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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머리 예찬

seongsoo 2012. 11. 30. 10:57

흰머리 예찬

 

백발을 자조하며.....장지완

흰 머리털 미워하나 나는 외려 어여쁘니

오래 살면 오히려 소주선(小住仙)이 되겠네.

돌아보매 몇이나 흰 머리에 이르렀나

검은 머리 다투어서 북망 길로 가는 것을.

 

白髮自嘲.....張之琬

人憎髮白我還憐(인증백발아환련)

久視猶成小住仙(구시유성소주선)

回首幾人能到此(회수기인능도차)

黑頭爭去北邙阡(흑두쟁거북망천)

 

(): 미워하다. / 환련(還憐): 도리어 사랑하다. / 구시(久視): 늙지 않고 오래 삶. / 소주선(小住仙): 인간 세상에 잠시 머물러 사는 신선. / 북망천(北邙阡): 북망산으로 가는 길. 북망산은 예전의 공동묘지. 죽는다는 의미.

 

 

거울 보니 머리 위에 흰 눈이 내렸다. 흰 눈이 내렸으니, 이제 갈 날이 얼마 남지 않았구나 싶어 사람들은 백발을 미워하지만, 나는 그렇지 않다. 장생구시(長生久視) 즉 늙지 않고 오래 살아야 마침내 신선의 경지에 오를 수 있을 테니, 오늘의 내 백발은 장생으로 가는 입구에 선 것을 축하하는 신호탄이 아니겠는가? 되돌아보면, 무엇이 바쁜지 머리도 희지 않은 나이에 서둘러 북망산천으로 상여 타고 떠난 사람이 어디 한 둘이란 말인가? 나는 백발이 되도록 큰 허물없이 이 험한 세상을 건너온 것이 스스로 대견스럽고 자랑스럽다.

  

장지완(張之琬)

생몰년 미상. 18세기 후반 또는 19세기 초반의 학자. 본관은 인동(仁同). 자는 옥산(玉山), 호는 침우당(枕雨堂). 이학서(李鶴棲)의 문인으로 과거에 뜻을 두지 않고 학문에만 몰두하였다. 김초암(金初菴)과 홍직필(洪直弼)에게서 성리학을 배우고, 주역상서 尙書를 연구하여 기삼백도수(朞三百圖數)의 잘못된 부분을 바로잡았다. 만주와 요동까지 두루 다니며 가는 곳 마다 시문을 지어 남겼다. 저서에침우당집6권이 있다.

 

 

<이종묵의 한시 마중’>...............이종묵 서울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당나라 이상은(李商隱)이라는 시인이 새벽 거울에 고운 머리 센 것이 근심스러운데, 밤에 시를 읊조리다 보니 달빛이 차구나(曉鏡但愁雲, 夜吟應覺月光寒)라는 유명한 구절을 남겼습니다. 나이가 들기 시작하면 거울 보기가 무서우니 바로 날로 많아지는 흰 머리카락 때문입니다. 신라 말의 문인 최광유(崔匡裕) 역시 센 머리 시든 얼굴에 새벽 거울이 새로워라(改顔衰曉鏡新)”라고 하였지요. 그래서 옛사람들도 늙은 모습을 감추려고 거울을 보면서 흰머리를 뽑았고, 심지어 다시는 흰머리가 돋지 않도록 뽑은 흰 머리카락을 매장하고 장사까지 지냈나 봅니다.

 

無 題 (무 제)

相見時難別亦難(상견시난별역난) 만남이 어렵드시 이별 또한 어려워라

東風無力百花殘(동풍무력백화잔) 봄바람이 힘 잃으니 백화가 떨어지네.

春蠶到死絲方盡(춘잠도사사방진) 봄 누에는 죽어서야 실 뽑기를 그치고

蠟炬成恢淚始乾(납거성회누시건) 양초는 재가되어야 눈물을 멈춘다네.

曉鏡但愁雲(효경단수운빈개) 이른새벽 거울보며 시름없이 머리빗고

夜吟應覺月光寒(야음응각월광한) 밤마다 깨어나 차가운 달빛만 읊은다네.

蓬山此去無多路(봉산차거무다로) 봉래산 가는 길 멀지 않으니

靑鳥殷勤爲探看(청조은근위탐간) 파랑새야 남몰래 가 보아 다오.

 

 

그러나 늙음은 마음먹기 나름입니다. 장지완(張之琬)이라는 시인이 그런 뜻을 시에 담았습니다. 장지완은 순조 연간 율과(律科) 출신의 중인(中人)인데 그 생애가 자세히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당대에는 시로 꽤 명성을 날렸던 사람입니다. 그는 백발이 싫지 않다고 하였습니다. 주위를 둘러보면 머리가 셀 때까지 살지 못한 사람이 많기 때문입니다. 지금껏 목숨을 부지한 것 자체가 행복이라는 말이지요. 이래야 마음이 편합니다.

 

억지로 흰 머리카락을 뽑고 검게 물을 들이는 일은 백발에 꽃을 꽂는 일입니다. 소동파(蘇東坡)사람은 늙어서도 꽃 꽂는 것 부끄러워하지 않지만, 꽃은 노인 머리에 오르는 것 창피해 하겠지(人老簪花不自羞, 花應羞上老人頭)”라 한 것이 그 때문입니다. 늙음을 탄식하던 김창흡(金昌翕)이 늙음을 받아들여야 한다면서 늙음을 잊으면 노망이 든 것이요, 늙음을 탄식하면 추한 것이다라고 한 말이 슬프고 무섭습니다. 그러니 한 해가 또 가고 한 살 나이가 든다고 너무 슬퍼하지 마십시오.

 

 


허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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