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수청정(點水蜻蜓)
두보의 '곡강(曲江)'시 제4구는 '인생에 칠십은 옛날에도 드물었네(人生七十古來稀)'란 구절로 유명하다. 70세를 고희(古稀)라 하는 것이 이 구절에서 나왔다. 그는 퇴근 때마다 칠십도 못 살 인생을 슬퍼하며 봄옷을 저당잡혀 술이 거나해서야 귀가하곤 했다.
시의 5, 6구는 이렇다. "꽃 사이로 나비는 깊이깊이 보이고, 물 점찍는 잠자리 팔랑팔랑 나누나.(穿花蛺蝶深深見, 點水蜻蜓款款飛)" 아름다운 봄날의 풍광을 절묘하게 포착했다. 거나해진 퇴근길에서 눈길을 주는 곳은 만발한 꽃밭 사이를 헤집고 다니는 나비들, 잔잔한 수면 위로 꽁지를 살짝 꼬부려 점 하나를 톡 찍고 날아가는 잠자리들이다. 여기저기 들쑤석거리며 잠시도 가만 못 있고 부산스레 돌아다니는 그들은 봄날의 고운 풍광을 속속들이 들여다보았겠지. 그는 자꾸만 그들이 부러워서 그 꽁무니를 따라 꽃밭 사이와 수면 위를 기웃기웃하곤 했다.
송나라 때 유학자 정이(程頣·1033~ 1107)는 자신의 어록에서 나비와 잠자리를 노래한 위 두 구절을 두고 두보가 이런 쓸데없는 말을 도대체 왜 했는지 모르겠다고 투덜댔다. 그 경치나 정감의 묘사에 교훈도 없고 세상에 보탬도 되지 않아 아무 영양가 없다는 뜻으로 한 말이다. 꽃 사이를 이리저리 헤매는 나비나 수면 위로 경쾌하게 점을 찍는 잠자리가 도학의 입장, 실용의 안목에서 보면 확실히 쓸데없기는 하다. 하지만 그런가. 짧지 않은 인생을 건너가게 해주는 힘은 모두 이런 쓸데없는 데에서 나온다.
시(詩)가 밥을 주나 떡을 주나. 예술이 배를 부르게 하는가. 하지만 인간은 개나 돼지가 아니니 밥 먹고 배불러 행복할 수는 없다. 인생이 푸짐해지고 세상이 아름다워지려면 지금보다 쓸데없는 말, 한가로운 일이 훨씬 더 많아져야 한다.
'쓸데'에 대한 생각은 저마다 다른데, 다들 영양가 있고 쓸데 있는 말만 하려다 보니 여기저기서 없어도 될 싸움이 끊이지 않는다.
실용과 쓸모의 잣대만을 가지고 우리는 소중한 것들을 너무 쉽게 폐기해왔다. 고희는커녕 백세(百歲)도 드물지 않은 세상이다. 수명이 늘어난 것을 마냥 기뻐할 수만 없다. 삶의 질이 뒷받침되지 않은 장수는 오히려 끔찍한 재앙에 가깝다. 올 한해는 좀 더 쓸데없는 말을 많이 하고, 봄날의 풍광을 더 천천히 기웃거리며 살아보리라 다짐을 둔다. 인생의 봄날은 쉬 지나고 말 테니까. / 정민 한양대 교수 고전문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