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公主, 翁主, 君主, 縣主
왕의 딸 중에 적녀는 공주(公主)라 하고, 서녀는 옹주(翁主)라고 부릅니다.
허나 조선이 건국되었을 때만 하더라도 적녀·서녀에 대한 호칭 구분은 분명히 않았습니다.
조선 초에는 왕의 딸과 후궁을 모두 궁주(宮主)라고 불렀던 것입니다.
그러다 태종 대에 이르러 후궁과 왕의 딸을 구분해야 한다는 주장이 대두되면서 왕의 딸을 공주로 부르기 시작합니다.
또 태종 대에 서자에 대한 차별을 규정하는 법률이 생김에 따라 자연스럽게 왕의 딸에게도 적서의 차별이 적용되기에 이릅니다.
그 결과 적녀는 공주, 서녀는 옹주라 부르게 된 것입니다.
원래 옹주라는 칭호는 왕의 후궁이나 대군의 부인에게 주어진 명칭이었습니다. 하지만 세종 대에 내명부와 외명부에 대한 칭호법이 확립된 뒤부터 옹주는 왕의 서녀를 부르는 칭호로 굳혀지게 됩니다.
공주와 옹주는 품계가 없는 무품 작위로서 외명부에 속합니다.
얼핏 생각하면 이들이 내명부에 속할 것 같지만 궁중에서 자란 뒤에 궁 밖으로 시집을 가기 때문에 외명부가 되는 것입니다. 공주와 옹주 외에도 궁중에서 자란 뒤 궁 밖으로 출가하는 여자가 또 있는데 바로 세자의 딸들인 군주(君主)와 현주(縣主)입니다. 공주나 옹주와 달리 군주와 현주는 정2품과 정3품上의 작위를 각각 받았습니다.
이들 왕녀들은 통상적으로 대개 13살을 전후하여 결혼을 했습니다.
일반 왕자들의 혼례와 마찬가지로 왕녀들의 결혼을 위해서도 금혼령을 내린 뒤 몇 명의 부마 후보를 택하여 왕과 왕비가 최종적으로 선택하는 과정을 거쳤습니다.
대개 부마는 정치적 이해 관계를 통해 내정되곤 했는데 이 때문에 공주와 옹주는 정치 상황에 따라 처지가 급변한 경우가 종종 나타납니다.
왕녀의 신분이라고는 하나 일단 출가한 뒤에는 남편 집안의 정치적 입지가 그들의 행복과 불행을 결정지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왕녀들의 삶은 시가의 상황 변화보다는 친정의 처지에 더 크게 좌우되었습니다.
시아버지나 남편, 또는 시가의 혈족들이 정치적 이유로 가문이 몰락하더라도 왕녀들은 대체적으로 신분을 보장받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친정이 몰락하는 경우에는 신분 보장은 고사하고 목숨을 부지하기도 힘든 지경으로 치닫게 됩니다.
예를 들어 문종의 딸인 경혜공주는 동생인 단종이 쫓겨난 뒤에 남편은 사약을 받아 죽고 그녀는 순천의 관비가 되어 살아야 했습니다.
이 밖에도 성종의 서녀인 공신옹주는 어머니 귀인 엄씨가 연산군의 생모인 폐비 윤씨를 내쫓는 데 가담한 것에 연좌되어 죽임을 당했습니다.
성종의 또 다른 서녀인 정혜옹주도 같은 사건으로 어머니 귀인 정씨의 죄에 연좌되어 유배지에서 노예로 살아야 했으며 연산군이나 광해군의 딸들도 서인으로 전락하여 어렵게 생활해야 했습니다.
중종과 경빈 박씨의 딸인 혜순옹주는 경빈 박씨가 "작서의 변"으로 죽자 서인으로 전락했으며 그녀의 동생 혜정옹주도 이 사건에 연루되어 남편을 잃고 서인으로 살아야 했습니다.
왕녀들도 당대의 여느 여자들과 마찬가지로 남편의 축첩에 마음을 상하고 무관심에 눈물을 흘리며 사는 일도 많았습니다.
태종의 넷째 딸인 정선공주는 남편이 다른 사람의 첩을 빼앗아 와서 첩으로 삼는 바람에 망신살이 뻗치기도 했으며, 그녀는 남편과 별로 관계가 좋지 않았던 모양인데 그녀가 죽을 때 남편인 남휘는 눈물조차 흘리지 않았다고 하며 그 일로 탄핵을 당하기까지 했다고 하며 그래도 반성의 기미가 없자 세종은 그를 유배시켜 버립니다.
왕녀들은 재가나 개가를 할 수 없었습니다.
대개 조선 일반 민가의 아낙내들에게 재혼과 개혼이 허락된 것에 비하면 왕녀들은 결혼 생활의 폭이 좁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일반적인 여성들과 비교할 때, 왕녀들의 삶은 부유하고 호와로웠으며 평탄했습니다. 왕녀라는 신분 덕분에 늘 특권을 누린 것은 물론이고, 경제적으로 엄청난 혜택을 누렸으며 잘못을 저질러도 반역이나 불충과 관계된 일이 아니라면 형벌을 받는 일도 드물었습니다.
역사 속에 많이 기억되는 왕의 딸들로는 먼저 태조의 딸로 동정심을 받고 있는 여승이 된 경순공주를 들 수 있겠으며 태종의 딸이자 남이 장군의 생모인 정선공주도 있습니다.
세종의 딸이었으며 동시에 훈민정음 창제에도 기여한 차녀 정의공주도 들 수 있겠습니다.
성종의 딸이며 연산군과 이복남매로서 연산군과 간통을 벌인 휘숙옹주도 있으며 영조의 딸이며 친조카였던 정조와 정치적 경합을 벌인 화완옹주도 있으며 고종의 딸이며 비운의 여인인 덕혜옹주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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