口是禍之門, 舌是斬身刀
(구시화지문, 설시참신도)
연산군이 자기를 흉보는 신하들이 있다는 걸 알고는 신하들로 하여금 나무로 만든 패(牌)에다가 새겨서 목에 걸고 다니게 한, 이른바 신언패( 愼言牌)에 새겨진 글귀로서 오대시대 풍도가 지은 설시에서 인용하였다.
입은 화를 부르는 문이요, 혀는 몸을 베는 칼이로다. 그러니 말을 삼가라는 의미임.
결국은 임금인 자기 흉을 보지도 말고, 함부로 직언입네 하고 귀찮게 자기한테 말하지 말란 뜻이겠지요
설시(舌詩) 풍도(馮道)
口是禍之門 (구시화지문) 입은 재앙의 문이요.
舌是斬身刀 (설시참신도) 혀는 몸을 자르는 칼이다.
閉口深藏舌 (폐구심장설) 입을 닫고 혀를 깊이 감추면
安身處處牢 (안신처처뢰) 가는 곳마다 몸이 편안하다
풍도(馮道)
932년에 최초로 유교경전을 조판·인쇄하도록 한 사람으로 알려진 유학자이며 재상. 그의 노력의 결과로 유교경전의 가격이 내려가 쉽게 구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전국적으로 학자와 지식인의 수가 많아졌으며, 과거시험에 응시하는 사람들이 늘었다. 그러나 그가 실제로 발간사업에 기여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풍도는 당시 대유학자로 존경받았다. 그러나 후세의 유교 사가들은 그가 충절이 없다고 비난했다. 혼란했던 5대(五代:907~960) 에 살았던 풍도는 5개의 나라에서 10명 이상의 황제를 모셨다. 충절을 군자의 가장 기본적인 덕목으로 보았던 후대의 유학자들은 여러 번 바뀐 황제를 섬긴 그의 거침없는 행동을 좋게 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