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의 세설신어]
□ 난득호도(難得糊塗)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명나라 장호(張灝)가 고금의 경구(警句)를 새긴 '학산당인보(學山堂印譜)'에 '총명하지 않을수록 더 쾌활해진다(越不聰明越快活)'란 구절이 나온다. 똑똑한 사람들은 걱정이 많다. 한 번 더 가늠해 한 발 앞서 가려니 궁리가 늘 많다. 이겨도 마음이 개운치가 않다. 금세 누가 뒷덜미를 채갈 것만 같다. 좀 모자란 바보는 늘 웃는다. 이래도 웃고 저래도 웃는다.
얻고 잃음에 무심해야 쾌활이 찾아든다. 여기에 얽매이면 지옥이 따로 없다. 똑똑한 사람이 그 똑똑함을 버리고서 쾌활을 얻기란 실로 어렵다. 똑똑하면 꼭 똑똑한 티를 내야 하고, 조금 알면 아는 체를 해야 직성이 풀린다. 나대는 마음을 꾹 눌러 저를 툭 내려놓을 때 비로소 시원스럽다.
청나라 때 서화가 정섭(鄭燮·1693~1766)의 글씨에 이런 내용이 있다. '총명하기가 어렵지만 멍청하기도 어렵다. 총명함을 거쳐 멍청하게 되기는 더더욱 어렵다. 집착을 놓아두고, 한 걸음 물러서서 마음을 내려놓는 것이 어찌 뒤에 올 복의 보답을 도모함이 아니겠는가?(聰明難,糊塗難,由聰明轉入糊塗更難. 放一著,退一步,當下心, 安非圖後來福報也.)' 멍청하기가 총명하기보다 어렵다. 가장 어려운 것은 총명한 사람이 멍청하게 보이는 것이다.
난득호도(難得糊塗)란 말이 여기서 나왔다. 호도(糊塗)는 풀칠이니, 한 꺼풀 뒤집어써서 제대로 보지 못한다는 말이다. 난득(難得)은 얻기 어렵다는 뜻이다. 난득호도는 바보처럼 굴기가 어렵다는 의미다. 다들 저 잘난 맛에 사니, 지거나 물러서기 싫다. 손해 보는 것은 죽기보다 싫다. 더 갖고 다 가지려다가 한꺼번에 모두 잃는다. 결국은 난득호도의 바보정신이 이긴다.
'학산당인보'에는 '통달한 사람은 묘하기가 물과 같다(達人妙如水)'란 구절도 있다. 물의 선변(善變)을 배워 지녀야 달인이다. 능소능대(能小能大), 어디서든 아무 걸림이 없다. '선비는 죽은 뒤의 녹을 탐한다(士貪以死祿)'고도 했다. 살아 내 배 불리는 그런 녹보다 죽은 뒤에도 죽지 않고 따라오는 녹, 후세가 주는 녹, 떳떳하고 의로운 삶 앞에 주어지는 녹을 욕심낼 뿐이다.
'입이 재빠른 자는 허탄함이 많고 믿음성은 부족하다(口銳者多誕而寡信)'란 말도 보인다. 지혜를 감추고, 예기(銳氣)를 죽여라. 입으로 일어나 입으로 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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