어간 시기는 의희(義熙) 원년(405) 11월 41세 때였다. 그는 팽택 현령이 된 지 겨우 80여 일 만에 자발적으로 퇴관했다. 퇴관의 결정적인 동기에 관해서는 다음의 유명한 일화가 있다. 그해말에 심양군 장관의 직속인 독우(督郵:순찰관)가 순찰을 온다고 하여 밑의 관료가 "필히 의관을 정제하고 맞이 하십시오" 하고 진언했더니, 도연명은 "오두미(五斗米:월급) 때문에 허리를 굽혀 향리의 소인을 섬기는 일을 할 수 있을손가"라고 말한 뒤 그날로 사임하고 집에 돌아갔다고 한다(〈宋書〉 隱逸傳). 또 한편으로 이때의 사퇴 동기에 관해서 도연명 자신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취임해서 어느 정도 되자 집에 돌아가고 싶은 기분이 들었지만 그럭저럭 벼가 익거든 빠져나가려고 생각하던 차에 누이의 부음이 들려오자 조금도 참을 수 없게 되어 스스로 사임하고 집에 돌아왔다"(〈歸去來辭〉 序). 이때 나온 작품이 유명한 〈귀거래사〉·〈귀전원거오수 歸田園居五首〉이다.
이리하여 도연명은 이후 죽을 때까지 20여 년 간 은둔생활에 들어갔다. 고향에 은거한 지 3년째 되는 해에 갑작스런 화재로 생가가 타버리자 그는 일가를 거느리고 고향을 떠나 주도인 심양의 남쪽 근교에 있는 남촌(南村:또는 南里)으로 이사해서 그곳에서 만년을 보내게 되었다. 이사한 후 술을 좋아하던 그는 차츰 빈궁한 생활로 접어들었다. 그러나 이사를 함으로써 잃어버린 것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는 강주의 장관 왕홍(王弘)을 비롯해서 은경인(殷景仁)·안연지(顔延之) 등 많은 관료·지식인과 친교를 맺을 수 있었다. 그가 후세에 이름을 남길 수 있었던 것도 후에 남조 송의 내각과 문단의 지도자가 된 왕홍과 안연지를 친구로 두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도연명의 시문으로 현재 남아 있는 것은 4언시(四言詩) 9수, 5언시 115수, 산문 11편이다. 이중 저작연대가 명확한 것이나 대강 알 수 있는 것은 80수뿐이다. 그밖의 것은 중년기 이후, 즉 그가 은둔생활을 보낸 약 20여 년 간에 지어진 것으로 추측된다.
※ 歸去來辭(귀거래사)
歸去來兮 (귀거래혜) 돌아가야지
田園將蕪胡不歸 (전원장무호불귀) 논밭이 묵는데 어이 아니 돌아가리
旣自以心爲形役 (기자이심위형역) 스스로 마음이 몸의 부림 받았거니
奚추창而獨悲 (해추창이독비) 어찌 홀로 근심에 슬퍼하고 있으리
悟已往之不諫 (오이왕지불간) 지난날은 돌릴 수 없음을 알았으니
知來者之可追 (지래자지가추) 이에 앞으로는 그르치는 일 없으리
實迷途其未遠 (실미도기미원) 길이 어긋났으나 멀어진 건 아니니
覺今是而昨非 (각금시이작비) 지난 날은 그렀고 이제부터 바르리
舟遙遙以輕야 (주요요이경양) 고운 물결 흔들흔들 배를 드놓이고
風飄飄而吹衣 (풍표표이취의) 바람 가벼이 불어 옷자락을 날리네
問征夫以前路 (문정부이전로) 지나는 이에게 앞길 물어 가야하니
恨晨光之熹微 (한신광지희미) 희미한 새벽빛에 절로 한숨이 나네
乃瞻衡宇 (내첨형우) 어느덧 이르러 집이 바라다 보이니
載欣載奔 (재흔재분) 기쁜 마음에 달리듯이 집으로 가네
동僕歡迎 (동복환영) 사내아이 종 나와 반가이 맞이하고
稚子候門 (치자후문) 어린 아들 문 앞에 기다려 서 있네
三徑就荒 (삼경취황) 세 갈래 오솔길에 잡초 우거졌어도
松菊猶存 (송국유존) 소나무와 국화는 그대로 남아 있네
携幼入室 (휴유입실) 어린 아들 손잡고 방으로 들어서니
有酒盈樽 (유주영준) 술항아리 가득히 술이 나를 반기네
引壺觴以自酌 (인호상이자작) 술병과 술잔 끌어당겨 혼자 마시며
眄庭柯以怡顔 (면정가이이안) 뜰의 나무를 지그시 보며 미소짓네
倚南창以寄傲 (의남창이기오) 남쪽 창에 기대어 멋대로 있노라니
審容膝之易安 (심용슬지이안) 작디작은 방이지만 편하기 더 없네
園日涉以成趣 (원일섭이성취) 정원은 매일 거닐어도 풍치가 있고
門雖設而常關 (문수설이상관) 문은 나 있으나 늘 닫아 두고 있네
策扶老以流憩 (책부노이류게) 지팡이 짚고 가다가는 쉬기도 하고
時矯首而遐觀 (시교수이하관) 때로는 머리 들어서 멀리 바라보네
雲無心以出岫 (운무심이출수) 구름은 무심히 골짝을 돌아 나오고
鳥倦飛而知還 (조권비이지환) 날다 지친 저 새 돌아올 줄을 아네
景예예以將入 (경예예이장입) 저 해도 어스름에 넘어가려 하는데
撫孤松而盤桓 (무고송이반환) 서성이며 홀로 선 소나무 쓰다듬네
歸去來兮 (귀거래혜) 돌아왔네
請息交以絶遊 (청식교이절유) 사귐도 어울려 놀음도 이젠 그치리
世與我而相違 (세여아이상위) 세상과 나는 서로 어긋나기만 하니
復駕言兮焉求 (복가언혜언구) 다시 수레에 올라서 무엇을 구하리
悅親戚之情話 (열친척지정화) 친한 이웃과 기쁘게 이야기 나누고
樂琴書以消憂 (낙금서이소우) 음악과 글을 즐기며 시름을 삭이리
農人告余以春及 (농인고여이춘급) 농부가 나에게 봄이 왔음을 알리니
將有事於西疇 (장유사어서주) 서쪽 밭에 나가서 일을 하여야겠네
或命巾車 (혹명건차) 때로는 천막을 두른 수레를 몰아서
或棹孤舟 (혹도고주) 때로는 외로운 배의 삿대를 저어서
旣窈窕以尋壑 (기요조이심학) 깊고 굽이져 있는 골짝을 찾아가고
亦崎嶇而經丘 (역기구이경구) 험한 산길 가파른 언덕길을 지나네
木欣欣以向榮 (목흔흔이향영) 물오른 나무들은 꽃을 피우려 하고
泉涓涓而始流 (천연연이시류) 샘물은 퐁퐁 솟아 졸졸 흘러내리네
善萬物之得時 (선만물지득시) 모두가 철을 만나 신명이 났건마는
感吾生之行休 (감오생지행휴) 나의 삶 점점 더 저물어 감 느끼네
已矣乎 (이의호) 다 끝났네
寓形宇內復幾時 (우형우내복기시) 세상에 몸이 다시 얼마나 머무르리
曷不委心任去留 (갈불위심임거류) 가고 머뭄을 자연에 맡기지 않고서
胡爲乎遑遑欲何之 (호위호황황욕하지) 어디로 그리 서둘러 가려 하는가
富貴非吾願 (부귀비오원 ) 부귀는 내가 바라던 바도 아니었고
帝鄕不可期 (제향불가기) 신선 사는 땅은 기약할 수 없는 일
懷良辰以孤往 (회양진이고왕) 날씨 좋기 바라며 홀로 나아가서는
或植杖而耘자 (혹식장이운자) 지팡이 세워두고 김 매고 북돋우네
登東皐以舒嘯 (등동고이서소) 언덕에 올라가서 길게 휘파람 불고
臨淸流而賦詩 (임청류이부시) 맑은 시냇가에 앉아 시도 지어보네
聊乘化以歸盡 (요승화이귀진) 자연을 따르다 죽으면 그만인 것을
樂夫天命復奚疑 (낙부천명복해의) 천명을 누렸거늘 더 무엇 의심하리
歸園田居 基一 (귀원 전거 1)
少無適俗韻 (소무적속운) 어려서부터 세속과 어울리는 기풍이 없어,
性本愛丘山 (성본애구산) 성품은 본시 산의 언덕을 사랑하였는데,
誤落塵網中 (오락진망중) 잘못하여 더러운 그물에 떨어진 채로,
一去三十年 (일거삼십년) 삽십년이 단숨에 흘렀다.
羈鳥戀舊林 (기조연구림) 갇힌 새는 옛 숲을 그리워하고,
池魚思故淵 (지어사고연) 못 속 물고기는 옛 연못을 생각하는 법,
開荒南野際 (개황남야제) 남쪽 들 언저리에서 황무지를 개간하며,
守拙歸園田 (수졸귀전원) 졸박함을 지키려 전원으로 돌아왔다.
方宅十餘畝 (방택십여무) 네모난 택지 십여 무,
草屋八九間 (초옥팔구간) 초가집 팔구 간,
楡柳蔭後詹 (유류음후첨) 느릅나무, 버드나무 뒷처마에 그늘 지우고,
桃李羅堂前 (도리나당전) 복사나무와 오얏나무 집 앞에 늘어서 있다.
曖曖遠人村 (애애원인촌) 먼 마을 어슴프레한데,
依依墟里煙 (의의허리연) 동네에선 연기가 하늘하늘 피어오른다.
狗吠深巷中 (구폐심항중) 깊은 골목에서 개가 짖고,
鷄鳴桑樹顚 (계명상수전) 뽕나무 꼭대기에서는 닭이 운다.
戶庭無塵雜 (호정무진잡) 뜰에는 더럽거나 잡스런 것이 없고,
虛室有餘閒 (허실무여한) 빈방에는 한가로움이 넘친다.
久在樊籠裏 (구재번농리) 오랫동안 새장 속에 있다가,
復得返自然 (복득반자연) 다시 자연으로 돌아올 수 있게 되었음이여!
歸園田居 基二 (귀원전거 2)
野外罕人事 (야외한인사) 시골이라 인적이 드물고,
窮港寡輪앙 (궁항과윤앙) 궁벽한 곳이라 오가는 수레가 드물다.
白日掩荊扉 (백일엄형비) 한낮에도 사립문 굳게 닫여 있고,
虛室絶塵想 (허실절진상) 텅 빈 집은 속세을 끊었네.
時復墟曲中 (시부허곡중) 이무렵 옛 마을로 다시 돌아와,
披草共來往 (피초공내왕) 풀섶을 헤치고 함께 오간다.
相見無雜言 (상견무잡언) 서로 만나서 헛된 말 없으며,
但道桑麻長 (단도상마장) 다만 서로 농사일만 묻는다.
桑麻日已長 (상마일이장) 뽕잎과 삼줄기는 날마다 자라나고,
我土日已廣 (아토일이광) 나의 밭은 하루하루 넓어져 간다.
常恐霜霰至 (상공상선지) 다만 걱정스런건 서리나 싸락눈 갑자기 닥쳐,
零落同草莽 (영락동초망) 풀더미와 더불어 같이 시들어버리는 것이다.
歸園田居 基三 (귀원전거 3)
種豆南山下 (종두남산하) 남산 아래 밭에다 콩을 심으니,
草盛豆苗熹 (초성두묘희) 잡초만 무성하고 콩의 싹은 드물다.
晨興理荒穢 (침신이황예) 새벽같이 일어나 황무지를 일구다가,
帶月荷조歸 (대월하서귀) 달빛 속에 괭이 메고 집으로 돌아간다.
道狹草木長 (도협초목장) 길은 좁고 풀은 높게 자라,
夕露霑我衣 (석로첨아의) 저녁 이슬 나의 옷깃 적신다.
衣霑不足惜 (의첨부족석) 옷 적셔지는 건 아까울 것 없지만,
但使願無違 (단사원무위) 다만 바라는 건 농사가 잘 되는 것.
歸園田居 基四 (귀원전거 4)
久去山澤遊 (구거산택유) 오랜만에 산과 못에 가 노닐며
浪莽林野娛 (낭망임야오) 넓은 숲과 들판을 마냥 즐기네
試携子姪輩 (시휴자질배) 자식과 조카들 손에 손을 잡고
披榛步荒墟 (피진보황허) 덤불 헤쳐 황폐한 마을로 가네
徘徊邱壟間 (배회구롱간) 언덕 위 무덤 사이 서성이려니
依依昔人居 (의의석인거) 옛 사람의 거처가 어렴풋하여라.
井조有遺處 (정조유유처) 우물과 부엌 터는 흔적만 남고
桑竹殘朽株 (상죽잔후주) 뽕나무와 대나무도 그루터기뿐
借問採薪者 (차문채신자) 나무하는 사람에게 물어 보나니
此人皆焉如 (차인개언여) 여기 사람들 모두 어찌 되었오.
薪者向我言 (신자향아언) 나무하는 이 나에게 하는 말이
死沒無復餘 (사몰무부여) 모두 죽어서 남은 이가 없다오
一世異朝市 (일세이조시) 한 세대에 세상 바뀐다 하더니
此語眞不虛 (차어진불허) 이 말은 참으로 빈말이 아니네
人生似幻化 (인생사환화) 인생은 환상인 양 변하여 가니
終當歸空無 (종당귀공무) 끝내는 공과 무로 다시 가누나.
歸園田居 基五 (귀원전거 5)
창恨獨策還 (창한독책환) 비통함에 홀로 지팡이 짚고 돌아와
崎嶇歷榛曲 (기구역진곡) 잡목 덤불 우거진 구비를 지나네
澗水淸且淺 (간수청차천) 산골의 맑은 물은 얕게도 흘러서
可以濯吾足 (가이탁오족) 더럽혀진 나의 발을 씻을 만하네
녹我新熟酒 (녹아신숙주) 담근 술이 익어 처음으로 거르니
隻계招近屬 (척계초근속) 닭 한마리 가까이 무리를 부르네
日入室中闇 (일입실중암) 산 넘어 해는 지고 방 안 어두워
荊薪代明燭 (형신대명촉) 나뭇단 불지펴 촛불 대신 밝히네
歡來苦夕短 (환내고석단) 즐거운 마음에 저녁 짧음 괴로워
已復至天旭 (이복지천욱) 벌써 아침 하늘이 훤히 밝아오네
歸園田 (귀원전)
種苗在東皐 (종묘재동고) 동 쪽 물가에 씨앗을 심었더니
苗生滿阡陌 (묘생만천맥) 고랑 고랑 무성히 싹이 돋았네
雖有荷鋤倦 (수유하서권) 호미질 비록 힘이 들기는 해도
濁酒聊自適 (탁주료자적) 탁주 힘을 빌어 스스로 즐기네
日暮巾柴車 (일모건시거) 날 저물어 섶나무 수레를 덮고
路暗光已夕 (노암광이석) 길이 어두우니 빛은 이미 저녁
歸人望煙火 (귀인망연화) 저녁 불빛 따라 집에 돌아오니
稚子候첨隙 (치자후첨극) 어린 아들 처마 밑에 기다리네
問君亦何爲 (문군역하위) 그대 더 이상 무엇을 바라는가
百年會有役 (백년회유역) 세월가면 무언가 이루어지겠지
但願桑麻成 (단원상마성) 바램은 뽕과 삼이 잘 자라나서
蠶月得紡績 (잠월득방적) 잠월에 길쌈을 할 수 있었으면
素心正如此 (소심정여차) 원래 마음 이와 같이 소박하니
開徑望三益 (개경망삼익) 길치우고 좋은 벗을 기다릴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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