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왕설래]/세계일보 2012.7.4
□ 黙言과 沈黙
묵언(默言). 불교식 수행법의 하나다. 가톨릭의 묵상(默想) 기도법도 약간은 닮았다.
말 에너지는 대수롭잖은 것 같아도 가공스럽다. 한마디에 자살을 하고 천냥 빚도 갚는다. 분출을 자제하면 즉시 속 에너지(內氣)로 바뀌는 속성을 지닌다. 그것이 쌓이면 내관(內觀)을 가능케 한다. 내관이 되면 하심(下心)은 자동이다. 묵언하심을 하나의 묶음으로 보는 까닭이다.
쓸데없는 말, 췌언(贅言)은 집중력을 떨어뜨린다. 기 소모가 크다. 엔트로피를 증가시켜 무질서로 빠져들게 한다. 그리 보면 묵언은 내적 질서를 유지해 주는, 물리적으로도 입증되는 멋진 수행법이다.
비슷한 어군(語群)에 침묵(沈黙)이란 말이 있다. 생리적으로 말을 안 한다는 점은 묵언과 다르지 않다. ‘해야 할 말을 안 한다’는 것이 결정적인 차이다. 묵비권, 불고지죄 등은 침묵과 연관된 용어다. 이 경우 형사·범죄적 의미로 통한다. 더러는 만해의 ‘님의 침묵’ 같은 감성적 술어 등으로도 쓰인다.
박정희는 침묵을 통치·의사결정 수단으로 활용한 흔적이 도드라진다. 껄끄러운 보고를 들고 가면 창 밖을 응시한 채 말 없이 담배연기만 뿜어댄다고 한다. 그렇게 5분, 10분이 흐르면 보고자는 감을 잡고 알아서 한다는 것이다.
최규하는 1980년 전두환이 등장할 무렵 대통령 권한대행이었지만 무력했다. 민감한 정치발언은 삼갔고 중요한 결정도 신군부에 맡기곤 했다. 당시 대학생들은 그를 ‘짖지 못하는 셰퍼드’로 불렀다. 그의 침묵은 강제로 물린 ‘재갈’ 같은 것이었다.
이명박 대통령(MB)의 침묵은 뭘까. 친형을 포함한 정권 탄생의 일등공신들이 줄줄이 검찰에 불려가도 말이 없다. 한·일 정보보호협정 졸속 추진 소동이 벌어져도 본인은 몰랐단다.
옛날 임금은 가뭄이나 홍수만 나도 자신의 부덕으로 돌렸다. 평범한 가장조차 자녀가 잘못하면 자기 탓으로 여긴다. 국가안보·통일·외교는 헌법에 명시된 대통령의 고유권한이다. 전무후무한 한·일 정보보호협정 체결 과정을 몰랐다고 해서 믿을 국민이 몇 명이나 되겠는가. MB의 침묵은 ‘비겁한 회피’다. 끝까지 침묵하려거든 차라리 묵언수행을 권한다.
조민호 논설위원
'이게 뭡니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준공 앞두고 기울어진 오피스텔 건물 (0) | 2014.05.13 |
---|---|
공무원 연금이 국민연금보다 많이 받는 이유? (0) | 2014.05.05 |
[TV조선 단독] 가정부 이씨 "아들, 생명 위협에 폭로 만류" (0) | 2013.10.01 |
[채동욱 파문] 가정부 "蔡씨, 내가 엉뚱한 사람과 착각했다니… 정말 뻔뻔하다" (0) | 2013.10.01 |
채동욱 진실 규명 .. '별건 감찰'로 확대? (0) | 2013.09.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