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승영시식(蠅營豕息)
정민 한양대 교수
귀양 살던 다산에게 이웃에 사는 황군(黃君)이 찾아왔다. 그는 술꾼이었다. 술 냄새를 풍기며 그가 말했다. "선생님! 저는 취해 살다 꿈속에 죽을 랍니다(醉生夢死). 욕심 부려 뭣 합니까? 그리 살다 가는 게지요. 집 이름을 아예 취몽재(醉夢齋)로 지을까 합니다. 글 하나 써주십시오."
다산의 성정에 마땅할 리 없었겠지만 꾹 참고 말했다. "자네, 제 입으로 술 취했다고 하는 걸 보니 아직 취하지 않은 것일세. 진짜 취한 사람은 절대로 제가 취했단 말을 안 하는 법이지. 꿈꾸는 사람이 꿈인 줄 아는 것은 꿈 깬 뒤의 일이라네. 제가 취한 줄을 알면 오히려 술에서 깨어날 기미가 있는 것이지. 세상 사람들을 보게. 파리처럼 분주하고(蠅營) 돼지처럼 씩씩대질 않는가?(豕息) 단물만 보면 달라붙고, 먹을 것만 보면 주둥이부터 들이민다네. 그래도 자네는 아직 제 정신일세그려."
청나라 왕간(王侃·1795~?)이 말했다. "청정하던 땅에 갑자기 똥을 버리면 파리 떼가 몰려들어 내쫓아도 다시 달라붙지만, 하루만 지나면 적막히 어디로 갔는지 알 수가 없다. 세상 사람들이 권세와 이익을 따르는 것도 이와 같다.(청정지홀유유시, 승예영영 구지복집, 일일기진, 적부지기하왕의, 세인지우세리여차, 淸淨地忽有遺矢, 蠅蚋營營 驅之復集. 一旦旣盡, 寂不知其何往矣. 世人之于勢利如此.)" '강주필담(江州筆談)'에 나온다. 권세와 이욕을 향한 집착은 똥덩이를 향해 달라붙는 파리떼와 같다. 먹이를 향해 꿀꿀대며 달려드는 돼지야 천성이 그런 것을 어찌 나무라겠는가?
다산은 '간리론(奸吏論)'에서 간사함이 일어나는 까닭을 여럿 꼽았다. 몇 가지 들어보면 이렇다. 직책이 낮으면서 재주가 넘치면 간사해진다. 적은 노력을 들이고도 효과가 신속하면 간사해진다. 윗사람이 바르지 않으면 간사해진다. 밑에 둔 패거리가 많은데 윗사람이 혼자 어두우면 간사해진다. 나를 미워하는 자가 나보다 약해 두려워 고발하지 못하면 간사해진다. 형벌에 원칙이 없고 염치가 서지 않으면 간사해진다. 어떤 이는 간사해서 망하고, 어떤 이는 간사한데도 망하지 않으며, 어떤 이는 간사하지 않은데도 간사하다 하여 망하게 되면 간사해진다.
대체로 간사한 자일수록 혼자 깨끗한 척한다. 남까지 깨끗하라고 닦달한다. 실상이 드러났을 때는 이미 단물이 모두 빠지고 난 다음이다. 차라리 취생몽사로 건너가는 삶이 깨끗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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