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척당불기(倜儻不羈)

seongsoo 2011. 7. 14. 11:10

□ 척당불기(倜儻不羈)/이춘규 서울신문 논설위원

 

김부식이 편찬한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광개토왕 편에는 ‘광개토왕의 휘(諱)는 담덕(談德)이고 고국양왕(故國壤王)의 아들이다. 나면서부터 씩씩하고 당당한, 영웅스러운 위엄을 갖추었으며 척당(倜儻)의 뜻을 품고 있었다(生而雄偉 有倜儻之志).’라며 ‘고국양왕이 뜻을 이루지 못하고 돌아가시자 춘추 겨우 29세에 백제를 쳤다.’라고 적혀 있다.

 

척당(倜儻). 이에 대해 한(漢)나라 허신(許愼)이 작성한 설문(說文)에는 “척당은 불기(不羈)다.”라고 했다. 사기(史記)에서는 “불기(不羈)란 재주와 지식이 높고 원대하여 가히 묶어둘 수 없음을 말한다(不羈言才識髙遠不可羈係).”라고 했다. 송나라 때 정탁(丁度) 등이 수정한 집운(集韻) 권 8에는 “척당은 큰 뜻을 말하며 혹은 희망이라고도 한다(倜儻大志一曰希望也).”라고 했다. 지금은 척당불기(倜儻不羈) 로 쓰인다. 기개 있을 척, 빼어날 당, 아니 불, 굴레 기 자를 쓴다.

 

결국 척당은 “남보다 뛰어나고 원대한 의지나 자세”를 뜻했다. 광개토대왕이 품었던 척당지지(倜儻之志)는 고조선으로부터 이어져 온 천손사상을 이어받아 주몽이 꿈꾸었던 다물(多勿·옛땅을 되찾음)을 실천해 하늘의 규범인 홍익인간, 제세이화(濟世理化·세상의 어지러움, 어려움에서 구하여 다스리다) 이념을 세상에 펼쳐 보고자 했던 것으로 풀이된다. 만주 벌판에 태평성대를 완성하고자 했던 광개토대왕의 웅혼한 뜻이 엿보인다.

 

척당불기는 일본 에도바쿠후에서도 교육사상으로 유행했다. 메이지유신의 기초를 닦은 사카모토 료마를 포함한 변혁가, 교육자, 정치가들이 이 정신을 강조했다. 정치인·종교인으로 일본 도시샤대 설립자인 니이지마 조(1843~1890)는 유언을 통해 척당불기를 주문했다. 확고한 신념을 갖고 스스로의 책임 아래 독립해 권력에 구속되지 않는 자유로운 인간이 되라고 말했다. 현재도 도시샤대는 척당불기를 중시한다. 1996년 타계한 인기작가 시바 료타로도 척당불기를 예찬했다.

 

우리나라의 다수 정치인들은 새해나 중요한 시기에 4자성어로 각오를 다진다. 홍준표 한나라당 새 대표는 ‘척당불기’ 정신을 강조한다. 뜻이 크고 기개가 있어 굽히지 않는 정신이라고 한다. 그는 당 대표 당선 첫 기자회견에서도 “당의 위기를 척당불기 정신으로 헤쳐 나가겠다.”고 다짐했다. 의원회관 사무실 액자에도 걸어놓고, 새해 등 필요할 때마다 척당불기를 강조하는 홍 대표. 청와대에 대해서도 당당하게 나설 것으로 보여 주목된다.

 

※ 휘(諱)란 무엇이며, 불휘가 행해진 까닭은?

휘란 한국, 중국, 일본 등에서 왕이나 귀족 등의 이름을 말할 때 쓰는 말입니다. 원래는 왕이나 귀족이 죽은 뒤에는 살아있을 때 이름을 삼가서 부르지 않는다는 뜻에서 만들어진 말입니다.

 

불휘란 산 사람이 죽은 사람의 이름과 같은 글자를 쓰지 않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풍습은 대체로 중국 진나 라 때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불휘하는 방법에는 글자를 다른 것으로 바꾸는 것, 그 글자를 빼는 것, 획을 빠트리는 것 등이 있다. 따라서 휘 때문에 지방의 이름이나 관청의 이름이 바뀌는 경우도 많았다. 우리 나라에 불휘 제도가 들어온 것이 언제인지에 대해서는 알 수는 없으나, 삼국 시대의 문헌과 금석문에 불휘한 보기가 많다. 신라 문무왕의 비문에 세운 날짜를 '경진년', 신라 진성여왕 때 세운 숭복사 비문에는 '경오년'이라고 새겨져 있다. 이것은 본디 '병진년' '병오년'이라고 새겨져 있다. 이것은 당나라 고조의 아버지 이름인 '병'자 의 음을 피하기 위하여 '경진년'과 '경오년'으로 한 것이다.

 

우리 나라에서 왕의 휘를 피한 보기는 고려 때의 금석문에서 볼 수 있다. 봉암사의 정진 대사 탑비문을 보면 '문호 양반'이라는 글귀가 나오는데, 원 래는 '문무 양반'이라고 해야 한다. 고려 혜종의 휘인 '무'를 피하기 위하여 '호'를 쓴 것이다. 이들 뿐만 아니라 <삼국사기> <삼국유사> <균여전> 같은 옛 문헌이나 여러 선현들의 글씨와 그림을 새긴 현판에는 불휘한 것이 많다. 이들 문헌이나 현판에서 내용에 걸맞지 않는 글자가 보일 때는 우선 그것이 불휘한 것인지 알아보는 것도 중요한 역사 공부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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