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문궐의(多聞闕疑)
정민 한양대 교수
조선일보사 사옥을 들어서면 입구 벽면 가득 1920년 3월 7일자 창간 기념호의 확대사진이 붙어 있다. 정중앙에 운양(雲養) 김윤식(金允植)이 창간을 축하하며 써준 글씨가 보인다. '많이 듣되 의심나는 것은 제외하고, 그 나머지도 살펴서 말한다(多聞闕疑, 愼言其餘)'란 여덟 자다. 쏟아져 들어오는 많은 소식 중에 믿을 만한 것만 가려서, 신중하고 책임 있는 말을 해달라는 주문이다. 본래는 '논어' "위정" 편에 나오는 말이다.
자장(子張)이 물었다. "선생님! 벼슬을 구하는 것에 대해 가르쳐 주십시오."
공자께서 대답하셨다. "우선 많이 들어라[多聞]. 그중에 조금이라도 의심이 나거든 그것은 제외해야지[闕疑]. 나머지 믿을 만한 것도 조심조심 살펴서 말해야 한다. 그래야 허물이 적게 된다. 또 많이 보아야 한다[多見]. 그중 위태로운 것은 빼버려야지[闕殆]. 그 나머지도 삼가서 행해야 한다. 후회할 일이 적어질 게다. 말에 허물이 적고, 행함에 뉘우침이 없으면 녹(祿)은 절로 따라오는 법이지."
제자는 벼슬 얻는 노하우를 물었다. 스승은 묻는 말에는 대답도 않고 뜬금없이 말과 행동을 조심하라고 일러준다. 자장이 겉보기에만 힘을 쏟고 내실을 다지는 신실함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이 벼슬에 나가면, 언행을 삼가지 않아 금세 뉘우치고 후회할 일을 만든다. 벼슬에 나가는 것보다 잘 지켜 간직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문견(聞見)을 넓히려고 책을 읽고 여행을 다닌다. '만권의 책을 읽고, 만리의 길을 간다(讀萬卷書, 行萬里路)'는 말이 그래서 나왔다. 요즘은 굳이 책을 읽을 일도, 여행을 갈 맛도 없다. 가만 앉아서도 모를 것이 없는 까닭이다. 정보는 넘치다 못해 범람한다.
문제는 정보의 신뢰도다. 이것이 믿을 만한 정보인지, 거짓 정보인지는 아무도 판정해주지 않는다. 정보가 아니라 정보의 신뢰성을 판단하는 능력이 경쟁력인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우리가 공부하는 까닭은 뭐가 의심스러운지, 어떤 것이 위험한지 구분해내는 안목을 기르기 위해서다. 체를 쳐서 걸러낸 알짜배기라야 한다. 거름망이 없으면 안전망도 없다. 정보 장악력을 키워 녹을 구하려면 얄팍한 잔재주를 버리고 더 넓고 깊게 공부하는 수밖에 없다.
子張이 學干祿에게 子曰
자장 학간록 자왈
多聞闕疑오 愼言其餘면 則寡尤하며
다문궐의 신언기여 즉과우
多見闕殆오 愼行其餘 則寡悔니
다견궐태 신행기여 즉과회
言寡尤하며 行寡悔면 祿在其中矣니라.
언과우 행과회 록재기중의
「解釋」
자장이 녹을 구하는 방법을 묻자, 공자께서「많이 듣고 의문스러운 것은 빼놓고 나머지를 신중하게 말하면 허물이 적 을 것이다. 또 많이 보되 위태로움을 빼고 나머지만을 실천하면 뉘우칠 일이 적으리라. 말에 허물이 적고 行動함에 뉘우칠 바가 적으면 녹이 스스로 그 가운데 있느니라.」 하셨다.
「漢文」
干 : 방패 간, 祿 : 복 록(녹), 闕 : 대궐 궐,
疑 : 의심 의, 愼 : 삼갈 신, 餘 : 남을 여, 寡 : 적을 과,
尤 : 더욱 우, 殆 : 위태로울 태, 悔 : 뉘우칠 회,
顓 : 어리석을 전, 사람이름 전, 陳 ; 베풀 진, 欠 : 하품 흠,
「註釋」
子張 : 孔子의 弟子. 姓은 顓孫. 이름은 師. 字는 子張. 陳인, 孔子보다 四十歲年下.
干 : 求하는것. 要求. 祿 : 官祿.捧祿. 學 : 問의뜻. 闕 : 欠과 같 음. 빼놓음. 寡尤 : 尤는 잘못의 뜻이고, 寡는 적음을 나타냄. 悔 : 뉘우침.
「解說」
子張이 취직하여 祿을 얻겠다고 하자 孔子는 말했다.「되도록 많은 가르침을 들어서 의심스러운 것은 빼놓고 나머지 確實한 것을 신중히 생각하여 입밖에 내어 말하면 여러 사람들 의 입에 오르내리고 非難을 받지 않게 될 것이며, 확실치 못하여 자신이 없는 것은 빼놓고 위태롭지 않은 것만을 신중히 실천하 면 후회가 없다. 말에 허물이 없고 자기가 한 行動에 후회가 없 으면 官祿은 그 가운데 생기게 된다.」
官職이라 하여 特別한 學問을 요구 하는 것은 아니고, 見識을 넓혀서 자기의 言行을 삼가면 될 따름이니 이것이 곧 남의 눈에 띄지 않는 평범한 修道의 길이고, 學問에 뜻을 둔 사람이라면 누 구나 지켜야 倫理요 관직에 나아갈 바탕인 것이다.
우리가 民主政治 社會에 살아가면서도 孔子時代의 君主政治에 서 배워야 할 점은, 알 필요가 있는 것은 듣고 보아 읽어서 言行 을 삼가면 그 가운데 절로 祿이 있다고 한 점이라 할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