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의 세설신어 2013.10.02]
□ 소굴대신(小屈大伸)
당나라 유종원(柳宗元)이 진사 왕참원(王參元)의 집에 화재가 났다는 소식을 듣고 편지를 썼다. "집이 다 탔다는 말을 듣고 처음엔 놀라고 중간에는 의심하다가 나중에는 크게 기뻐하였소. 장차 위로하려다가 외려 축하를 드리오." 불난 집에 부채질하는 것도 아니고 축하가 웬 말인가? 김흥락(金興洛·1827~1899)은 '답조원가(答趙圓可)'에서 "크게 형통하기 전에 조금 굽힘이 있다(以大亨之先有小屈也)"는 의미니, 이번 불행을 장차 크게 형통할 조짐으로 알아 상심을 털고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으라는 뜻이라고 풀이했다.
강희맹(姜希孟·1424~1483)도 당시 골치 아픈 일이 많던 황해도 관찰사로 나가게 된 승지 이경동(李瓊同)에게 사람들이 이번 임명을 좌천이라고 하지만 "성상의 숨은 속뜻에 소굴대신(小屈大伸)의 이치가 담긴 줄은 모른다"고 적었다. 어려운 일을 맡겨 그 처리를 보고 장차 큰일을 맡기려는 깊은 뜻이니 낙심치 말고 더 분발하라는 격려였다.
정경세(鄭經世·1563~1633)는 옥당 시절 올린 시무차(時務箚)에서 변방의 중요성을 강조한 뒤 끝 부분에 이렇게 적었다. "전하께서 자신을 굽혀 욕됨을 참는 까닭이 어찌 조금 굽힘으로써 크게 펴고, 잠깐 욕됨을 가지고 오래 영예롭기를 생각함이 아니겠습니까?(殿下之所以屈己忍辱者, 豈不以小屈思所以大伸, 暫辱思所以久榮乎)"
소굴대신(小屈大伸), 조금 굽혀 크게 편다. 잠욕구영(暫辱久榮), 잠깐 욕되고 오래 영예롭다. 조금 굽히고 잠깐 욕됨을 참아야 비로소 큰일을 할 수 있는 경륜과 역량이 깃든다. 세상은 전부 아니면 전무(全無)라며 사생결단하고 싸운다. 너 죽고 나 죽자는 싸움은 어느 한쪽이 죽어도 끝나는 법이 없다. 남북의 다툼도 여야의 싸움도 대신(大伸)의 의욕만 넘치지 소굴(小屈)의 물러섬이 없다. 한번 물러서면 완전히 지는 것으로 아는 대통령, 너도 한번 당해보라며 오기만 키우는 야당, 임명자의 당부에도 뜻을 꺾지 않는 장관. 굽혀야 뻗고 물러서야 내달으며 양보할 때 더 얻는 소굴대신의 이치는 아무도 돌아보지 않는다. 국민의 삶의 질만 나날이 팍팍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