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부사(漁父辭)
작자: 굴원(屈原)
B.C.약 300년 중국 초(楚) 나라의 대부 굴원(屈原)이 쫓겨나서 강호(江湖)를 떠돌아다니며 시를 읊고 못가를 거닐고 있었는데, 그 안색은 초췌했고 몸은 비쩍 말라 있었다.
한 어부(漁父)가 그를 보고 물었다.
“선생은 그 유명한 삼려대부(三閭大夫)가 아니시오? 어쩌다가 이 지경이 되었소?”
☞ 중국 춘추시대에 초나라의 소 굴 경의 세 귀족 집안을 다스리던 벼슬
굴원이 말했다.
“온 세상이 더러운데 나 혼자 깨끗했고, 모든 사람들이 다 술 취해 있는데 나 혼자 정신이 말똥말똥 했었지요. 그래서 쫓겨나게 되었소.”
(擧世皆濁 我獨淸, 衆人皆醉 我獨醒. 是以見放)
(거세개탁 아독청, 중인개취 아독성, 시이견방)
어부가 말했다.
“성인(聖人)은 외부 사물에 구애받지 않는다 하였소. 세상 사람들이 모두 더러우면 왜 같이 흙탕물 튀기면서 살지 않고, 모든 사람들이 술 취해 있으면 왜 같이 술지개미도 먹고 술도 마시면서 함께 취하지 않고, 뭣 때문에 혼자서 매사를 심각하게 생각하고 고상하게 행동하다가 스스로 쫓겨나는 신세가 된단 말이오?”
굴원이 말했다.
“내가 듣기로는, 갓 목욕하고 나온 사람은 반드시 갓을 털고 나서 쓰고, 갓 목욕하고 나온 사람은 반드시 옷을 털고 나서 입는다고 했소. 어찌 나의 이 깨끗한 몸에 더러운 물건이 닿게 한단 말이오? 차라리 상수(湘水)의 물에 뛰어들어 물고기의 밥이 될지언정, 어찌 이 깨끗한 몸에 세속의 더러운 먼지를 덮어쓴단 말이오?”
이 말을 듣고 어부는 빙긋이 웃으며 노를 두드리고 떠나가며 노래를 불렀다.
“창랑의 물 맑으면 내 갓끈 씻으면 되고, 창랑의 물 흐리면 내 발 씻으면 되지.”
(滄浪之水 淸兮, 可以濯吾纓, 滄浪之水 濁兮, 可以濯吾足)
(창랑지수 청혜, 가이탁오영, 창랑지수 탁혜, 가이탁오족)
어부는 가버리고 다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해 안가는 일이 생기면 이해하지 않는 것도 한 방법입니다
※ 위의 사(辭)는 굴원의『초사(楚辭)』<어부(漁父)>의 전문으로, 삶의 두 가지 방식을 문학적으로 표현한, 중국 문학사상 유명한 문장이다. 현실의 삶에서는 실패자가 될지언정 고결한 이상주의자로 살아갈 것인가(굴원의 인생관), 아니면 현실에 적응하여 창랑의 물 맑으면 맑은 대로, 창랑의 물 흐리면 흐린 대로 거기에 맞춰 살아가면서 세속에서의 성공을 추구할 것인가(어부의 인생관). 이는 각자의 선택에 달려 있다. 그 선택 여하에 따라 패배한 성공자가 되기도 하고 승리한 실패자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