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뭡니까

위선 사회와 속죄양 : 신정아

seongsoo 2011. 4. 24. 08:52

□ 위선 사회와 속죄양

정영인 부산대 교수 정신과 전문의

 

   

 

 

가짜 학위로 한국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신정아가 1년 6개월의 수감생활을 끝낸 후 그간의 상황을 고백한 자전적 수기가 또다시 세간의 관심을 증폭시키고 있다. 그녀의 수인번호인 4001을 제목으로 뽑은 것부터가 호사가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다. 신정아, 그녀는 누구인가? 한국의 내로라하는 미술관의 가장 잘 나가던 젊고 유능한 큐레이터에서 대학 교수로 변신한 신데렐라 같은 존재로, 권부 실세와 사랑에 빠졌다가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진 가련한 여인이 아니던가. 그런 그녀의 내밀한 이야기에 세상 사람들의 관심이 쏠리는 게 어쩌면 당연한지도 모른다.

 

신정아 수기, 노블레스 오블리주 공허함 확인

한 여인의 허접한 고백서에 다름 아닌 것에 세상 사람들이 관심을 갖는 진짜 이유가 무엇일까? 혹자는 인간의 원초적인 관음증적 욕구 때문이라고 말한다. 필자는 신정아의 내밀한 이야기에서 한국사회의 위선적 현상들의 단면을 읽을 수 있어 그녀의 고백에 관심을 갖는다. 그 이야기 속 주인공들은 한국사회의 최고 지도층으로 손색없는 사람들이다. 그 주인공들의 행태는 '노블레스 오블리주'라는 무언의 외침이 한국사회에서는 얼마나 공허한가를 확인시켜 준다. 그들에게서 노블레스는 특권의식의 발로였고 오블리주는 혀의 부질없는 무용과 입술의 부질없는 풀무질에 다름 아니었다. 그 단면들을 하나씩 벗겨보자.

 

신정아 문제는 그녀의 예일대 박사학위의 진위 논란에서 촉발되었다. 박사학위를 학문적 열정의 징표라기보다는 지적 장식품 내지 지적 열등감의 보상 수단으로 과시하고자 하는 한국사회의 위선적 풍토에서 가짜 학위는 그렇게 낯선 현상이 아니다. 필자가 속한 사회에서는 학위논문의 대필이 얼마나 보편화되어 있었으면 박사학위가 발바닥에 붙은 밥풀떼기보다도 못하다는 냉소를 받아도 이에 대해 항의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 신정아는 박사학위 위조로 영어의 몸이 되기도 했지만, 자신은 학위논문을 대필했었지만 학위 자체를 위조하지는 않았다고 항변하고 있다. 논문을 대필한 것은 잘못이었지만 정상적인 과정과 절차를 밟아 박사학위를 받았다는 그녀의 항변에서 측은함이 느껴진다. 학력(學力)보다 학력(學歷)이 중시되어 가짜와 가짜나 다름없는 진짜가 진짜 행세하는 한국사회의 허구로부터 신정아 역시 자유롭지 못하다.

 

이제 이 나라 최고 지성으로 간주되는 대학의 전직 총장의 행태를 들여다보자. 신정아는 교수직과 미술관장직을 제의하며 수시로 밤늦게 자신을 호텔 바로 불러내어 치근거렸다는 그에 대해 "존경을 받고 있다면 존경받는 이유가 뭔지는 모르지만 겉으로만 고상할 뿐 도덕관념은 제로였다"라고 말한다. 당사자는 교수직을 제의한 적 없다고 부인하지만, 진위에 상관없이 내밀한 이야기 속의 주인공이 된 것만으로도 도덕적 비난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일거수일투족이 기성 정치인 못지않게 정치적이어서 정치권으로부터 끊임없는 구애를 받아오던 그는 신정아로 인해 자신의 정치적 이미지에 돌이킬 수 없는 상흔을 남기게 되었다. 유난히 한국의 대학 총장들은 세속적 정치에 능해 그들의 행태에서 시대를 아우르는 지성적 면모를 찾아보기란 여간 어렵지 않다. 그 점에서 그 역시 예외는 아닌 것 같다.

 

'4001'은 한국 사회에 표출한 분노의 표현

다음으로 신정아가 어느 권부 실세와 나눴다는 애정 행각에 대해 생각해 보자. 그들의 애정 행각은 유난히도 남의 사생활에 관심을 가지는 우리 사회의 강한 관음증적 욕구를 자극함으로써 세간의 관심을 증폭시킨 결정적 요인이 되었다. 불륜을 옹호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지만, 사회적 신분이나 계층에 상관없이 룸살롱을 들락거리며 성을 사고파는 행태가 보편화되어 있는 한국사회가 그들의 애정 행각에 그처럼 호들갑을 떠는 게 오히려 어색하다. 권력이 개인의 자유의지를 무시하고 그 개인의 성을 능멸해서 죽음으로 내모는 우리 사회에 대해 영화평론가 유지나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여성이 좋으면 사랑을 하면 된다. (중략)권력을 갖더라도, 그에 더하여 사랑하고 싶은가? 성을 원하는가? 그렇다면 상대를 자신과 같은 인격체로 대하고 마음의 소통과 몸의 소통이 합치되는 통합적인 관계를 공들여 만들어야 할 것이다."

 

신정아는 한국사회의 선정성과 위선적 치부를 감추는 데 이용된 속죄양이었고, 4001은 그 속죄양이 한국사회에 표출한 분노의 표현이다. 4001을 이렇게 이해하면 어떨까? 묘하게도 4001을 거꾸로 읽으니 1004가 된다.

 

2011-04-13

출처:부산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