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설전(浮雪傳)
(오대혁 역주)
신라 진덕 여왕 즉위 초에 서라벌 남쪽의 향아(香兒)에 진씨의 아들이 있어 이름을 광세(光世)라 하였다. 태어나면서부터 영리했고 문제를 풀어냄이 타고났다. 보통내기들과는 어울리지 않고, 서쪽을 향해서 해를 따라 움직이기도 하고, 숲 속에서 편히 앉아 있기도 했고, 스님을 만나면 몹시 기뻐하였으며, 살생하는 것을 보면 이맛살을 찡그리며 서글퍼 했다.
마침내 불국사로 가 원정(圓淨) 선사를 만나 뵙고는 비둘기수레[鳩車]를 갖고 놀 나이에 삭발하고, 죽마(竹馬)를 갖고 놀 나이에 깨달음을 얻었다. 법명(法名)은 부설이며, 자(字)는 천상(天祥)이다. 서리 내린 소나무처럼 깨끗하고, 물에 비친 달처럼 텅빈 마음으로, 계율을 지키되 구슬이 빛남과 같이 온전하였고, 선정에 듦이 그윽하고 고요하였으며, 그릇이 크고 넓었으며, 법도를 아는 것이 매우 뛰어났다. 영남의 고덕(高德)은 그를 쓸 만한 그릇이라 여겼다. 겉으로 승려의 옷을 입고, 마음속으로 널리 용맹(龍猛)의 학문을 익히고자 하였다.
일찌감치 그는 지붕 위의 박처럼 매달려 살아감을 슬퍼하면서, 기숙(耆宿)을 찾고자 홀연히 같은 뜻을 가진 영조(靈照)와 영희(靈凞) 두 벗과 함께 떠났다. 그들은 모두가 몸을 바로 세우고자 하였고, 온화함을 공경하고 본성을 찾고자 하였다. 마음은 도(道)를 이루고자 하는 데서 벗어남이 없었으며, 행동은 말 이전에 있었다. 탐욕이 없음을 귀하게 여겼고, 세속적 욕망을 구하지 않았으며, 바른 거처와 대범한 일을 좋아했다.
그들은 남해를 돌아서 두류산(지리산)에 머무르게 되었다. 골짜기에 머물며 사아함(四阿含)을 통하고, 정밀하게 오명(五明)을 논하였다. 송화(松花)를 먹으면서, 선정에 들고, 익은 과일을 먹고, 도를 즐기다 보니, 어느덧 삼 년이 훌쩍 지나 버렸다. 다시 천관산에 두건을 걸고, 오 년 동안 머무른 다음 석장을 능가산(변산)으로 옮겼다. 그들은 주변을 유람하며 아름다운 경치를 저울질하고는 법왕봉 밑에 이르러 한 칸 초가를 지었다. 편액을 ‘묘적(妙寂)’이라 했는데, ‘묘입선적(妙入禪寂. 선정의 오묘한 경지에 들어간다.)’을 이른 것이다. 세 사람은 같은 곳에 머물며 한마음으로 도를 깨치려 하되, 입을 닫고 마음을 조용히 가라앉혀 진리를 직관하며, 문의 빗장을 닫아걸고는 갈고 다듬었다. 그러자 십재연(十載緣)이 다하고, 삼생(三生)의 꿈이 끊어져, 학문이 이미 궁극에 도달하게 되니, 행함이 둥근 구슬처럼 깨끗하였다. 각기 참됨을 기르는 시 한 장씩 썼다.
영조가 먼저 시를 지어 읊었다.
좋은 곳을 얻어 그윽하게 머무르니
소나무 우거진 산봉우리 위의 암자라.
선정(禪定)에 들어 불이(不二)를 보고
도를 찾다 기쁘게도 삼승(三乘)을 이루도다.
옥(玉)을 캐어 놓았건만 아는 이 누구일까
꽃을 머금은 새들만 조잘대며 운다.
삼가는 가운데 헛된 일 없으니
한맛의 법문(法門)에만 참구할 따름이라.
영희가 계속하여 읊었다.
구름 걷히어 환희에 넘치는 산봉우리
달빛은 늙은 소나무 서 있는 암자에 비추도다.
지혜로운 칼은 참으로 예리하여
마음의 근원 두세 번을 씻었도다.
골짜기에 봄이 들어 적적하기만 한데
산새는 재잘재잘 노래 부르네.
모두가 나고 죽음이 없는 즐거움 지니니
불법에 드는 문[玄關]에 들어감이 부질없어라.
부설이 기뻐하면서 이어서 화답했다.
함께 고요함과 텅빔[寂空]을 법으로 삼아
한 칸 암자에 구름과 학을 데리고 더불어 살았네.
이미 불이(不二)가 무이(無二)로 돌아감을 알았으니
앞의 셋과 뒤의 셋을 누구에게 물으리오.
한가롭게 뜰을 바라보는 중에 꽃들은 곱고도 곱고
창밖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를 마음대로 듣는다.
능히 곧바로 여래지(如來地)로 들어갈 것인데
어찌 구차하게 오래 머물며 참구하리?
평소 오대산을 생각하였는데, 그곳은 문수보살이 머무는 도량이다. 떠나기를 원하여 암자를 떠나 발길을 북쪽으로 향했다.
그들은 두릉(杜陵)의 백련지(白蓮池) 옆에 있는 구무원(仇無寃)의 집에 머물렀다. 그 집의 노인은 청신거사(淸信居士)로 본디 청허(淸虛)함을 숭상하여 도를 구함이 간절하였다. 그 노인은 깨달음의 실마리가 될 만한 것을 한 번 듣더니만, 진정으로 깨닫지 못하여 괴로워하면서 그들을 맞이하여 상좌에 앉히는 것이었다. 노인은 예전에 알던 사람처럼 반가워하면서, 물건을 늘어놓음이나 음식의 맛이나 예의를 갖추지 않음이 없었으며, 세상에서 전하는 바로도 드문 일이었다.
단란하게 하룻밤을 보내고, 이튿날 날이 밝아왔다. 그런데, 봄비가 진창을 만들어 길을 나서려니 편치 않았다. 오랫동안 그 집에 머물러야 했는데, 주인 노인은 법을 묻는 정이 늙었음에도 너무나 많았는데, 오랜 시간이 흐르면서는 더욱 더 그 정이 깊어갔다. 노인이 물으면 답을 하기를 밤낮으로 계속 하니 완연히 마명(馬鳴)보살의 지혜로운 말씀과 같고 용수(龍樹)보살의 강물과 같은 설법이었다. 사람이나 귀신이 서로 기뻐하고, 원근 가릴 것 없이 함께 기뻐하였고, 미물까지도 무릎을 굽힐 정도로 지극한 보물을 얻음과 같이 했다.
주인에게는 딸이 하나 있었는데, 이름이 묘화(妙花)라 했다. 꿈속에서 연꽃을 보고서 낳았기 때문이다. 용모와 재예(才藝)가 뛰어난 것은 한때라지만, 사랑스럽고 부드럽고 온화한데다, 엄격하고 절조까지 있었다. 비록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성장했지만, 보기 드문 인물이었다. 묘화가 이 날은 설법하는 소리를 듣더니, 놀랍게도 뭐가 원통한지 비참하게 눈물을 흘리는 것이 아닌가. 마치 아난(阿難)과 마등(摩登)처럼, 양왕(襄王)의 무산(巫山) 귀신과도 같았다. 그녀는 부설을 가까이 모시면서 떨어지려 하지 않고, 맹세코 부설을 따르겠다는 것이었다. 그녀는 영원히 부부가 된다면, 따르다 죽더라도 원망하지 않을 것이지만, 만약 버리고 떠나신다면 목숨을 끊고야 말겠노라고 했다. 부모도 딸을 사랑하는 까닭에, 수법사[부설]가 머물러 제도하여 주기를 간절히 바랐다. 천 번 만 번 기원하는 것이 밤낮이었다. 부설은 금석과 같이 견고한 뜻을 접고서 감히 욕망을 좇아 술에 취한 듯 살 수 없었으며, ‘어찌 세속에서 어리석게 살 수 있겠는가?’라고 생각했다. 그는 구무원의 집에서 도의 계율을 저버릴까봐 매우 두려워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보살의 자비로움을 생각지 않을 수 없었다. 결국은 육례를 잘 갖추지도 않고서 한 마디 말로 혼례를 치렀다. 마땅히 정성스럽고 담박하여 밀랍을 씹듯 아무런 재미가 없었는데, 연꽃이 물 위에 피는 것에 비교할 만했다.
영희와 영조 두 법사는 본디의 도를 생각하고는 친구를 잃어버렸다고 생각하여 무안해하고 절망하면서, 참담한 행색으로 게(偈)를 지어 주었을 따름이다.
영조가 먼저 게를 지어 말했다.
부질없는 지혜가 헛된 견해를 이루고
편벽된 자비는 애연(愛緣)에 이르고야 말았네.
지와 계의 수행은 항상 즐거우니,
하나의 도는 저절로 그리 되는 것.
구름이 움직임에 달의 운행이 있고,
매달린 깃발에 바람이 일어나네.
장래가 이미 손에 쥐어졌으니,
편안함은 색을 지어 이어지리.
영희가 계속 화답해 말했다.
하나의 대자리 누대를 이루는 힘이요,
으슥한 연못에서 발돋움하며 기다리는 인연이라.
수행은 대나무 쪼개듯 하여야 하고,
득도는 채찍을 휘갈기듯 하여야 한다네.
삼생(三生)의 괴로움 벗어나기 어려운데,
구무원의 집에 한 생각 매달려서야.
어느 해일지 병으로 물을 되돌려 보아,
먼 훗날 다시 만나 발걸음을 서로 이어보세.
부설선사도 원융한 도의 말로 운을 따라 답하였다.
깨우침은 평등(平等)을 따르되, 가지런하지 않게 행해야 하고,
깨달음은 인연 없는 자와 연을 맺되, 법도는 인연에 매여 있도다.
세상에 처하여 진리에 몸을 맡기니 마음은 드넓고,
속세에 머물러 도를 이루니 몸은 실팍하도다.
둥근 구슬이 손바닥에 있으니 붉고 푸른빛이 구별되고,
밝은 거울 앞에 나서니 참과 거짓이 뚜렷하도다.
색과 소리[色聲]를 얻어도 그것에 장애되어서는 안 되고,
굳이 산골짜기에 오래 앉을 일이 없으리로다.
드디어 부설선사는 솔잎차[松茶]를 가져다 두 친구에게 가득 부어주면서 이별의 말을 건넸다.
“도(道)란 검은 비단[緇]을 입느냐 흰옷[素]을 입느냐에 있지 않으며, ‘꽃밭에 있어야 하느냐 들판에 있어야 하느냐’에도 있지 않다네. 모든 부처님들이 방편으로써 생명체들을 이롭게 하려는 데 뜻을 두었다네. 도려(道侶)가 길이 참구하여 법유(法乳)를 배부르게 먹을 수 있기를 바라네. 나중에 찾아와서는 노부(老夫)에게 잘 가르쳐 주게나.”
부설선사는 추녀끝을 바라보았다.
선사의 몸은 비록 속세에서 힘썼지만, 마음은 물외(物外)에 머물러, 삼업(三業)을 부지런히 닦았고, 육도(六度)를 횡행하더니, 내외(內外)를 해통(解通)하게 되었으며, 그의 말은 글[典章]에 매임이 없었다. 그래서 사방의 이웃들이 기뻐하며 찾았고, 먼 곳의 사람들도 이끌었다. 의사를 구하는 선비들도 바람처럼 몰려들고, 약을 구하는 사람들도 폭주하여, 어리석음을 끊고 깨달음을 얻었다. 마른 지푸라기를 적시듯 법보시(法報施)를 널리 베푼 것이 어언 15년이나 되었다.
미묘함은 그의 집안에도 있어 법을 이을 두 자식이 태어났는데, 아들의 이름은 등운(登雲)이요, 딸의 이름은 월명(月明)이었다. 이 이름들은 모두 길한 꿈을 통해 느낀 것을 가리킨 것이다. 자녀는 부처님께서 안았다가 떠나보낸 병아리처럼 용의가 자세하고 올바르며, 은근한 절개와 높은 용맹을 지녔으며, 배움은 생각 이상으로 스스로 터득했고, 그림자를 보고 바람을 알듯 하나를 들으면 열을 알았다. 그리고 삼장(三藏)에서 말하는 가르침의 바다를 헤엄쳐 다니고, 육적(六籍)의 글숲[詞林]에서 놀았다. 그들을 찾아온 사람들은 그들의 자취를 따르려 하고, 만물은 병을 앓지 않고, 세월[風雨]이 좋이 흘러 벼와 오곡이 풍성하게 자라듯, 계획된 하루가 부족하면서도 계획된 한 해는 여유로웠다.
본현(本縣)의 고인(高人) 이승계(李承桂)와 상사(上舍) 김국보(金國寶) 등과 방외(方外)의 사귐을 맺고 서로 한가한 가운데서 즐겼는데, 노소(老少)가 하나로 어우러져 매일 경전을 읽고 이치를 논하였다. 비바람이 불건 눈과 서리가 내리건 신앙생활을 쉬지 않았는데, 마치 혜원(慧遠)이 연꽃을 완상하듯, 한자(漢子. 한퇴지)가 옷에 마음을 두듯 하였다.
부설은 세속의 일에 매달리다가 결국에는 두 아이를 아내에게 맡겨두고, 별당을 짓고는 재물을 탈취하고, 겁탈하고, 도적질을 하는 등의 옛 업장(業障)을 정련(精鍊)하였다. 부설은 본래 육문(六門)에서 비롯된 이견(二見)을 제거하고, 되돌려 듣고 본성을 들으려 했다. 그 본성은 하나의 참된 이슬과 같으며, 거짓 방편이 아닌 것이었다. 그렇지만 드러내놓고 그런 행동을 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아프다고 핑계를 대고, 죽이며 약을 먹는 사람처럼 하니, 편안하기도 했고 기운도 없었다. 깊이 잠심하다가 성도를 결심하게 되었다. 그는 비야리성의 입구를 사모하고, 소림사의 면벽을 연모하여, 수행한 지 5년 만에 밝게 빛나는 별과 같은 깨달음을 얻었다. 다시 나머지 티끌을 없애기 위해 지혜의 산악을 숭상하면서, 화엄법계를 또다시 깨닫고, 원각(圓覺)의 묘한 도량에 연좌하였다. 다만 스스로 기뻐할 뿐 타인들에게 설파하지는 않았다.
옛 친구인 영조와 영희 두 스님은 참예(參禮)한 날이 오래됨에 명산(名山)을 편력해 다니다가 드디어 연이 닿아 다시금 두릉에 있는 청신거사의 집에 이르게 되었다. 거사와 바라이가 벌써 신선이 되어버린지 오래되었는지, 소식을 물을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갑자기 갓을 쓰고 비녀를 꽂은 지 얼마 되지 않는 단정한 남녀를 만났다. 두 스님은 부설의 안부를 두 남매에게 물어보았다. 옛날 친구의 인연임을 알고는 남매는 서로 돌아보고는 집으로 들어가 아버지에게 알렸다. 그러자 부설은 말했다.
“옛 친구가 돌아왔다고 하니 참으로 기쁘구나. 깊었던 병[沆痾]이 다 낳은 듯하고, 마음[氣宇] 또한 맑게 트였다. 깨끗한 집에다 편안히 자리를 마련하고, 잘 대접하여라. 저분들은 뛰어난 도인[格外道人]이요, 사물의 이치를 널리 아는 군자[博物君子]로 잘 받들도록 할 것이며, 거스르거나 태만함이 없도록 하여라.”
부설은 바로 일어나 반가이 맞았다. 서로들 옛 정을 나누니, 육근(六根)과 육진(六塵)이 밝게 빛남이 밝은 달빛의 신비롭게 빛나는 송곳과 같았다. 두 자녀는 상인(上人)의 법력(法力)을 입어 아버지의 병이 나은 것이라고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부설은 두 무릎을 꿇은 다음 두 팔을 땅에 대고 머리가 땅에 닿도록 절하며, 하늘이 맺어준 인연들에게 공손히 나아갔다. 부설이 말했다.
“병 셋에 물을 가득 담아 오너라. 공부가 얼마나 무르익었는지 시험해 보고 싶구나.”
그들은 병을 대들보 위에 걸어 놓고, 각자 병을 쳤다. 영희와 영조가 병을 치자 병이 깨지면서 물이 흘러 나왔다. 부설 또한 병을 쳤는데, 병은 깨졌지만 물은 그대로 들보에 매달려 있는 것이 아닌가. 이에 부설은 두 사람에게 말했다.
“신령스런 빛이 홀로 빛나듯, 육근과 육진에서 벗어나면 몸의 참모습[眞常]이 나타나니 나고 죽음에 구속되지 않고, 흘러감이 병이 부서짐과 같습니다. 진리의 성질[眞性]은 본래가 신령스럽고 밝으며, 항상 머무는 것이 물이 허공에 드리움과 같습니다. 그대들은 두루 지식을 찾아 오랫동안 총림(叢林)을 돌아다녔는데, 어찌 만물의 나고 죽음이 무상(無常)하고, 공(空)과 환상이 법(法)을 지어냄을 알지 못하는가? 지금까지 쌓아온 업(業)이 자유로운지 자유롭지 못한지를 징험(徵驗)해 보고, 평상시의 마음이 평등한지 평등하지 않은지를 알아보고자 하여 오늘 그리 하였던 것인데, 그대들은 자유롭지도 못하고 평등하지도 못하였네. 예전에 엎질러진 물을 담아보자고 경계했는데, 함께 행하자던 맹세는 어디로 갔는가?”
이에 부설은 게(偈)를 지어 말하였다.
눈으로 보는 바가 없으니, 분별할 것도 없고,
귀는 소리 없는 것을 들으니 시비를 그쳤도다.
분별과 시비를 모두 놓아버리니,
다만 마음의 부처를 보고 저절로 귀의한다네.
이때 하늘의 구름이 자욱이 퍼지고, 신선 음악이 하늘에 가득하였다. 부설은 일념(一念)으로 단정히 앉아 허물을 벗고는 열반에 들었다. 향기는 바다 위에 떠다니고, 꽃비는 하늘에서 떨어졌다. 두 선사는 부설을 추모하여, 감실에다 사리를 안치할 요량으로, 학이 날듯 일렁거리는 불꽃으로 화장하였는데, 빗방울과 같은 신령스런 구슬이 나왔다. 그 사리를 거두어들여 보병(寶甁)에다 담아 오묘하고 고요한 남쪽 산기슭에다 묻은 다음 부도를 세웠다.
그런 다음 명계와 양계의 온갖 무리들을 위한 명양회(冥陽會)를 열었다. 호남의 선비들과 서민들이 구름처럼 도량에 모여들었다. 위북(渭北)에서 선(禪)을 강의할 때처럼, 신령스런 산악에 바람이 몰려들 듯 하였다. 이때 도문(道文)이나 도(道)가 법(法)의 바다와 구름을 이루어, 모두가 법 가운데 최고가 경지였으며, 세간의 사람들에게 사표(師表)가 되었다. 빨리 흘러가는 물처럼 맑은 말들이 이어졌고, 돌마저도 머리를 숙일 정도로 감화가 깊었다.
법회가 끝나갈 무렵, 부설 성사(聖師)를 이을 등운과 월명 두 사람의 머리를 깎았다. 그리고 별이 머무는 집을 짓고, 개오동나무에 눈물을 떨구며 신비로운 연꽃 연못을 생각했다. 세상에서 통발과 올무를 모두 뽑아버리고, 법을 이루고 신체를 잊은 채 팔장(八藏)에서 그윽한 뜻을 탐구하였다. 자애로운 아버지와 똑같이 속세에서의 덕을 사랑하여, 연등(燃燈)을 밝혀 부처의 마음을 이으려했다. 보배로운 곳에서 도탑게 놀면서, 또는 목욕재계한 비구니로 반주삼매(般舟三昧)를 닦고, 정토 구품연화대를 계속 염하였다.
세월은 빠르게 흘러 죽음에 임박하게 되니, 주현(州縣)의 도인들이나 선비들에게 널리 알리고, 산문의 승려들을 두루 불러 열반하는 모습을 보게 하여 방편문(方便門)을 열고자 하니, 소문을 들은 사람들이 개미떼처럼 몰려들었다. 월명은 온몸이 보랏빛 구름에 휩싸여 홀연히 서쪽 하늘로 향했다. 등운은 결인한 손에 푸른 구슬을 떨치며 보배로운 게송을 물 흐르듯 써 내려갔다.
삼생의 꿈을 깨부숨을 깨닫고,
신비롭게 구품연화대에서 놀고자 하네.
바람이 잦아들고, 맑고 지혜로운 바다,
달은 차가운 가을 하늘에 떠올랐네.
수렛길에는 신선의 음악[仙樂]으로 가득차고,
아름다운 연못에서 진리[法]의 배에 오르네.
반야삼매(般若三昧)에 깊이 들어,
극락에 가는 길이 참으로 기쁘도다.
글을 마치고 무언가를 바라는 듯한 그의 얼굴이 미소를 머금고 있더니, 그는 입적하였다. 상서로운 빛이 방안에 가득하고, 이상한 향기가 한 해 동안 풍겼다. 멀고 가까운 곳에서 이를 보고 듣고는 그의 도(道)를 칭찬하니, 그 이익이 매우 깊고, 공덕이 무궁하였다.
그들의 어미 묘화는 백십 세를 누렸는데, 장차 죽음에 이르려 하자 살던 집을 내어 놓아 원(院)을 세우고, ‘부설’이라 일컬었다. 또 산문의 석덕(碩德)들이 두 자녀의 이름으로 암자를 지으니 지금까지 ‘등운’과 ‘월명’이라는 이름으로 일러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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