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權力의 노을
문화일보 윤창중 논설실장/2011.06.27 14:01
뉘엿뉘엿 해 떨어질 때, 강화도 남단 초지대교로 넘어가 왼쪽으로 돌면 어미닭 따라다니는 병아리만한 섬 동검도가 나온다. 거기 꼭대기에 올라 선두리 포구 쪽 낙조(落照)를 바라보자면 썰물로 드러난 처연한 갯벌에 고깃배들이 우두커니 갇혀 있다. 말 못하는 장승처럼. 바다와 싸우고 돌아왔을 저 배들. 괜히 심란한 마음에 선두리 포구에 들러 활어 회 한 접시 시켜놓고 얼근히 취한다.
세상을 다 삼켜버릴 듯이 밀물처럼 몰려왔던 그 엄청난 권력! 그러나, 권력의 최고 절정을 누렸던 임기말 대통령. 권좌를 향해 여지없이 찾아오는 노을을 바라보며 미래를 놓고 번뇌한다. 청와대를 나가면 난 어떻게 될 것인가? 다음 대통령이 누가 돼야 안전? 내가 만들어야지!
1987년 6월17일 저녁-중산층 넥타이 부대들이 대통령직선제 개헌을 외치며 들고일어난 6·10 민주화 항쟁 일주일 후. 대통령 전두환은 고르고 골라 세운 민정당 대표·대통령후보 노태우와 당·정·청 권세가들을 안가로 불러 주석(酒席)을 마련한다. "오늘은 좋은 날. 내, 다음 대통령후보 모시고 한 잔 먹는 날 아니냐. 나보다 이 분이 더 권력이 세다. 나는 8개월 남았는데 무슨 권력이 있겠어?" 당시 대통령 사초(史草)를 담당했던 공보비서관 김성익의 '전두환 육성증언'은 대화록 전체를 가감없이 기록하고 있다.
취기가 오른 전두환, '떠나가는 김삿갓'을 부른다. "죽장에 삿갓 쓰고 떠~나~가~는 전(全)~삿갓…". 노래 마친 전두환, 일갈한다."노 후보가 운동을 못하나 음악을 못하나. 내가 운이 좋아 먼저 대통령을 했고, 이 양반(노태우)이 후보가 됐지만…이 사람을 무조건 존경하고 잘 모셔야 해. 목숨 걸고 나한테보다 백 배 더 잘 모시라는 거야." 화끈한 전두환, 한 곡조 더. "사나이 가는 길 앞에 웃음만이 있을소냐. …폭풍이 어이없으랴…". 대선후보 노태우의 답변, "각하(전두환)는 늘 민심의 한가운데에 계십니다. 그러면 내가 받듭니다." 이상한 소리다. 민심? 받들어, 뭘? 전두환은 6·10 민주화 항쟁에 맞서 노태우가 직선제 개헌을 수용하도록 결심했고, 이에 관해 "전 대통령과 노 대표 사이에서 깊은 논의를 통해 방향을 잡아가던 결단의 전야(前夜)이기도 했다"고 공보비서관 김성익은 해석을 달아놓았다. 6·29선언. 그러나 전두환은 10개월 뒤 그토록 신뢰했던 30년 맹우 노태우에 의해 백담사로 귀양가고서야 '안전한 후계자'를 통한 퇴임 후 보장이야말로 얼마나 공허한 것인지 통감한다.
1997년 5월, 국민회의 대선후보 김대중은 대통령 김영삼과 여당 대선후보 이회창의 갈등과 반목을 절묘하게 이용해 'DJ·YS 막후 채널'을 뚫는 데 성공한다. 역시 DJ는 절세의 전략가! 부산 인권변호사 출신 김광일이 소원했던 YS의 지근 거리로 다시 들어가 국민고충처리위원장→청와대 비서실장→청와대 정치특보로 승승장구하는 건 DJ에게 천운이었다. DJ의 기획가인 이강래(현 민주당 3선)는 '꼬마 민주당' 시절 정책위의장이었던 김광일과의 인연을 파고들어 김광일을 '딥 스로트(deep throat)'로 만든다. 이회창측의 DJ 비자금 폭로에 대한 검찰의 수사 거부 등을 포함해 대선 전 과정에 걸쳐 미주알 고주알 이강래를 통해 DJ에게 전달한다. (이강래 저 '12월19일') 10월24일, 대선을 코앞에 두고 돌연 YS가 DJ 를 청와대로 불러 영수회담을 한다. YS, "반드시 누가 돼야 하고 누구는 되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지 않으며, 어느 후보에게도 절대 불이익이 가는 일이 없을 것." 'DJ 집권'을 거침없이 허용! DJ가 이회창보다 더 안전하다고 판단하고 DJ 몸값을 올려주려는 것! 보수·우파 정권의 대(代)가 10년 간 끊기는 순간!
대통령 MB. 손학규가 민주당 대표된 지 8개월이나 지나서야 오늘 아침 영수회담을 했다. 복잡한 상념이 싹트게 한다. 금배지 달고 대선후보 지지도 2위에 오른 손학규를 왜 불러들일까? 민생 문제를 논의? 그런 영수회담, 처음 본다. 퇴임 후 고무신 거꾸로 신고도 남을 것 같은 저 한나라당 세력에 대한 '반동 심리'? 손학규 놓고, 말하자면 짠지 매운지 '간' 한번 보고 싶은 심리? YS 임기말을 답습해서는 안된다.
죽장에 삿갓 쓰고 방랑 삼천리
흰구름 뜬 고개 넘어
가는 객이 누구냐
열두 대문 문간방에
걸식을 하며 술 한잔에
시 한수로 떠나가는 김삿갓
세상이 싫든가요 벼슬도 버리고
기다리는 사람없는
이 거리 저 마을로 손을 젓는
집집마다 소문을 놓고
푸대접에 껄껄대며
떠나가는 김삿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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