吟風景于秋日(가을날에 풍경을 읊조림)
묵암 이영수 2012.11.16. 10:31
□ 途中(길을 가는 중에)
李功懋[이공무, 靑莊館 李德懋의 아우임]
馬蹄霜踏白[마제상답백] 말발굽은 서리를 밟아 하얗고
牛角日迎紅[우각일영홍] 소뿔은 햇볕을 받아 붉네.
樹脫禽身露[수탈금신로] 나뭇잎 지자 새가 훤히 보이는데
山扉鎖霧中[산비쇄무중] 산중의 집 울타리 안개에 잠겨있네.
가을이 깊어 들판은 온통 서리로 하얗게 덮여 있어 그 위를 걷는 말은 발굽이 서리가 묻어 뽀얗습니다. 서리 밑에 붉은 단풍잎이 깔려 있다고 생각하면 더욱 운치가 있겠지요. 들판의 소가 붉은 석양을 받아 쇠뿔이 발갛게 물들어 있습니다. 그 배경은 파란 하늘과 붉은 노을이 그려지겠지요. 숲은 휑하니 낙엽이 졌기에 가지 위에 앉은 새가 훤하게 보입니다. 이에 비해 산속에 있는 집은 뿌연 안개에 잠겨 보이지 않습니다. 붓을 들면 알록달록 곱게 색은 칠할 수 있겠지만, 이 시의 정취는 담기가 쉽지 않을 듯합니다.
□ 牧童(목동)
柳東陽[유동양]
驅牛赤脚童[구우적각동] 소 몰고 오는 맨발의 아이놈,
滿載秋山色[만재추산색] 소 등에 가을 산 빛을 가득 실었네.
叱叱搔蓬頭[질질소봉두] ‘이랴, 이랴’ 더벅머리 긁적긁적,
長歌歸月夕[장가귀월석] 달 뜬 밤에 노래 부르며 돌아오네.
朝鮮 後期 文人 유동석의 韻致 있는 가을 風光을 그린 시이다. 가난하여 襤褸[남루]한 옷을 입었지만 아이놈은 가을빛을 사랑하여 지게에 丹楓잎을 함께 꺾어 실었을 것이다. 달밤에 흥얼흥얼 노래 부르며 산길을 내려오는 아이놈의 모습이 절로 정이 간다. 그림에 自信이 없더라도 머릿속에는 위의 가을風景이 절로 그려질 것이다.
□ 秋日(가을날)
權遇[권우]
竹分翠影侵書榻[죽분취영침서탑] 대나무는 푸른 그림자 나누어 책상에 스며들고,
菊送淸香滿客衣[국송청향만객의] 국화가 내뿜은 맑은 향기 나그네 옷에 가득하네.
落葉亦能生氣勢[낙엽역능생기세] 낙엽도 다시 기운을 낼 줄 아는가?
一庭風雨自飛飛[일정풍우자비비] 온 뜰에 비바람 소리 나니 절로 날아다니네.
가을이 깊어가니, 곱던 丹楓도 사나운 비바람에 떨어져 四方 산이 裸木으로 휑하다. 丹楓잎은 이제 생명을 다하여 보금자리를 떠나 정처없는 나그네처럼 바람에 휩쓸러 날려가니, 시인의 눈에 비친 落葉은 쓸쓸하고 索寞하기 보다는 날아다니는 모습이 다시 生命을 얻은 것 같은 모양이다. 朝鮮 初期의 大學者 權近의 아우인 權遇는 떨어진 나뭇잎에 生命을 불어넣었다. 그래서 스산한 가을을 맑게 보낼 수 있었던 것 같다.
스산한 가을을 맑게 하는 것은 푸른 대나무와 노란 菊花이다. 가을이 깊어가도 대나무는 그 푸른빛을 잃지 않아 파란 氣運이 書齋 안으로 스미게 했나보다. 이에 질세라 菊花도 맑은 香氣를 뿜고, 시인 서정주는 “국화꽃 앞에서“란 시에서 모든 꽃이 다 피었다 지기를 기다려 서리가 내린 후 피기에 菊花는 高高하면서도 同時에 辭讓할 줄 아는 즉 오랜 세월에 그 곱던 얼굴은 주름이 지고 삼단 같던 검은 머리엔 희긋 희긋 된서리가 내린 후에 거울 앞에 선 내 누님 같은 꽃이라 했고, 그러한 뜻에서 선비의 꽃이라 불리는 菊花 곁을 거니노라면 절로 맑은 香氣가 옷깃에 가득했을 것이다. 맑고 시원하지만 떨어진 나뭇잎도 힘을 다시 낸다. 어디선가 바람이 불어 죽은 줄 알았던 落葉도 生命을 얻어 날아 다닌다. 죽은 줄 알았던 落葉이 이렇게 맑은 소리를 내다니...... 가을날 落葉이 바람에 뒹구는 소리는 비바람 치는 소리처럼 들린다.
□ 山寺夜吟(산사에서 밤에 시를 읊다)
鄭澈[정철]
蕭蕭落木聲[소소낙목성] 우수수 잎 떨어지는 낙엽 소리에,
錯認爲疏雨[착인위소우] 성긴 비 내리는 줄 잘못 알았네.
呼僧出門看[호승출문간] 중을 불러 문 밖에 나가보라니,
月掛溪南樹[월괘계남수] 시내 앞 숲에 달이 걸렸습디다.
唐나라 때 無可上人이라는 僧侶의
聽雨寒更盡[청우한갱진] 빗소리 들으며 찬 밤 다 새우고 나서,
開門落葉深[개문낙엽심] 문을 열고 밖을 보니 낙엽이 수북하네.
라는 詩句에는 낙엽 구르는 소리가 정말 빗소리처럼 들리기에 이른 말일 것이다.. 깊어가는 가을밤 비바람 치는 소리인지 落葉이 구르는 소리인지, 여러분도 窓門을 한번쯤 열어 보지 않으시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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