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점철미봉(點綴彌縫)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서양 정장 차림에서 가장 쓸데없는 것이 넥타이다. 목에 드는 바람을 막자는 것도 아니면서, 여름에도 답답하게 목을 조른다.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넥타이의 색상과 디자인이 양복의 품위를 결정한다.
30년 전쟁(1618~1648) 당시 터키와의 전투에서 승리한 후 크로아티아 용병들이 파리에서 개선행진을 했다. 이때 루이 14세에게 충성 맹세의 상징으로 앞가슴에 매단 크라바트(Cravate)라는 천에서 시작되었다는 넥타이. 오늘도 직장인들은 상사에게 충성하고 고객에게 잘 보이려고 쓸모라곤 전혀 없는 이 물건으로 제 목을 죈다.
쓸모로 치면 얼굴에서 눈썹처럼 쓸데없는 것이 없다. 속눈썹은 눈에 들어가는 티끌이나 막아준다지만, 눈썹이 하는 일은 대체 무엇이냐? 눈썹 없는 모나리자 그림이 두고두고 얘깃거리가 되는 걸 보면, 눈썹이란 것이 그닥 소용은 없되 없지 못할 물건임을 알겠다. 여성들은 이 눈썹을 다듬고 그리는 데 화장 시간의 적지 않은 부분을 할애한다. 전 여당 대표의 문신한 짙은 눈썹은 TV에서 볼 때마다 어색하고 우스웠다. 눈썹의 위상은 쓸모의 잣대로만 논할 일이 아닌 것이다.
꼬리도 군더더기다. 소꼬리는 몸에 들러붙는 파리를 쫓는 데 쓴다지만 엉덩이 쪽만 쓸모가 있다. 싸움에서 졌다는 표시를 할 때도 유용하다. 투견은 그 때문에 제 지닌 꼬리마저 잘리고 만다. 인간의 육체에서 꼬리가 퇴화한 것만 봐도 원래 요긴한 부분이 아니었던 것이 분명하다. 인간에게 꼬리가 여전히 붙어 있다면 복식사는 근본부터 달라져야 한다.
이덕무의 관찰이 즐겁다. "눈썹은 두 움큼의 털일 뿐이다. 듣거나 말하는 일을 담당하지 않는다. 그저 사람의 눈 위에 덧붙어 단지 사람을 생색나게 할 뿐이다. 꼬리는 한 줌의 살덩어리일 따름이다. 뛰지도 못하고 씹지도 못한다. 짐승의 꽁무니 뒤에 드리워져 다만 짐승의 부끄러운 곳을 감출 뿐이다. 그러고 보니 조물주에게도 또한 점철법(點綴法)과 미봉법(彌縫法)이 있는 게로구나."
점철(點綴)은 덧대 보탠 것이다. 심심해 덧댄 털이 눈썹이다. 덧대니 생색이 난다. 미봉(彌縫)은 터진 데를 꿰맨 것이다. 다급한 나머지 한 땜질 처방이다. 항문을 가리는 꼬리가 꼭 그 짝이다. 세상에 쓸모만 따져 안 될 것이 어디 한두 가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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