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금강경(법륜스님)

11 금강경 강의 제15. 지경공덕분(持經功德分) 제16. 능정업장분(能淨業障分)

seongsoo 2014. 10. 6. 01:07

 

 

15. 지경공덕분(持經功德分)_법륜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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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89페이지 펴주세요? 15 지경공덕분.

持經功德分 이 경을 지니는 공덕에 대한 얘기입니다. 이 경을 수지 독송하게 되면 얼마나 큰 공덕이 있느냐? 이 공덕에 대한 얘기입니다. 그러니까 이 내용상으로는 이미 앞 14분에서 어느 정도 마무리가 되죠? 일체 상을 떠나야 여래라 이름한다. 부처라 이름한다. 보살은 응무소주이생기심이어야 한다. 보살은 무주상보시를 해야 한다. 중생중생하지만은 중생이라 할 것도 없다. 여래의 법은 실다움도 없고 허함도 없다. 이렇게 일체상을 떠나야 적멸에 이를 수가 있다. 이렇게 어느 정도 내용상으로는 정리를 하면서 이와 같은 경전을 수지 독송하는 공덕이 얼마나 크냐? 에 대해서 지금 얘기하고 있습니다.

 

須菩提 善男子善女人 初日分 以恒河沙等身 布施 수보리야 만약에 어떤 남자나 어떤 여자가 있어서. 초일분이라는 건요. 하루를 세 등분 했을 때. 그 하나를 초일분이라 그래요. 그러니까 우리가 일상적으로 쓰는 용어로는 오전 중에 이렇게 이해하시면 되요. 오전 중에 오후에 저녁에 이렇게. 오전 중에 갠지스 강의 모래알 수만큼 그 몸을 던져서 보시를 하고.

中日分 復以恒河沙等身 布施 오후에 또 다시 갠지스 강의 모래알 수만큼 많이 그 몸을 보시하고

後日分 亦以恒河沙等身 布施 저녁나절에 또다시 갠지스 강의 모래알 수와 같은 몸으로 보시를 행한다 이 말이오. 그러니까 몸을 한 번 던져서 보시를 해도 그 공덕이 한량이 없는데. 하물며 그 몸을 갠지스강의 모래알 수처럼 많이 보시를 한다면 그 공덕이 한량이 없겠죠. 그런데 갠지스강의 모래알 수처럼 많이 보시를 하는 거를 오전 나절에 그 만큼 하고 또 오후 나절에도 그 만큼하고 또 저녁나절에도 또 그 만큼하고 하루에도 갠지스상의 모래알 수만큼 많은 몸을 던져서 보시하는 거를 3배나 하는데. 그런 거를 하루 하고 마치는 게 아니라.

如是無量 百千萬億劫 以身布施 이와 같이 한량이 없는, 한량이 없는 백 천 만 억 겁 동안 그 몸으로 보시를 한다. 그러니까 얼마나 많이 몸을 던져서 보시를 했나 하는 것을 우리들에게 확실하게 이해시켜주기 위해서 이렇게 셈을 곱하고 곱하고 곱하고 곱하고 곱하고 이렇게 또 계산하도록 했단 말이오. 수학적으로 계산하면 나오겠죠? . 몸을 몇 번 던져서 보시를 했나? 이러면 일단 갠지스강의 모래알 수 X 3 X 365X 일 겁이 몇 년이냐에 따라 다르겠죠? 일 겁을 만약에 1억년이다 하면 곱하기 1. 그죠? 거기다 곱하기 얼마여야 된다? 100곱하기 천 곱하기 만 곱하기 억, 곱하기 무량, 무량은 얼만지 잘 모르죠? 이렇게 하면 몸을 몇 번 던져서 보시를 했는지 수학적으로는 컴퓨터 두드리면 금방 나와요. 계산기 딱 두드리면 그죠? 그러면 얼마 곱하기 10의 동글뱅이가 몇 개 붙는다? 50개 붙으면 50, 100개 붙으면 100, 이렇게 계산이 나오겠죠. 이렇게 한량없는 보시를 행한다 이 말이죠. 그렇게 하여도,

 

若復有人 만약에 다시 어떤 사람이

聞此經典 이 경 설하심을 듣고

信心不逆 믿는 마음에 거역하지만 않아도. 그러니까 이 경을 얻어듣고 에이~ 되도 안했다. 뭐 쓸데없는 소리. 아이고 그러면 세상이 어이 되라고? 이렇게 이게 거부하는 마음이에요. 이렇게 거부만 하지 않아도. 불역. 믿어서 거부만 하지 않아도

其福勝彼 저 복보다 더 크다. 앞에 한량없는 몸을 던져서 보시한 것보다 공덕이 더 크다 이거야. 그런데

何況 書寫受持讀誦 하물며, 즉 마음에 거역하지만 않아도 거부하지만 않아도 저 복보다 더 큰데. 하물며 서사(쓰고 배끼고) 고대로 배끼는 거. 복사 이러죠. 서는 자기가 쓰는 거고, 금강경을 쓰는 걸 말한다면 사는 고대로 배끼는 걸 말해요. 서사하고. 그걸 받아 지녀서 읽고 외우기까지 하면 말할 것도 없다 이 말이오. 그런 것만 해도 뭐한데 그런데 거기서 또 뭐까지 한다?

爲人解說 남을 위하여 해설해 주면 그 복이 얼마만 하겠느냐? 그건 상상도 못 한다 이런 얘기요.

須菩提 以要言之 수보리야, 요점을 중요한 것만 말한다면

是經 有不可思議 不可稱量 無邊功德 이 경은 그러니까 아예 그냥 한마디로 딱 요점으로 말한다면 이 경의, 이 경을 수지 독송하는 그 공덕은 도저히 그 뜻을 헤아릴 수가 없다 이거야. 그 얼마라고 이렇게 뭘 갠지스강의 모래 알 수만큼 얼마 해서, 조 무량 한량없고 이렇게 한다 해도 그건 어쨌든 머리로 헤아리는 거 아니오. 그죠? 그건 헤아릴 수가 없고, 그 공덕이 얼마다. 양이 얼마 정도 된다고 이렇게 이름 붙일 수가 없고. 무변, 도대체 그 공덕의 끝을 변을 생각할 수가 없다. 그 변이 없는 그런 공덕이 있다. 앞에 유자가 붙어있죠. 그런 공덕이 있다. 이 금강경을 수지독송하는 그 공덕, 즉 금강경의 가르침을 깨닫는 그 공덕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이 말이오.

 

그런데 이걸 그냥 책 하나 구해서 죽~ 하루에 7번씩 읽으면 된다. 이런 뜻이 아니라고 제가 수도 없이 얘기 했죠? 어떻게 해야 된다고? 범소유상이 개시허망인줄을 알아야 된다. 모든 상을 떠나야 여래를 본다. 마음을 내되 그 어디에도 집착해서 마음을 내서는 안 되고 보시를 행할 때도 그 어디에도 집착해서 보시를 하면 아니 된다. 한량없는 중생을 구하되 중생을 구한다는 생각을 내서도 아니 된다. 하는 이런 뜻이란 말이오. 그 어떤 상도 부처라는 상도, 보살이라는 상도, 불법이라는 상도 지어서는 아니 된다. 그 법은 옳으니 그러니 하는 게 없다. 붓다의 법은 옳다 그르다 하는 그 양쪽을 다 떠나야 된다. 그래서 여래의 법은 실다움도 없고 헛됨도 없다.

이런 것들을 깨달아서 마치 꿈을 깨듯이 확연히 눈을 떠서 눈 있는 자가 이 세상에 가지가지 빛깔과 모양을 훤하게 종종색색이 다 보는 것과 같이 그렇게 훤해지게 된단 말이오. 이 금강경을 수지독송하게 되면, 수지독송이라는 의미가 그런 뜻이에요. 그러니 그 사람이 얻는 공덕은 그 어떤 유루복으로 형상에 집착한 그 공덕으로는 어떤 비유로도 그것하고는 비교될 수가 없다.

如來 爲發大乘者說 爲發最上乘者說 이것은 여래가 대승을 발한 크게 마음을 내서 일체 중생을 구제하겠다고 하는 그런 대승을 발한 자를 위하여 연설을 하는 거며. 가장 높은 법을 얻겠다고 마음을 발한 자를 위해서 이 법을 설하는 거다 이거야.

그러니까 정말 값나가는 물건을 얻겠다는 사람에게 금이나 다이야몬드를 주는 거지. 그냥 적당한 거 찾는 사람한테는 은이나 동이나 잡석을 준다 이런 얘기에요. 그러니까 정말 이것은 최상승을 발한 자, 대승을 발한 자를 위하여 이와 같이 설한다. 일체 중생을 구제하겠다고 큰 뜻을 낸 사람에게 중생 중생하지만은 중생이라 할 실체가 없느니라. 이런 말을 해 주지. 중생 구하겠다고 생각도 없는 사람한테 중생이라는 게 실체가 없느니라. 이런 말을 해 주지도 않는다 이 말이오. 무슨 말인지 이해하시겠습니까? . 보살행을 하겠다고, 보살행을 하겠다고 발심을 해서 스스로 천민의 신분이 돼서 와서 그렇게 애를 쓰고 있으니 방울스님이 가서 스스로 자기가 뭐가 돼서 불쌍한 중생이 돼서 원효의 뭐를 받는다? 도움을 받는다 이 말이오. 갖가지로 도움을 받고서는 나중에 도움 받을 게 없는 줄을 턱 한 마디해서 보여준다 이 말이오.

 

원효가 분황사에 앉아 그런 마음도 안 낼 때 가서 그렇게 할까? 안 한다 이거야. 아시겠어요? 뭔가 애를 쓰고 있으니까 그 앞에 나타나서 그런 깨우침을 준다 이 말이오. 최상승 발한 자를 위하여 대승을 발한 자를 위하여 이렇게 지금 범소유상이 개시허망한 줄을 얘기해주는 거지. 그런 저 산꼭대기 올라가려고 생각도 안하고 밑바닥에 있는 중생보고 저 산꼭대기는 꼭대기가 아니다 이런 말을 할 필요가 없단 말이오. 산꼭대기 그래도 올라가려고 애를 써서 중턱에 중간봉우리에 서가지고 이게 꼭대기다 하고 큰소리치니까. 야 이놈아 이게 꼭대기가 아니고 저게 꼭대기다 이렇게 말해주는 거지. 밑바닥에 앉아 있는 사람보고. “야 임마 저 중간 봉우리 있지. 저건 꼭대기 아니야.” 저기 가면 안 돼. 이런 말 할 필요가 없다. 이거야.

 

若有人 만약 어떤 사람이 있어서

能受持讀誦 廣爲人說 능히 이 금강경을 수지 독송하고 널리 사람을 위하여 연설하여 연설하여 주면. 사람을 위하여 그 법을 설해주면

如來 悉知是人 悉見是人 부처님께서는 여래께서는 다 알고 있다 이 말이야. 이 사람을 다 알고 있고, 이 사람을 다 보고 있단 말이오. 이 사람이 어떻게 될 거라는 거를.

皆得成就 不可量不可稱 無有邊不可思議功德 그 량을 도저히 측량할 수가 없고, 거 뭐라고 이름 붙일 수가 없고, 끝이 없고, 그 뜻을 헤아릴 수가 없는 그런 공덕을 성취, 그런 공덕을 성취하여 모두 얻으리라는 것을 부처님께서는 다 보고 있고 다 알고 있다 이 말이오.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지금 금강경을 듣고 깨우치면 그게 뭐 하는 게 된다 그랬어요? 수지 독송하는 게 된다 이 말이오. 또 여러분들이 진정으로 수지 독송을 하면 제가 헛소리를 하는 게 아니고 뭐 하는 게 된다? 광위인설하는 게 된다 이 말이오. 그러면 우리들이 함께 얻는 그 공덕은 헤아릴 수가 없다. 그것은 우리들의 사량분별로는 도대체 얼마라고 이름 붙일 수도 없고 측량할 수도 없고 끝이 없다 이 말이야. 그런 공덕을 다 지금 얻고 있구나 하는 거를 부처님께서는 다 보고 계시고 다 알고 계신다 이 말이오. 그러고 있는 줄 알았는데 한량없는 공덕을 다 얻고 있는 줄 알았는데 엉뚱하게 주먹만한 복을 달라고 또 질문을 하면 어때요? ? 그래 주죠 뭐. ~

 

如是人等 이와 같은 사람 등은 즉, 이렇게 한량없는 공덕을 쌓는 사람, 즉 수지독송한 사람 등은

則爲荷擔如來阿多羅三三菩提 하감이라는 거는 어깨에 둘러매다 이런 뜻이에요. 어깨에 둘러매다 이런 뜻이니까. 여래의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자신의 어깨에 둘러맨 것과 같다 이러니까 그게 무슨 말이에요? 자기 것으로 했다 이 말이죠. 이 사람은 여래의 그 아뇩다라삼먁삼보리 최상의 깨달음을 곧 얻었다 이런 말이다 이런 말이요. 어깨에 둘러맸다. 짐봇다리를 어깨에 둘러 맨 것은 아니겠죠? 그러니까 남의 양떼를 세는 것처럼 멀리서 바라보는 게 아니라. 완전히 자기 것으로 했다. 얻었다 이 말이죠. 체험을 했다.

 

何以故 須菩提 어찌한 까닭이냐 수보리야

若樂小法者 작은 법을 즐기는 자는, 만약에 작은 법을 즐기는 자가 있다. 이 작은 법이라는 것은 뭘까? 그냥 조그마한 것을 구하는 자. 이렇게 얘기할 수도 있지만 여기서는 소승을 말합니다. 소승법을 즐기는 자는

着我見人見衆生見壽者見 내다 하는 견해와, 사람이다 하는 견해와, 중생이다 하는 견해와, 수자다 하는 견해에 사로잡혀서 집착해서 사로잡혀서

則於此經 不能聽受讀誦 爲人解說 이 경을 능히 수지 청 듣지도 앞에 불자가 붙어서 전부 부정해 버렸어요. 능히 뭐하지도 못하고? 듣지도 못하고, 받아 지니지도 못하고, 외우고, 읽고 외우지도 못하며 남을 위하여 해설해 줄 수도 없다. 그러니까 듣고 받아 지녀 읽고 외우고 남을 위하여 해설해 주는 것을 하지 못한다. 불능이라는 말이 뭐요? 절대로 할 수가 없다 이 말이오. 수학에 불능이라는 거 알아요? 부정, 불능 이런 게 있잖아 그죠? 불능이라는 말은 절대로 할 수가 없는 것을 말한다. 그런 일은 있을 수가 없다. 이 거요.

 

須菩提 在在處處 若有此經 수보리야, 곳곳마다 있는 곳곳마다. 수보리야 이 경이 있는 곳마다 이 말이오. 곳곳마다 이 경이 있는 곳에 이런 얘기요. 수보리야 곳곳마다 이 경이 있는 곳에는

一切世間 天人阿修羅所應供 일체 세간에 하늘의 신들과 모든 인간들과 아수라 등이 응당히 공양하는 바다. 다 받들어 모신다 이 말이오. 공양하는 바이니

養當知此處 則爲是塔 마땅히 알아라. 이 곳은 곧 탑과 같다. 부처님의 사리를 모시는 탑과 같다. 이 말이오. 그래서

皆應恭敬作禮圍繞 以諸華香 而散其處 모두 다 마땅히 응당히 공경한다 이 말이오. 다시 말하면 이 경이 있는 곳은 부처님의 탑이 있는 곳과 같다. 이랬는데. 부처님의 탑이 있는 곳에 사람들의 행동이 어떠냐 하면 첫째 거기 가서 무릎을 딱 꿇고 두 손을 모아 쳐다보면서 공경하죠.

자기를 낮추고 상대를 우러러 보는 것을 공경이라 그래. 공경을 한 뒤엔 다시 엎드려 뭘 합니까? 절을 하죠. 그게 장래란 말이오. 엎드려 절을 한단 말이오. 주위를 돌면서. 그러니까 원래 부처님 그 처소에 갈 때는 여러분들이 자리에서 일어나서 오른쪽 어깨를 착 들어 올리고. 편단우견하고 말이에요. 딱 올리고 자리에 일어나서는 세 바퀴를 먼저 돕니다. 이게 위요란 말이오. 세 바퀴를 돌고는 앞에 착 앉아서 오른쪽 무릎을 땅에 꿇고 우슬착지하고, 합장공경을 하고 우러러 보면서 함장공경 이렇게 해서 말을 한단 말이오. 그러니까 절을 하고 말이에요. 절을 하고. 그러니까 작례위요, 주위를 돌면서 뭐라고? 예를 다 하고.

 

그러니까 그 다음에 모든 향과 꽃으로 화향이니까 꽃과 향으로 모든 꽃과 향으로 이곳에 뿌린다 이 말이오. 아시겠습니까? 이렇게 하는 곳이다. 이것은 바로 앞에 나와 있는 소응공양 한다. 공양을 어떻게 하느냐를 다시 더 자세하게 설명을 한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부처님 탑에 가면 우선 꽃을 가져가거나 향을 가져가죠. 향을 꽂고 꽃을 올리죠. 그런데 인도 사람들은 어떻게 하느냐 하면은. 꽃을 앞에 갖다 놓는 경우도 있지만 꽃을 이렇게 뿌립니다. 제가 가면 꽃을 한 송이 따서 손에 갖다 주는 사람도 있고, 꽃 한 송이를 두 송이를, 안 그러면 꽃잎을 따서 이렇게 손에 쥐고 와서 손 벌리라 그러고 거기다 턱 놓고는 무릎에다 턱 갖다 놓기도 하고. 지금도 그래요.

 

학교 짓는데 가면. 스님이 자기들 학교 지어 줘서 고맙다고 환영을 할 때 애들이 길에 죽~ 서서. 그 다음에 목걸이를 꽃목걸이를 가지고 걸어줍니다. 우리는 한 사람에게 하나씩 걸어주잖아. 그죠? 그런데 거기는 열 개고 20개고 각자 자기가 가지고 와서 다 걸어요. 목이 부러지도록. 처음엔 저는 그거를 적응을 못해서 그런 것을 조금 거부하는 게 있잖아요. 약간 결벽증이 있어. 그죠? 그런 거 못하도록 했는데. 그것도 사실은 거부할 게 아니더라고. 왜냐하면 그 들의 문화란 말이오. 그들이 어떤 자기가 좋은 것을 형식적으로 하는 게 아니고. 저는 그것이 약간 형식화 된 거 같아서 그런 거를 불교에서는 꽃, 목에 걸고 그런 거 못하게 하잖아요. 그죠?

 

그래서 거부했는데 그게 그 사람들의 문화라. 다른데 가 봐도 다 그래. 스리랑카 가면 더 심해요. 그러니까 꽃을 갖다가 목에 걸어주고. 그 다음에 앞에 꽃을 쥐고 뿌려. 가면서. 이거는 저기 델리에 가면 국경일 날 보면 꽃을 손으로 뿌리는 정도가 아니고. 비행기를 갖고 공중에서 생화를 막 뿌려요. 그래서 하늘에서 내리는데. 우리는 보통 색종이를 가지고 하잖아 그죠? 운동선수들 들어오면 뿌리는데. 색종이 갖고 하는 거, 주어 보니까 전부 생화야. 생화를 막 뿌려. 그렇게 뿌리니 임금이 꽃을 싹 다 가져 가가지고 선해동자가 꽃 구할 때가 없었다. 그런 얘기도 조금 처음엔 이해가 안됐는데. 그 사람들 하는 거 보면 아이고 요즘도 그런데 옛날엔 그러고도 남았겠다. 이런 게 이해가 된단 말이오. 그러니까 문화가 서로 다르단 말이오.

 

그래서 한문 번역할 때도 룸비니동산이다. 제다동산이다. 이러면 산이 요렇게 조그마하게 동그란 언덕 같은 게 있고, 거기 이렇게 나무가 심어져 있고 꼭대기 가면 정자도 하나 있고. 이래야 뭐라 그래요? 동산이다. 이러잖아요. 그런데 그거는 중국이나 한국식이고. 인도에는 그냥 숲을 한문으로 번역할 때 뭐라고 번역한다? 동산이라고 번역해 놓으니 머릿속에서 그 놈의 동 때문에 산이라는 것 때문에 그냥 숲이다 이러면 우리는 산세가 많은 데니까 숲이다 하는 개념이 잘 없잖아요. 숲이 좀 우거진 데는 약간 언덕이 묵직한데 그런데 모여 있잖아요. 지대가 약간 높은데.

 

그런데 인도는 완전히 편편한 무슨 불도우저로 밀어 놓은 것처럼 운동장처럼 평평한데 동산을 만들려면 흙을 져다 부어가서 그렇게 만들어야 된단 말이오. 그런데 가보면 약간 높은 데가 있어요. 그건 왜 그러냐 하면 옛날 절이 다 허물어져서 건물이 허물어져 이게 흙이 돼서 지대가 좀 높단 말이오. 전부다 평평하단 말이오. 그러니 숲을 동산이라고 번역하니까 룸비니 동산이다. 룸비니에 가면 꽃피고 새운다. 이러니까. ~ 어떨 거다. 이렇게 생각하는데 그게 아니라 그냥 밀림을 말하는 거란 말이오. 그런 것들이 번역상에서 늘 차이가 생기게 되죠. 문화의 차이란 말이오. 문화의 차이.

 

그러니 탑이 있으면 이렇게 가서 처음에 가서 뭐 한다? 향을 뿌리고 여기 이산기처라는 말을 내가 하려는 거요. 아시겠어요? 왜 뿌리냐? 이렇게 생각하는데 이 사람들은 꽃을 뿌리고 향을 뿌리고 우리 왜 뭐 할 때 물 뿌리잖아. 그죠? 그런 것처럼 뿌리고. 물 뿌린다니까 여러분들도 기억나십니까? 옛날에 우리 시골에서 당수나무 아시죠? 나무에 제를 지내거나 집에 이 연 초에 이 안택하죠. 집이 일 년에 편안 하라고 봉사나 그렇지 않으면 무당 데려다가 한식 알아요? 그런 거 할 때 보면 우선 마당을 깨끗이 쓸고 전부 물을 뿌리죠. 물을 뿌리고 산에 가서 빨간 흙을 퍼와서 황토 흙을 골목에 오는데 신이 오는 거를 예비하는 거란 말이오. 저 골목 저쪽 끝부터 조금씩 나아가 마당에도 다 뿌린단 말이오. 이게 신성하게 하는 거란 말이오. 그런 것처럼 뿌리는 게 있어요. 우리도. 물도 다 뿌리고 그런단 말이오.

 

그런 것처럼 여기서는 뭘 뿌린다고? 향과 꽃으로 다 뿌린단 말이오. 그리고 또 세 바퀴 돌고, 탑돌이 유래가 그렇죠? 거기 무릎을 꿇고 엎드려 절을 한다. 그건 최대의 경의를 표하는 거죠. 주로 어디에 가서 그렇게 합니까? 부처님 탑에 가 그렇게 한단 말이오. 부처님 탑은 부처님의 진신 사리가 있는 곳이니까. 곧 부처님이 계시는 곳과 똑같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렇게 한단 말이오. 그런데 이 경이 있는 곳은 바로 부처님 탑이 있는 곳과 같다 이런 얘기에요. 수보리야. 만약에 이 경이 있는 곳이라면 일체세간의 신들과 인간과 수라가 마땅히 공양을 올리는 바이니 마땅히 알아라. 이곳은 곧 탑과 같느니라. 공경하고 절을 하고, 주위를 돌고, 향을 곳곳에 향과 꽃을 곳곳에 뿌리는 그런 거를 모두 다 응당히 한다. 이런 얘기요.

 

그러니 이 경이 있는 곳만 해도 이렇게 존중을 받는데. 하물며 이 경을 수지독송하고 위타인설하는 그 공덕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여기서 서사, 수지독송이란 말이 생겨놓으니까. 야 그래서 공덕을 쌓으려고 옛날 사람이 뭐했다? 사경이 나온 거요. 이것을 배껴 쓰는 게 한량없는 공덕이 있다. 이래서 사경이 나왔단 말이오. 그러니 여기서 다 배껴 쓰고 수지 독송하고 위타인설한다는 거는 그냥 형식적으로 보면 안 되고. 그것이 쓴다. 배 낀다. 받는다. 지닌다. 남을 위해서 연설한다는 것을 다 어떻게 해야 된다? 범소유상이 개시허망한 줄을 체득해야 된다 이 말이오. 그러면 쓰면서도 다 그걸 염두에 두고 쓰면. 그게 쓰는 것과 내용이 일치하겠죠?

 

복 준다니까 금물 사다가 종이 글에다 글 예쁘게 쓰는데만 정신이 없고. 이렇게 내가 힘들여 쓰면 복이 얼마나 돌아올까? 이런 생각하고 쓰면 이건 바로 이미 상에 집착한 거에요? 상에 집착 안한거요? 상에 집착안한 거란 말이오. 이러면 금강경 가르침하고 십만팔천리를 이미 떠나 버렸단 말이오. 그러니까 서사하고 수지하고 독송하고 위인 해설한다는 내용을 정확하게 이해해야 된다 이 말이오. 위인해설을 하는 공덕이 있다. 그러니까 사람들을 모아놓고 여기 앉아서 한 번 읽으면 한번 위인해설한거고. 두 번 읽으면 두 번 위인해설한거고. 그래서 매일 앉아 내용도 모르게 중얼중얼 외우면 엄청난 공덕이 있다 이렇게 생각하면 안 된다 이 말이오. 그 내용을 소화해서 해야 된다.

 

그러면 여러분들이 이 금강경을 읽으면서 한 번 봐요. 그 동안에 부부간에 갈등도 있었고, 자식 때문에 갈등도 있었고, 사업체 때문에 갈등도 있었고. 또 나이 들었다고 늙었다고 또 직장 그만뒀다고 여러 가지 정신적으로 고통이 있었는데. 이 금강경을 가만히 이렇게 법문을 듣고 경을 읽고 공부를 하다 보니. 아이고 다 꿈같은 거. 그거 다 지나놓고 보니 다 별거 아닌 거. 이렇게 생각이 들면서 지금 다 이렇게 눈앞에 닥칠 때는 현실현실현실하지만 지나놓고 보면 어때요? 다 별거 아니죠. 지나놓고 보면 별거 아닌 거를 가만 현재에도 돌이켜보면 지금 이렇게 눈앞에서 보이는 게 별거인거 같지만은 이것도 지나놓고 보면 별거 아닐 거다.

 

이렇게 생각하면 눈앞에 나타난 일에 대해서 그렇게 집착을 안 하게 되고 속상해 안 하게 되고. 사람이 담이 점점 커진단 말이오. “아이고 그거 뭐 시험공부 좀 못했다고 해가 서쪽에서 뜨겠나?” 요렇게 탁 넘어간다 이 말이오. “손가락 하나 부러졌다고 그게 대수겠냐? 치료하면 되지.” 이렇게 넘어가면. 사는데 자꾸 여유가 생긴단 말이오. 아이고 뭘 잊어버렸다 하면 전에 같으면, “야 이놈의 자식아. 그거 얼마 줬는데 그걸 잊어버리냐?” 이러고 친구 줬다 그러면 난리가 나고. “이 바보 같은 게 니가 어떻게 사느냐이러지만은. 줬다 그러면 아이고 잘했다. 네가 벌써부터 보살행을 하구.” 이렇게 탁 넘어가면 매사가 편안해 진다. 어떻게 금강경 들으면서 어떻게 쬐금 나아진 거 있어요? 그럼 그게 한량없는 뭐다? 공덕이다. 그게 한량없는 공덕이다. 공덕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31 : 09)

 

16. 능정업장분(能淨業障分)_법륜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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能淨業障分 능히 모든 업장을 깨끗이 한다. 능정업장. 능히 모든 업장을 깨끗이 하는 분이다. 다시 말하면 일체 모든 업장을 과거세에 지은 모든 업장을 소멸시키는 그런 힘이 있다 이 말이오.

復次 須菩提善男子善女人 다시 다음에 수보리야 선남자 선여인이

受持讀誦此經 이 경을 받아 지녀 읽고 외우되

若爲人輕賤 만약에 사람들이 가볍게 여기면

是人 先世罪業 應墮惡道 이 사람은 과거세에 지은 죄업으로 응당히 악도에 떨어질 것이로되

以今世人 輕賤故 지금 세상 사람들이 가볍게 여긴 까닭으로

先世罪業 則爲消滅 과거세에 지은 모든 죄업이 다 소멸하고

當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마땅히 얻으리라. ~ 금강경을 수지독송하면 이렇게 한량없는 공덕이 있다. 이렇게 해서 금강경을 밤낮주야로 독송을 한다 이 말이오. 그런데도 사람들이 나를 부처님처럼 어때요? 내 주위에 와서 향을 뿌리고 꽃을 뿌리고 나한테 엎드려 절을 하고 먹을 거도 갔다고 그럴 줄 알았잖아 그렇다고 그랬잖아 그죠? 그런데 그러기는커녕 도리어 나를 손가락질 하면서 시끄럽다. 시끄러워 못살겠다. 금강경 읽는 데 시끄러워 못살겠다고 욕을 하고. ~ 이 놈아 그걸 읽는다고 무슨 변수가 생기냐고 욕을 하고. 미친놈이라 그러고. 지옥에 떨어질 거라고 욕을 하고. 그 정도로 욕하는 것만 해도 괜찮은데. 두드려 맞기까지 했다 이 말이오.

 

그러면 가만 한 번 생각해 봐요. 앞에는 분명히 뭐라 그랬어요? 금강경을 수지독송하면 그 공덕이 한량없다 그러고. 천인 천상사람과 인간과 아수라가 다 뭐다? 받들어 모신다. 그랬잖아. 그죠? 그러면 금강경을 수지독송하면 천신이 내려와서 나를 떠받들고 아수라가 나를 호위를 하고 온갖 사람들이 나를 받들어 모시고 공경을 해야 될 텐데. 그러기는커녕 남도 아니고 내 남편이나 내 자식이나 내 부모부터 내 아침에 읽어나 금강경 읽는다고 시끄럽다고 고함을 지대고 손가락질하고. 경전을 찢고 앞에 향 놔 놓은 거 하고 촛대를 발로 차고 이러니. 이 도대체 앞뒤 내용 말이 안 맞다 이거야. 공덕이 있기는커녕 뭐만 있다? 갖가지 재앙만 있다. 거 왜 그러냐 이거야.

 

그건 왜 그러냐 하면 과거세에 내가 지은 그 죄업으로 보면 과거세 내가 지은 그 죄업으로 보면, 마땅히 지옥에 떨어져야 된다 이거야. 내가 과거 생에 세세를 쌓아온 그 업으로 보면 지옥에 떨어져야 마땅하다. 이거야. 그런데 이 금강경 읽은 공덕으로 그 사람들한테 욕 좀 얻어먹고, 발로 한 대 차이고, 뺨따귀 한데 맞는 걸로 다 지옥에 떨어질 과보가 다 뭐했다? 면죄가 됐다. 이런 얘기요. 그러니 맞는 게 좋아? 안 맞는 게 좋아? 욕 얻어먹는 게 좋아? 안 먹는게 좋아? 얻어먹는 게 좋은 거다. 이 말이오.

~ 내가 어쩌다가 남한테 돈을 1억을 빌려 쓰고 말이에요. 부도가 나서 못갚 게 됐어. 그런데 아무리 갚으라 해도 나 돈이 없어 못 갚아서 밤잠도 못자고. 그것참. 돈을 못 갚아 이렇게 애를 쓰는데. 그 사람이 와서 야~ 천만 원에 뺨 한대씩 맞아라. 이러면 기분이 좋아? 안 좋아? 좋지.

 

그래서 그 사람이 내 뺨따귀를 세게 3대만 때리고 가 버렸다 이 말이야. 그럼 어떻게 하나? 따라가서 그럼 두 대만 더 때려 달라고. 두 대 때리면 또 아이고 여보여보여보여보여보. 다섯 대만 더 때려주고 가면 안되겠냐고. 그렇게 되요 안되요? . 그때 맞을 때 기분이 나빠? 기분이 좋아. 기분이 좋다 이거야. 그러니까 맞는다고 다 기분이 나쁜 게 아니다. 이 말이야. 여러분 남편들이 바깥에 가서 딴 여자하고 놀면서 돈도 쓰고 힘도 빼고 그렇게 오니까 기분이 나빠 못 가게 하지. 요즘 같이 궁할 때 어디 가서 어떤 여자하고 하루 놀고 오더니 천만원 떡 가져와서 던져준다면 그 여자하고 하루 가서 데이트하면 한 천만 원씩 받아 온다 그러면. 집에 있는 남편보고 뭐라 그래? 여보여보 집에 있으면 뭐해? 놀러 갔다오지. 그러겠어? 안 그러겠어? 안 그래? ~ 아이고. 손들어봐. 그런 사람. 아이고.

 

~ 나라도 가서 봉사하고 돈벌어와 불사하겠다. 그러기 때문에 딴 여자나, 딴 남자하고 논다고 다 화날 일도 아니다. 이 말이오. ~ 그러니까. 돈쓰고 오니까 화가 나서 그러지. 그러니까 놀고 온다는 것 때문에 그런지 알지만은 반드시 그런 것도 아니다. 이 말이오. 반드시 그런 것도 아니다. 그럴 경우도 있지만은 반드시 그런 것도 아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가만히 살펴보면 다시 말하면 한 대 두들겨 맞는 게 나에게 뭐가 될 때가 있다? 복이 될 때가 있고. 돈을 좀 잃어버리는 게 복일 될 때가 있고, 욕을 좀 얻어먹는 게 거꾸로 뭐가 될 때도 있다? 복일 될 때가 있어요. 그 잘 생각해야 되요. 원효대사가 요석공주하고 스캔들을 일으켜서 세상 사람들로부터 비난을 받는 것을 원효대사가 몰랐을까? 알고 했을까? 알고 했지. 비난을 해 줘야지 비난을 안 해주면 그 행위가 소용이 없어지죠. 비난을 해 줘야 된다. 그 비난을 받는 게 뭐다? 복이란 말이오.

 

그래야 참으로 그 유명한 원효를 버리고 대중 속에서 화작을 할 수가 있단 말이오. 이 세상에 많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속에서 우리가 때로는 욕을 얻어먹은 게 그 사람의 장래에 좋은 일이 있고, 다리가 하나 부러졌든 게 그 사람의 장래에 좋은 일이 있다 이 말이오. 그러니 우리가 꼭 여러분들이 원하는 대로 되는 것이 복이라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여러분들이 소위 말하는 재앙이라는 게 복인 줄 알아야 되. ~ 이거 재앙이다. 이래 생각하지만은 재앙이 복인 줄 알면 이제 16분이 이루어지는 거요. 재앙이 복이다. 우리가 바라는 그 복이 복이 아니라. 재앙이 바로 나에게 큰 복이다. 이 말이오. 그러면 재앙이 내 앞에 닥칠 때 이것이 한량없는 가피인줄을 알게 되면 세상에 어떤 일을 당해도 두려움이 있을까? 없을까? 없겠지.

 

재앙이 복인데 뭐가 두려움이 있겠어? 재앙이 복이면 복은 재앙이 될까? 우리는 복을 바라기 때문에 복이 때로는 재앙이 될 때가 있어요? 없어요? 있어. 복은 늘 우리가 바라는 복은 독약과 같은 겁니다. 늘 재앙이 된다. 그리고 우리는 재앙을 늘 피하는데. 사실은 재앙이 늘 복이 됩니다. 아시겠어요? 재앙이 복이 된다는 거. 육조혜능대사가 스승을 찾아갔을 때 탁 스승으로부터 대우받고 거기 있는 사람들로부터 대우받고 법문을 하니 거기 있는 스님들이 다 고개를 숙여주고 그랬으면 육조혜능대사가 무슨 얘깃거리가 될까? 안될까? 안되겠지. 바루를 찢고 두드려 맞고 도망을 가고 숨어살고. 그러니까 어때요? 그게 다 위대한 성인으로서 다 복이 되고. 우리가 들어도 야~ 법이라는 거는 그렇게 반드시 뭐 받들어지는 것만 아니구나.

 

정법이라고 다 받들어 지는 게 아니란 말이오. 정법이 늘 갖가지 수난을 겪게 된다. 이런 걸 알게 되잖아. 그러니 우리가, 우리가 업장이 두터울 때 그 업이 지은대로 다 자기에게 돌아오면 내가 감당을 못해요. 그래서 물에 던지면 빠져 죽는 것처럼 말이에요. 그럴 때는 보살의 원력을 빌어서 보살에게 힘을 빌어서 그 보살이 감해 주는 게 아니고. 아시겠어요? 보살의 원력의 배에 내가 타고 있으므로 해서 당장 안 받는다 이 말이오. 여러분들이 재앙 좀 면해주시오 한다고 재앙이 면해지는 게 아니라. 형기를 좀 늦춰준다. 이 말이오. 지금 당장 오면 찌그러질 거니까. 뒤로 좀 미뤄준다 이 말이오. 빚을 좀 뭐해준다? 유예시켜주는 거요.

 

그런데 힘이 딱 수행을 해서 능히 받을 자격이 있으면 오는 대로 받는 게 나아? 유예시키는 게 나아? 내일 모래 받을 거까지 아예 조기상환하는 게 나아? 조기상환하는 게 나아. 우리나라도 경제가 처음에 제일 어려우니까. 어때요? 빚 갚아야 될 걸 자꾸 유예시키잖아. 그죠? 유예시키는게 좋은 줄 안다고. 힘이 너무 부칠 때 그래. 요즘 약간 힘이 생기니까. 어떻게 합디까? 조기 상환하지? 언제 갚겠다. 하는 걸 미리 당겨서 미리 갚아버린다. 이거요. 그러니까 수행자는 조기상환해야 되. 아시겠어요? 조기상환한다는게 뭘 말해요? 우리가 현상에서 볼때는 재앙으로 나타나잖아 그죠? 수행을 하는데 업이 재앙이 없기는커녕 뭐한다? 안 할 때보다 더 나타난다 이 말이오. 그러면 여러분들은 다 작은 눈으로 좁은 눈으로 어리석은 눈으로 보니까 어때요? 아이고 수행했더니 안 할 때보다 더 못하다더라. 이렇게 생각을 한다 이 말이오.

 

그렇지 않아. 참으로 수행을 하는 자는 갖가지 재앙을 빨리빨리 받아서 넘겨버리는게 좋다. ? 인연을 지은 과보는 피할 수가 없기 때문에 찌꺼기가 남았거든 빨리빨리 와라. 그냥 빨리 빨리 갚아버리고 말겠다. 이런 얘기요. 그러니 바로 이러한 재앙이 복인 줄을 알게 되면 세상에서 말하는 재앙이 복인 줄 알게 되면 재앙을 피해요? 안 피해요? 안 피하고 그걸 받으면서 뭐하게 된다? 기뻐하게 된다. 그러면 재앙을 보고 기뻐하는 자에게 다른 얘기는 할 필요가 없어. 누가 그를 괴롭힐 수 있겠어? 없겠어? 없어. 그러게 무거운 짐을 등산하는데 무거운 짐을 탁 징겨 주니까 기분이 좋아해. 뭐한다고? 운동한다고. 아시겠어요? 아따 이거 짊어지고 저까지 가면 운동 잘 되겠다. 이렇게 생각해. 일부러 사우나탕에 가서 땀 삑삑 흘리고 운동할게 뭐 있노? 짐 본 김에 뭐한다? 운동한다. 이래 생각한단 말이오.

 

그게 제가 늘 얘기했지만은 사사무애법계에서는 물에 안 빠지는 것만이 도가 아니라, 물에 빠진 짐에 뭐한다? 진주조개를 줍는다. 넘어진 짐에 땅에서 돈을 줍는다 이거야. 돈 주울 놈 땅을 기울여야 되? 안 기울여야 되? 기울여야 되. 넘어진 짐에 돈 줍는다 이거야. 일부러 돈 주울 거까지 없지만은 넘어진 짐에 줍는다 이거야. 여러분들이 늙었기 때문에 더 잘할 수 있는 일이 있고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더 잘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어린애는 어리기 때문에 잘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립니다. 다시 다음에 수보리야 선남자 선여인이 수지독송차경하되. 어떤 남자와 여자가 이 경을 어때요? 수지독송하되. 약위인경천이면. 사람들로부터 만약에 사람들로부터 가벼이 여기고 천하게 여긴다. 그러니까 갖가지 욕을 얻어먹고 고통을 겪는다. 이 말이죠? 그러면 이건 도대체 어떻게 된 거냐?

그래. 그 사람은 선세죄업응타악도 과거세에 지은 그 업으로 보면 마땅히 악도에, 삼악도에 떨어져야 될 것이로되 이 금세인경천고 지금 세상 사람이 가볍게 여기고 천하게 여긴 까닭으로 선세죄업즉위소멸. 과거세에 지은 모든 죄업이 곧 소멸하고. 당득아뇩다라삼먁사보리 하리다. 최상의 깨달음을 얻을 것이니라. 그러니 금강경 수지독송하는 사람은 제대로 수지독송하는 사람은 야~ 공덕이 있구나 공덕이 없구나 이런 생각이 있을까? 없을까? 그런 생각 자체가 없겠죠. ? 갖가지 재앙이 닥친다 해도 그것이 이미 복인 줄을 안다. 내가 지은 업대로 했다면 백을 받아서 지옥에 가서 백년을 고통을 격어야 될 일인데. 이렇게 금강경 수지독송한 공덕으로 90년은 감해지고 10년이 남았는데. 10년도 감해지고 일 년이 남아가지고 그걸로 뺨때기 한 대 때리는 거로 욕 한번 얻어 먹는 거로 나한테 돌아온 걸 내가 훤히 안다 이거야.

 

그러면 뺨한대 막고 욕한 번 얻어먹는 걸 가지고 억울해 하겠어? 기뻐하겠어? 기뻐하겠지. 태산같이 지은 업이 다 사라지고 다만 조그마한 흔적이 남아서 나에게 요게 과거 지은 업이다. 흔적은 보여줘야지. 그래도. 이렇게 잠시 왔다가 가면 그걸 보고 기뻐한다 이거야. 기뻐한다. 아이고 불보살님 감사합니다. 내가 지은 업으로 보면 무수하게 받아야 되는데 요거 그저 흔적만 보여주고 다 소멸되고 얼마나 기쁩니까? 이런 마음이 된다. 무엇이 닥쳐도 이런 마음이 된다면 그에게 무슨 두려움이 있겠느냐? 이거요.

 

須菩提 我念 過去 無量阿僧祗劫 수보리야 내가 과거 한량없는 겁 전에. 옛날을 지금 생각해 본다 이 말이오. 아념. 내가 생각해 본다. 과거를 생각해 보는데 그 과거가 어느 거냐? 무량아승지겁전이다. 무량아승지겁전에

於燃燈佛前 저 연등부처님 전에 계실 때, 저 연등부처님 전에서 말이오. 여기서 겁이라는 수는 매우 긴 세월을 뭐라고 합니까? 겁이라 그런다. 겁은 정확하게 수학적으로 몇 년이다. 이렇게 계산돼 있는 거는 없습니다. 그냥 좀 상징적인 용어로 한량없이 긴 세월. 이것을 겁이라 한다 이 말이오. 그러나 이제 겁을 여기 저기 얘기한 것들 중에서 겁을 수학적으로 계산이 돼서 나온 그런 것도 있기는 있다 이 말이오.

 

그게 정확한 거는 아닌데. 그 중에서 가장 겁 단위가 작은 거로 계산된 게 팔만사천 곱하기 100년이니까 840만년이다. 1겁이. 아시겠어요? 1겁이 몇 년이라고? 840만 년 전이다. 그런데 거기서도 팔만사천은 전에 제가 말씀드렸지만 수학적으로 계산 한다 그랬어요? 안한다 그랬어요? 안한다 그랬기 때문에 팔만사천이라는 말 자체가 한량없는 긴 세월이라는 뜻이다 이 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팔만사천보다는 팔만사천이란 본래 뜻은 수학적인 팔만사천보다는 훨씬 더 긴 세월을 말하는 건데. 그걸 그냥 최소로 줄여서 수학적인 팔만사천이라고 계산을 한다고 했을 때 일겁이 840만년이 된다. 이런 얘기요. 실제로 일겁은 이거보다 훨씬 더 긴 세월이다 이거에요.

 

그런데 그 겁으로도 모자라서 어떻게 한다고? 그 앞에 백겁이다. 천겁이다. 만겁이다. 이래가지고 억겁이다. 백천만억겁. 이런 말을 쓰죠. 백겁. 백겁에 천배. 백천겁. 백겁천겁에 만배. 백천만겁. 그것에 또 몇배? 억배. 이래서 백천만억겁 한다. 거 왜 옛날 사람들은 백천만억겁 이래 말했을까? 그러니까 억에다가 만을 곱했으니 조죠. 거기다가 백하고 천을 곱했으니 십경이네. 계산해 보면. 그죠? 그러면 십경이다 이리 말하면 되지. 왜 백천만억겁 이렇게 백천만억이라는 수를 말할까? 십경 이러면 옛날에 십경이 도대체 얼마만한 수인지 감이 옵니까? 안옵니까? 안온단 말이오. 그러니까 사람이 머릿속에서 감이 오는 숫자가 뭐다? 백 이러면 감이 와요? 안와요? 온단 말이오. , 감이 와요? 안와요? 온단 말이오. 만해도 감이 오죠?

 

그러니까 백 곱하기, 천 곱하기, 만 곱하기 하면 와~ ~ ~ 그러다가 억, 우와~ 이리 된단 말이오. 이렇게 해서 감이 오도록. 그래서 엄청나게 긴 세월이구나. 이걸 나타내기 위해서 그걸 따로 썼단 말이오. 백천만억. 년만해도 긴대. 거기다 뭐가 붙었다? . 이렇게 붙었단 말이오. 백천만억겁이다. ~ 백천만억겁만해도 한량없는 긴 세월일 텐데. 그걸 갖고는 부족해서 여기서는 뭐라고 나오냐? 나유타 이런 말이 나왔어. 나유타. ~ 전에도 한 번 말씀드렸지만은 서양에는 수가 천단위로 올라가죠? , 다우즌. 그 다음에 천의 천배가 뭐요? 밀리언. 밀리언의 천배가 빌리언. 이렇게 올라간단 말이오. 이것이 서양의 수단위란 말이오. 동글뱅이 세 개씩 척척척척 붙어 간단 말이오. 중국의 수 단위는 동글뱅이가 네 개씩 붙어 올라간단 말이오. , 만의 만 배가 억, 억의 만 배가 조, 조의 만 배가 경. 이렇게 올라간단 말이오.

 

그러면 중국은 이런 수가 얼마나 있느냐? ~ , 그 다음에 억, 그 다음에 조, 경 이러면 네 개죠 그죠? 요렇게 해서 24개가 있어요. 24개까지 있다 이 말이오. 그러니까 엄청나게 수가 많죠. 우리가 기껏 써봐야 몇 개 썼어요? 3개 주로 요새 쓰죠? 그죠? , 그 다음에 억, 그 다음에 조. 경단위도 거의 안 쓰잖아. 그죠? 예산할 때 10, 50조 이런 얘기 쓰지. 그 이상 안 쓰잖아 그죠? 옛날에는 몇 억 원해도 굉장했는데 언제 이게 뭐요. 101001000억하더니 요새는 조로 올라가 있죠? 이것만 해도 엄청나게 큰데. 이 단위 3개만 써도 벌써 그런데 이게 24개까지 있으니 우리가 쓸 일이 별로 없는 거 같죠. 그런데 옛날에 왜 이런 수가 만들어 졌을까? 옛날사람들 머리가 다 컸어요. 이런 게 다 필요하니까 수가 만들어졌겠지. 필요안한데 수가 만들어졌겠어요? 그런데 인도는, 인도는 기본적인 수 단위가 이것보다 훨씬 큽니다.

 

인도는 가장 기본단위가 이 이런 큰 수의 기본단위가 뭐냐 하면 천만이요. 천만. 107. 동글뱅이가 몇 개 올라간다? 7개 붙었어. 7개 붙은 구지가 제일 첫 번째 단위요. 아시겠어요? 그것을 제곱하면 뭐가 되냐? 아유타가 되요. 그러면 1014이 되요. 그럼 그것을 갖다가 다시 동글뱅이 7개 붙이는 게 아니라 이번엔 고걸 또 제곱해요. 그럼 21승이 되는 게 아니라 28이 되. 그게 뭐냐? 나유타. 구지, 아유타, 나유타 이렇게 올라간단 말이오. 이렇게 올라가니까 올라가는 방식이 중국방식보다 어때요? 기하급수로 올라가겠죠? 기초단위도 크고. 그런데 이게 몇 개까지 있냐? 108배까지 있어. 그러니 인도에 있는 어떤 수는 중국어로 번역이 될 수 있어요? 없어요? 번역이 될 수 없어. 번역이 안 되니까 그냥 번역을 할 때 뭐라 그러냐?

 

새로 말을 만들어. 뭐라고? 무량, 아승지, 뭐 이런 식으로. 불가사이, 불가측량, 무유변. 이런 식으로 만든다 이 말이오. 아시겠어요? ? 그런 단어가 중국말이 있어요? 없어요? 없어. 없으니까 인도 말 따다 아유타 나유타 이렇게 번역을 한 것도 있지만 고 정도는 아유타가 뭐냐? 나유타가 뭐냐? 하면 중국말로 계산하면 중국에 뭐에 해당된다고 옮길 수가 있어요? 없어요? 옮길 수가 있지만은. 그 위에 몇식 몇백 백단위로 올라가버리면 그건 중국말로 있는 단위는 아무리 곱해도 그거에 그거배, 그거에 그거배. 이래도 해당이 안 된단 말이오. 그러니까 무량, 아승지. 이래 말이 나온거에요. 아시겠어요? 사실은 무량은 104번째, 아승지는 105번째 단위다. 이런 말이 있어요. 저도 잘 모르겠어. 확실히는. 무량은 뭐라고? 인도의 단위의 104번째 단위를. 아승지는 105번째 단위를 말한다. 이런 게 이런 얘기가 있어. 그냥 한량없는 이런 뜻이 아니라. 그 단위를 번역한 거다 이 말이오.

 

그러니까 저 과거 무량 아승지 겁전에 한량없는 겁전에 세월 전에 이렇게 우리가 번역하지만은 정확하게 이것도 계산하면 엄청난 수로 계산이 되서 그 전에 이렇게 계산이 되겠죠? 무량아승지겁 전에 저 연등부처님 처소에 계실 때.

得値八百四千萬億那由他諸佛 팔백 사천 만억 나유타 제불이라 그랬어. 그러니까. 모두 공양을 올렸다. 부처님께 공양을 올렸는데 몇 분에게 공양을 올렸나? 연등부처님께 공양을 올린 그 이후로 이 말이에요. 아시겠어요? 그 이후로 얼마나 많은 부처님께 공양을 올렸느냐 하면. ~ 수학적으로 한 번 계산해 봐요. 팔백사천이라는 말이 있어요? 없어요? 없지. 사천팔백이라는 말이 있지. 팔백사천이라는 말이 어디 있어? 그죠? 팔백사천 이러니까 말이 되는 거 같지만 수학적으로는 안 되죠. 그러니까 이럴 때는 팔백곱하기 사천 이렇게 해석을 해야 되요. 아시겠습니까?

 

원래는 이게 팔만사천 이렇게 나가야 되요. 그래야 말이 맞죠? 그런데 이게 어떻게 이렇게 번역 됐는지 모르겠어. ~ 뒤에 또 만자가 있으니까 아마 팔백사천이라고 쓴 거 같은데. 팔만사천. 팔만사천은 한량없는 수죠? 팔백을 만이라고 보는게 좋겠어요? 팔백사천. 팔만사천. 한량없는 수다. 거기다 곱하기 얼마? 천만. 그죠? 천만. 곱하기 또 뭐다? . 곱하기 나유타. 이 말이오. 나유타는 아까 설명을 했죠? 인도의 수 단위요. 그런 모든 부처님에게. 그런 모든 부처님에게

悉皆供養承事 無空過者 무공과자는 빼먹은 사람 없이 이 말이오. 지나친 사람이 없이. 한 사람도 빠지지 않고 다 뭐했다? 공양을 올렸다. 공덕이 크겠어요? 안크겠어요? 크겠죠. 한 부처님, 두 처님, 세 부처님, 네 부처님한테 공양해 올린 것도 한량없이 크다 그러는데. 이렇게 한량없는 부처님께 공양을 올렸다.

(58 : 44)

若復有人 만약에 다시 어떤 사람이 있어서

於後末世 저 말세에 이 말이오.

能受持讀誦此經 능히 이 경을 받아 지녀 읽고 외우면

所得功德 얻은 바 공덕은

於我所供養諸佛功德 내가 모든 부처님께 앞에 얘기를 하는 거요. 모든 부처님께 공양을 올린 공덕이

百分不及一 백분의 일에도 못 미친다. 즉 내가 모든 부처님께 공양을 올린바 그 공덕이 이 경을 수지 독송한 사람의 공덕에 백분의 일도 못 미친다. 이 말이오. 그러니까 한량없는 부처님께 공양을 올린 공덕보다 백배 더 많다. 이 말이죠. 수지 독송한 사람의 공덕은. 백분의 일도 못 미친다. 했다가 백분의 일이 뭐야?

 

千萬億分 천만억 분의 일도 못 미친다. 이 말이오. 천만억분의 일이란 말을 안썼어요. 천만억분의 일이 뭐야?

乃至算數譬喩所不能及 그 몇분의 일이다라는 산수. 수로 계산하는 비유로는 언급하기가 불가능하다. 거기에 이르기가 불가능하다. 그것처럼 이 금강경을 수지독송한 공덕은 한량이 없다.

須菩提 若善男子善女人 수보리야 착한 남자와 착한 여인이 있어서. 그냥 여기서는 남자와 여인이 있어서.

於後末世 有受持讀誦此經 저 말세에 이 경을 수지 독송을 하게 되면

所得功德 얻은바 공덕은

我若具說者 만약에 내가 만약에 구체적으로 설명을 하면. 그러니까 사실 있는 그대로 구체적으로 그대로 말해버리면

 

或有人聞 어떤 사람은 듣고

心則狂亂 마음이 미쳐서 혼란스러워진다 이거야. 그 공덕이 이렇게 비유를 들어도 실제로는 그 공덕만큼 얘기를 했다? 못했다? 못했다. 사실대로 그냥 그대로 말해버리면 마음이 미쳐가지고 혼란스러워져서

狐疑不信 여우처럼 의심하여 믿지 아니한다. 앞에 있는 호(여우 호). 여우가 의심을 한다 이 말이오. 여우같이 의심해서 믿지 아니하게 된다. 이랬어. 실제로 그 공덕이 얼마나 크기에 이렇게 비유를 들어서 비유를 들어서 비유를 들어서 설명을 해도 실제 미치지 못한다. 이런 얘기요.

 

그러면 여러분들이 잘 아는 우물 안의 개구리를 예를 들어 봅시다. 개구리가 태어날 때부터 우물에서 태어나서 지금까지 우물에서만 자랐어. 그래서 그는 보고 듣고 느끼고 한 세계가 우물안이 전부다. 우물 밖은 한 번도 본적이 없다. 그런데 저 바닷가에 있던 개구리가 어떻게 하다 우물 속에 떨어졌어. 그래서 너 어디서 왔니? 바다에서 왔다. 이랬어. 그래? 바다가 얼마나 크니? 바다? 엄청나게 크다. 이러니까 개구리가 야~ 그 바다 저기 있는 저 구석에 있는 저 큰돌만하나? ~ 임마 그거보다 월등하게 더 크다. 그래? 얼마나 큰데? 그럼 그 옆에 있는 돌 3~4개 합한거만 하니? 이러니까. 야 임마 어떻게 그거와 비교를 할 수 있니? 그거보다 훨씬 더 크다. 그래? 그럼 이 우물 반만하니? 이랬어.

 

~ 임마. 우물 반만하다니? 그게 무슨 소리냐? 임마. 이 우물 전부 다 보다도 더 크다. 에이 거짓말쟁이. 이 우물보다 더 큰게 어딧어. 그랬어. 이 우물보다 더 큰 뿐만 아니라 이 우물의 천배도 넘는다. 임마. 천배가 뭐야? 만배도 넘어. 만배가 뭐야? 몇 만배가 넘어. 이러면 개구리가 뭐라 그럴까? 저 놈의 시끼 미쳤나. 이러겠죠? 그러니까 지금 부처님이 말씀하시는게 이거하고 똑같다 이 말이오. 늘 사람들이 자기들이 가지고 있는 생각 갖고 비교해서 얘기를 할려고 한단 말이오. ~ 칠보로 채워 남을 보시한 것보다 더 클까? 이 집채만큼 보시하면 그거보다 더 클까? 이런 생각을 하니까 삼천대천세계보다도 더 크다. 삼천대천세계보다 더 크다 그래도 그건 도저히 미치지를 못한단 말이오. 어떻게 바다가 우물에 천 배되고 만 배되고 십만 배되고 억 만 배 되고 한다 해서 계산이 되겠어. 그래서 결국하는 말이 네가 바다가 얼마나 큰지 너한테 확 그대로 말해버리면 너는 팔딱 미쳐가지고 죽어버리게 되.

 

이렇게 비유를 들어서 곱하고 곱하고 곱하고 곱해서 얘기를 해도 도저히 거기는 산수로는 미칠 수가 없다. 이거야. 그러면 이해가 되요? 왜 이렇게 말씀하시는지. 그러니까 제일 금강경 초입에 보세요. 초입에 보면 허공보다 더 크다. 이랬죠? 그 다음에 뭐라 그랬어요? 삼천대천세계보다 더 크다 했다가 그 다음에는 뭐라 그랬어요? ? 갠지스강의 모래 알 수만큼 많은 삼천대천세계에 가득히 채운 것 보다 더 크다 그랬다가. 그 다음에는 갠지스강의 모래알이 있고 그 모든 모래알수 만큼 많은 삼천대천세계가 있고, 거기에 가득히 채워서 보시하는 것보다 더 크다. 이렇게 말했죠? 그러다 나중에 이렇게 말했어. 야 임마 크다크다 하니 크게 정말 있는 줄 아느냐? 큰게 실체가 없다. 그 보다 더 큰 거 만나면 어떻다? 적어진다 이 말이오. 그러다가 그렇게 많이 보시를 한다 하더라도 그게 뭐 몸뚱이 하나 보시하는거야 미치겠냐?

 

그런데 그 몸뚱이를 또 얼마나 보시한다? 갠지스강의 모래알수 만큼 보시를 한다. 갠지스강의 모래할 수만큼 보시하는 거에 미치겠어 그죠? 하루에도 갠지스강의 모래알 만큼 보시를 몇 번한다? 3번해. 그걸 몇 년? 한량없는 겁 세월 동안에 해. 이렇게 비유를 계속 확대해 왔단 말이오. 이렇게 말해도 사실에는 미치지가 못한다 이거야. 사실에는 못 미쳐. 그러니까 우리가 생각할 때는 와~ 부처님 갈수록 뻥 많이 친다. 이렇게 생각하지만은 그래도 사실에는 못 미친다. 그래서 여기 와서는 저 한량없는 그런 무량 아승지 애기가 나온단 말이오. 인도말로 그냥 아유타 나유타 얘기까지 등장을 하단 말이오. 그래도 그런 한량없는 부처님. 이 세상에서 제일 귀한 게 부처님이고, 거기에 공양 올리는 게 최고로 공덕이 있는데. 그것도 한량없는 부처님께 한량없는 세월동안 공양을 올리는데. 그거하고 비교해도 산수비유로 계산을 못한다. 어떤 비유를 한다 해서 이 계산이 안 된다 이 말이오. 그래서 무유변, 불가침, 불가사이. 뭐 불가침량. 뭐 이렇게 말을 했단 말이오. 그래서 결국은 여기 마지막에 와서 뭐라 그랬다? 사실대로 말해버리면 팍 미쳐버릴 거다. 이 말이오.

 

여우처럼 의심한다 이랬는데. 여우처럼 의심한다는 게 뭐냐 이거요. 이 세상에서 제일 의심이 많은 게 뭐요? 여우라 그러죠? 여우는 의심이 많고 반대로 의심이 많다는 건 지혜가 밝다는 얘기요. 그래서 속지를 잘 안 해. 남한테 절대 안속아. 그런데 누구한테만 속는다. 자기한테 속아. 지 꾀에 지가 속는다. 이렇게 말한단 말이오. 여러분도 마찬가지요. 전부 똑똑해서 절대 남편한테 안속아. 그런데 다 보면 쥐가 쥐약을 먹듯이 지가 똑똑해서 다 지를 괴롭히고 지 꾀에 지가 속는다. 그러고 쌍말로 말하면 지 눈깔을 지가 찔렀다. 이렇게 말한단 말이오. 그런데 여우가 어느 날 길을 가다가 말이오. 고기가 날고기가 하나 길에 툭 떨어졌어요. 그래 여우가 야~ 이게 웬일이냐 이거야. 역시 나는 왕이다. 나는 동물 중에 왕이니까. 내가 왕인 줄을 알아보고 이렇게 누가 대접을 하는 거구나. 이렇게 기뻐했다 이 말이오.

 

왜냐하면 고기 작은 고기 모타리 하나를 먹기 위해서는 동물은 엄청난 노력을 해야 됩니까? 안해야 됩니까? 해야 되.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쥐 한 마리 잡으려 해도 엄청난 노력을 해야 되는데. 아 이렇게 큰 고깃덩어리를 아무런 노력 없이 길거리에 턱 갖다 바쳤으니. 이거야 말로 내 복이다 이거야. 이건 이 세상에 어떤 동물한테 도. 오직 여우한테만 있는 복이다. 이 복을 단지 누리지 못하다. 어음! 하고 어깨 힘 턱 주고, 주위를 둘려보면서 자기가 왕처럼 폼을 탁 졌단 말이오. 그리고는 탁 입을 갖다 대고 먹으려다가. 여우가 꼬리를 한번 탁 틀었단 말이오. 으음. 아니지. 누가 바보같이 이렇게 고기를 그 귀한 고기를 길거리에 버리겠느냐? 여긴 틀림없이 이걸 미끼로 해서 잡으려고 미끼로 해서 산 짐승을 잡으려고 이렇게 독약을 내 던져 놨다 이거야.

 

다른 짐승들은 이런 걸 보면 이게 웬 떡이냐? 하고 확 집어먹지만은. 딴 짐승은 다 속여도 여우는 속이지 못한다 이거야. 누가 그런 걸 먹어? 그리고 흥! 하고는 입을 대려고 하다가 탁 버리고 저 산모퉁이로 돌아갔단 말이오. 산모퉁이로 딱 돌아가 여우가 고개를 한 번 꼬리를 탁 치면서 그렇지! 했단 말이오. 만약에 독약을 넣어가지고 미끼로 던졌다면 흙을 묻히지 않고 쟁반이나 이런데 담아서 돌 위에 얹어 놨을 거란 말이오. 먹기 좋게. 그런데 흙에 툭 떨어져서 흙이 묻어 있다는 것은 이건 독약을 넣은 게 아니다. 많은 짐승들은 이런 고기를 보면서 독약을 넣었을까봐 싶어서 겁을 내고 다 못 먹고 그냥 지나가는데. 딴 짐승은 다 속여도 여우는 절대 못 속인다 이거야. 그건 그냥 떨어진 거라. 그렇게 딱 돌아와서 으음 역시 이건 여우꺼다.

 

이래서 탁 먹으려다가 다시 꼬리를 한 번 탁! 틀면서 아니지! 이런단 말이오. ? 이렇게 쟁반에 딱 채려가 먹기 좋게 놔 놓으면 짐승들이 들락날락 자꾸 주워 먹어 봐 그게 독약인줄 안다 이거야. 짐승 주제에 누가 딱 챙겨다 딱 놓겠어? 그죠? 그러니 처음엔 어리석게 먹었지만은 사람들이 이게 독약인줄 알고, 다 안 먹는다 이거야. 짐승들이. 그러니 이제는 자연스럽게 떨어진 척 하고 흙에 툭! 던져놓으므로 해서 아이고 이건 독약이 든게 아니구나. 이러고 뭇짐승들은 그거를 먹게 된다 이거야. 그러나 여우는 속일 수가 없다. 이렇게 고기한 토막을 놔 놓고 여우가 산모퉁이를 몇 번 왔다갔다 하느냐? 아홉 번을 왔다갔다 해. 그게 뭐냐? 구미호다 이거야. 꼬리가 아홉 달렸다는 것은 꼬리가 실제로 아홉 달린게 아니라 꼬리를 아홉 번 친다 이 말이오. 아시겠어요? 아홉달린것처럼 구미호다. 그런데 진짜 똑똑한 여우는 백번을 왔다갔다 해. 그게 백호다 이 말이야.

 

그러니까 여우가 나중에 자기 꾀가 늘고 지혜가 늘면 어떠냐? 여우가 화현을 해. 사람으로도 변하고 모양도 바뀌죠. 그러면 여우가 하얗게 털이 희게 바껴서 백호가 된다 이 말이오. 이 백호라 할 때 호자를 호랑이 호자를 쓰면 흰 호랑이란 뜻이고. 여기서 백호라 할 때는 그거는 여우를 말하는 거다. 흰 여우. 둔갑하는 여우가 백호가 돼야 둔갑을 하지. 구미호도 둔갑을 한다지만 구미호 갖고는 안 돼. 그런데 요렇게 의심하는걸 뭐라고 한다? 狐疑(호의)라 그래. 호의. 여우처럼 의심하는 거. 여우가 의심하는 건 요렇게 의심하는 거요. 여우처럼 의심해서 믿지 아니하는 거요. 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여러분들이 이렇게 한다 이 말이오. 여러분들도 어때요? 법문을 딱 듣고 그렇지. 그래. 맞어. 이게 다 내가 상을 짓는 거야. 다 꿈같은 거야. 그래 맞아. 요렇게 믿고 하죠.

 

집에 딱 가서 남편이 술 먹고 들어오는 거 보면 눈이 착 찢어지면서 맞기는 뭐가 맞아? 여기 와서 살아보라 그러지. 이게 어떻게 꿈이야? 꼬집어도 아픈데. 에이~ 되도 안했어. 그건 산속에 있는 스님들이나 공부하는 거지 생활에는 안 맞아. 이렇게 해서 불신을 하죠. 그러다 이튿날 범문을 탁 들으면서. 아이고 사실은 눈앞에 탁 보일 때는 그렇지만 지나놓고 가만 생각해 보면 역시 부처님 말씀이 맞기는 맞어. 이러고 고개를 끄떡끄떡했다가 집에 가선 또 어때요? 아니야. 또 와선 끄떡끄떡했다. 또 아니야. 백번만 할까? 백번하구 둔갑하면 더 빨리 되게. 아마 백번 더 했을 거요. 어떻게 백번만 했겠어? 그래서 뭐라 한다? 호의불신이라 그러는 거요. 그러니 딱 믿고 수지독송 해야 되는데. 늘 이렇게 의심 한다 이거야.

 

그래서 절에 다니면서 마음을 내서 아~ 맞어 스님 법문은 정법이야. 역시 부처님이. 이래 또 옆에서 자기 집에 부도가 나거나, 병이 들거나, 옆에서 속닥속닥 해. 아이고 봐라. 이 글에 뭐 돈이 어쩌니 하지만은 이 글에 기도를 안 해 놓으니 네가 재앙을 받는 거야. 저기 어디가면 기도를 하면 병도 낫고 입시에도 걸리고 뭐 어쩌고 이러면. 그 동안에 일 년, 이년, 삼년, 자기 정법 한다고 큰 소리 쳤다가 어때요? 정법이고 뭐고 온데간데없고. 어때요? 거기 가서 또 매달린단 말이오. 그리고 또 어느 날 그것도 안 돼서 또 다시 와 법문 들으면 아이고 맞어. 내가 왜 치쳐서 몇 년을 그리 돌아다녔던고. 몇 년 또 어디 갔다 또 옵니다. 아시겠어요?

 

이렇게 해서 계속 들락거리는 거요. 하루에도 몇 번 이러고. 하루에도 몇 번 생각이 왔다갔다 하고. 일 년 중에도 몇 달은 정신을 바르게 차리고 있다, 몇 달은 또 헤매다가. 또 몇 년 또 열심히 다니다 몇 년 또 밖에 가서 또 헤매다가 또 돌아오고. 가만 지켜보면 이 말하고 똑같애. 내 왔다 갔다 하는 거요. 작게는 하루에도 몇 번씩 왔다 갔다 하고 길게는 십년을 가만히 지켜보면 저 문턱을 오르락 내리락 한단 말이오. 보통 한 십년 넘어가면 어때요? 그래 이제 좀 안정이 되는 거 같애. 다 그렇다는 게 아니라. 보통 그래. 그래서 여기 와서 스님법문 좋다고 눈물을 흘리고 절을 하면 내가 이게 또 쥐약 먹을 라고 그러나?

 

그리고 또 얼마 있다 픽 틀어져서 어디 미쳐 다니다가. 그것도 그래서 잘 다니나 하다보면 어느 날 또 눈물을 글썽글썽 해서 또 와서 또 법문 듣고 감격을 하고 그런다. 그래 몇 분 굽이쳐 가는 거요. 그런데 여우가 이렇게 꾀가 많은데도 여우는 그러면 그 고기를 먹을까? 안 먹을까? ? 딱 결론은 두 가지로 나거든요. 쥐약을 넣은 거는 틀림없이 먹고. 안 넣은 것은 절대 안 먹는다. 왜 여우가 그렇게 의심해서 그게 한판에 안 맞고, 여러분들 시험 볼 때 맞는 거 틀리는 거, 맞는 거 틀리는 거. 맞는 것만 찍어 나중에 보면 어떻게 그렇게 틀리는 것만 골라서 찍었냐? 이거야. 주식을 살 때도 그렇죠. 그렇게 골라 샀는데. 하필 떨어지는 것만 골라 사고. 신랑도 그 많이 선보는 중에 골라서 서너 명 중에 찍었는데. 살다보면 제일 못난 거를 골라 찍었어. 왜 이렇게 될까? 그렇게 고심을 했는데. 여우는 지 꾀에 지 속는다는 거는 뭣 때문에 그런지 않아요? 늘 요 현실에는 밝았는데 횟수를 계산을 잘못해 가지고.

그래서 원숭이는 어디에서 떨어지고? 나무에서 떨어지고. 그죠? 헤엄 잘 치는 것은 물에서 빠져죽고. 이런다죠?

須菩提 當知 수보리야 마땅히 알아라 이 말이오.

是經義不可思議 이 경의 뜻은 불가사이하다. 이 경의 뜻을 가볍게 생각하면 안된다. 정말 그것은 우리의 이 사량 분별로는 헤아릴 수가 없다. 왜 그럴까? 우리들의 사량 분별이라는 것 자체가 끊임없이 상을 짓는 사고방식이기 때문에 그 상을 짓는 것 갖고는 상을 떠난 세계를 도저히 그릴 수가 없다.

 

果報亦 不可思議 그러기 때문에 그 응무소주 이생기심하는 또는 무주상보시하는 또는 일체상을 떠나는 그러한 무위의 행의 공덕은 우리가 인연의 과보로 짓는 이 유의의 행에 의해서 나타나는 그런 인연의 과보. 그런 계산으로는 도저히 이 과보가 얼마인지를 헤아릴 수가 없다. 또한 불가사의. 헤아릴 수가 없느니라. 이랬어요.

 

이렇게 해서 일차적으로 금강경의 상편이 끝나게 된다 이 말이오.

그러니까 맨 처음에 부처님께서 가만히 바루때 들고 동량 얻어 와서 밥 먹고 자리에서 자리 펴고 앉아 있는 그러한 고요한 그림 같은 풍경. 이게 바로 고요한 바다와 같다 이 말이오.

거기에 수보리가 어때요? 크게 깨달음을 얻고 그 부처님의 그 일거수일투족속에서 저 미래의 모든 보살들의 수행을 어떻게 해야 될 건지. 어떻게 살아가야 될 건지. 바른 법이 무엇인지를 말없음 속에서 이미 그대로 이심전심으로 법을 전하고 있단 말이오. 그런데 자기가 어두워서 그것을 알지 못하다가 즉 태양은 비치는데 자기가 눈을 감고 있어 보지 못하다가 눈을 번쩍 떠서 그것을 봤다 이거야. 그리고 보고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부처님을 찬탄 공경했다. 이 바로 고요한 바다에 한줄기 미풍이 불면서 파도가 일어나기 시작을 했다 이 말이오. 이렇게 해서 이 금강경은 시작이 된다 이거요. 그래서 어떻게 하면 깨달음을 얻고자 하는 사람들이 그 마음을 다스리고 그 마음을 가져야 하는데서 마음 다스리는 법이 설해졌죠. 그게 바로 대승정종분이다. 이거야.

 

일체 중생을 구제하겠다고 마음을 내라. 이 괴로움을 남의 탓으로 돌리고 이 괴로움 좀 덜어달라고 아우성치는 나에게 바로 타인의 괴로움을 덜어줄려고 해라. 사랑받으려고 하지 말고 사랑 줄려고 하며 보호받으려 하지 말고 남을 보호하려고 해라 이 말이죠. 얻으려고 하지 말고 줄려고 해라. 이렇게 완전히 우리들이 생각을 180도 뒤집어 버린단 말이오. 이게 바로 원리전도몽상하는 거란 말이오. 전도몽상을 멀리 떠나는 거란 말이오. 일체 중생을 구제하겠다고 마음을 내라. 즉 일체중생이 다 할 때 우선 내 눈앞에 닥치는 모든 것에 대해서 내가 그렇게 하라 이 말이죠.

 

그렇게 해서 일체중생을 구제해 마쳤다 하더라도 한 중생도 구제를 얻은바가 없다. 즉 구제한다 하지만은 일체제법이 다 본래 청정한 거다 이 말이오. 그러니 내가 구제를 한다 하면 이미 상이 벌어진다 이거요. 내가 하는 상이 생기고. 너도 하는 상이 생기고. 중생이다 하는 상이 생기고. 구제했다 하는 상이 생겼다. 그래서 이런 상이 생기면 그것은 아미 해탈의 길에 니르바나의 길에 이를 수가 없다. 그러니 우리가 보시를 행하되 상에 집착해서 보시를 해서는 아니 된다. 어떤 대가를 바라고 보시를 해서도 아니 된다. 내가 그를 구제한다는 생각을 갖고 보시를 해서도 아니 된다. 어떻게 해야 되느냐? 다만 숨 쉬는 사람에게는 공기가 필요하고 목마른 자에게는 물이 필요하고 배고픈 자에게는 음식이 필요하다.

 

다만 필요에 의해서 그것이 씌여지는 그런 무심한 상태로의 배품. 그것이 바로 무주상보시다. 그 공덕은 이루 한량이 없다. 모든 함이 있는 보시 그것이 다 재앙으로 돌아오고 그것이 천상에도 가고 극락에도 가는 그런 과보가 따른다. 천상에 가는 과보를 즐기면 지옥에 가는 과보가 따라 붙는다 이거야. 그건 동전의 양면과 같다 이거야. 그래서 그 둘을 다 버렸는 이 무루복은 한량이 없다. 저 허공을 헤아릴 수 없는 것처럼 이 법 또한 헤아릴 수가 없다. 그래서 범소유상이 개시허망이라. 모든 상이 다 상아님을 알 때. 형상을 떠날 때. 즉 제상이 비상인줄을 즉견하게 되면 그것이 곧 여래를 보는 거다. 그게 곧 깨달음이다.

 

이렇게 했더니 수보리가 어때요? 눈이 번쩍 뜨였단 말이오. 그러나 저는 지금 이 법문을 듣고 이렇게 눈을 뜰 수가 있지만은 저 미래세에 있는 중생들이 이런 법문들 듣고 믿는 마음을 내겠느냐? 이렇게 생각하니 부처님께서 수보리야 그런 소리를 하지마라. 저 미래세에 태어난 중생이라도 유지게자수복자라면 한 번 듣고 바로 믿는 마음을 내어 실다움을 삼을 것이다. 이렇게 해서 이 경의 점점점점 내용이 깊어지면서 초기에는 아상을 깨뜨리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면 후반기에 가면 법상. 이게 법이다 하는 상에 집착하는 것을 깨뜨리죠. 이 법은 뗏목과 같은 줄을 알아라. 법이다 하면 이미 법이 아니다. 이렇게 해서 법상을 깨뜨리게 된다.

 

더 나아가게 되면 반야다 하는 그 생각도 상이 된다. 이 말이죠? 반야다 하지만은 반야라 할 것도 없고 인욕이라 하지만은 인욕이라 할 것도 없고. 제일이다 하지만은 제일이다 할 것도 없다. 모든 사람들이 깨달았다 하지만은 깨달았다 하는 생각을 해도 그것 또한 깨달음이 아니다. 그것 또한 상이다. 그래서 일상무상 하나의 상. 하나의 상도 지어서는 안 된다. 그래서 마지막에 와서는 모든 상을 떠나야 한다. 이랬단 말이오. 그러니까 부처님의 법은 무유정법이라. 정함 있음이 없는 법이다. 인연을 따라서 나타나는 거다. 마치 거울에 물건이 비치듯이. 그러기 때문에 부처님은 법을 설했다 해도 그것은 옳지가 않다. 법을 설했다하면 오히려 붓다를 비방하는 것이 된다.

 

이렇게 해서 와서 맨 마지막에 와서 어떻게 됩니까? 일체상을 떠나는 것. 위일체상. 바로 즉명제불이라. 그것이 바로 부처라 이름 한다. 응무소주 이생기심이라. 마음을 내되 어디에도 집착해서 마음을 내면 안 된다. 중생중생 하지마는 중생이란 상도 없고. 아상인상중생상수자상이라지만은 아상인상중생상수자상이라 할 것도 없다. 이 말은 일체 상을 다 여의야 된다. 이거야. 더 말한다면 상을 여의여야 한다는 상도 지으면 안 된다. 그러면 또 상을 여의였느니, 못 여의였느니 해서 또 시비가 일어나게 된다. 이것을 우리가 확연하게 수지독송하면 이것을 깨닫게 되면 이 세상에 그 어떤 경계, 그 어떤 상황에 어떤 처처에 처해도. 괴로움에 빠지지 않고 속박의 그물에 말려들지 않게 된다.

 

괴로움에 빠지고 속박의 그물에 걸려들었거든 그것이 밖으로부터 오는지 알지 말고. 자기가 또 뭔가 상을 지었구나 하고 안으로 돌이키게 되면. 깨끗하다 더럽다는 상을 지었든지. 법이다 법아니다라는 상을 지었든지. 뭔가 상을 지으니까. 또 그 그물에 스스로 말려들었다 이거야. 그래서 그건 바로 얻겠다는 생각이 있어서 그렇죠. 그래서 이 무소득고. 얻을 바 없는 까닭으로 보리살타의 반야바라밀다. 보리살타는 깨달음에 의지하여 마음의 장애가 없고 장애가 없으므로 두려움이 없고. 그래서 뒤집어 진 잘못된 생각 전도몽상을, 원리 멀리 떠나서, 구경열반 마침내 열반에 이르게 된다. 반야심경이 이 금강경의 그런 요점을 정리해 놓고 있단 말이오.

 

그러니 이 경을 수지독송하는 공덕은 한량이 없다 이거야. 우리가 이 세상에서 복을 지어서 복을 받는다 하는 그런 세계하고는 아예 차원이 다른 세계다. 그럼 복을 짓고 복을 받는 거는 없다가 아니라. 그것과는 아예 이 가야 할 길이 다르다. 그것은 어두운 밤에 촛불을 켜고 반딧불을 켜고 더듬거리며 길을 가는 거라면. 이것은 낮 광명이 확 비쳐서 대낮에 햇빛이 비쳐서 천지가 한 눈에 확 보이는 것 같은 그런 인생의 길이다. 여기는 재앙이라는 건 아예 있을 수가 없다. ? 이 세상에서 부닥치는 그 온갖 재앙도 사실은 알고 보면 다 뭐가 된다? 나에게 큰 복이 된다. 이 사람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도 전부 다 복이 돼 버려.

 

자동차 사고가 나도 깨달음을 얻어버리고. 팔이 부러져도 거기서 깨달음을 얻어버리고. 내가 어리석음을 내면 일체중생의 어리석음을 이해하는 쪽으로 사용이 되고. 내가 화를 한 번 내면 아~ 중생이 이래서 화를 내구나 하는 것을 깨달아 버리고. 엎어지고 자빠지고 해도 다 뭐가 된다? 복이 된다 이 말이오. 그러니 능히 과거생에 지은 모든 업장이 다 소멸이 된다. 그 공덕을 내가 어떻게 일일이 다 말로 하겠느냐? 그건 도저히 말로는 필설로는 헤아릴 수가 없는 거다. 그러나 어리석은 중생들은 이 세계를 보지 못하고. 그러니 믿지 않는다 이거야. 그저 조금 해보고 아이고 된다 안 된다. 된다 안 된다. 맨날 안 된다는 생각만 하고 산다. 이거야.

 

그러니 이 경의 공덕은 이 경의 뜻은 불가사의 하고. 이 경의 공덕은 한량이 없다. 그래 오늘 집에 가서 이제 에이고 뭐 부처님말씀대로 세상이 되나? 이 생각이 들거든 내가 뭐구나 이리 생각하라고? 내가 여우구나 이리 생각하라니까. 이게 내가 바로 꼬리가 아홉도 넘네. 둔갑할 때 다 되가나? 이렇게 생각하란 말이야. 그러니까 다 이 중생이 여우같애 사실은. 아시겠어요? 자기 잘났다 하지만 남편이 보면 여자가 여우같고. 아내가 보면 남자가 어때요? 여우같애. 요리 빠지고 조리 빠지고 꼭 미꾸라지 새끼처럼 말이에요. 자기 변명하고 그런단 말이오. 그러니까 내가 여우구나. 이렇게 생각하고 정신을 딱 차리게 되면 저절로 좋아져.

 

수행이 따로 있는 게 아니요. 한 생각 돌이키는 게 수행이오. 왜 우리가 무릎이 아프도록 절을 하느냐? 한 생각 돌이키려고 그런단 말이오. 뉘우치려고 그런다. 왜 앉아서 화두를 들고 살펴보느냐? 관념의 벽을 깨려고 그런다. 그런데 그것 또한 상에 빠져 형식에 빠지면 안 된다 이거야. 바로 경계가 탁! 부딪치는 속에서 한 생각 탁 바꾸는 거야 말로 그게 언하에 깨치는 길이란 말이오. 경계에 따라 그냥 바로 딱 정신을 차려야 된단 말이오. ? 쉬운 길을 놔놓고 어려운길을 둘러가며 삶속의 길을 두고 저 허공 속에서 자꾸 길을 찾느냐? 이거야. 부처님이 우리 같은 어리석은 중생을 깨우치려고 이 세상에 오셨지. 고승을 깨우치려고 이 세상에 온 것도 아니고. 고승이 따로 있는게 아니다 이거야. 한 생각 돌이키는 게 바로 부처라 그랬는데 고승이 어떻게 따로 있겠어.

 

불법은 진 죄와 속죄가 없다. 실함과 헛됨이 없다고 얘기했는데 어떻게 세속생활은 불법의 길이 아니고 저 산속의 생활은 불법이라고 말하겠느냐? 이거야. 아니다 이거야. 번뇌적 보리라고 말하지 않았냐. 괴로움이 있는 그 세계에서 괴로움의 실체 괴로움의 뿌리를 보고 놔버리면 바로 해탈의 길이 열린다 이거야. 그런 깨우침을 이렇게 구구정념이 열려주고 있는데도 불법을 믿고 받들지를 못할망정 뭐는 하지 마라 그랬어? 놀라고 겁내고 두려워하고 신심불역이라. 거역하지는 마라 이거야. 그런데 여러분들은 자기 생각이 어리석어서 홀딱 빠져놓고 또 자기 생각이 어리석어서 또 욕하고. 에이고 뭐 불교 믿어봐야 소용없더라. 이런 소리 하시면 안되요. 아시겠어요?

 

부처님이 여러분보고 아무말씀을 하지 않으셨는데 왜 여러분이 부처님을 비난하느냐 이거야. 경전이 여러분에게 아무 얘기도 안했는데 왜 무슨 경전은 좋으니 무슨 경전이 나쁘니 이렇게 말을 하냐 이거야. 그러니 오직 자기 스스로 공부를 해 나가야 된다. 이 말은 남을 둘로 보지 말라는 게 아니라. 일체 세상이 다 자기와 한 몸 이기 때문에. 자기가 늘 주인이 돼서 살펴야지. 남에게 의지하고 남이 공부 됐니 안 됐니는 점검할 필요가 없다. 그건 나한테 아무 공덕이 안 된다. 이 말이오. 그리고 나이나 여자든지. 나이든지. 남편이 죽었다든지. 자식이 뭐 있다든지 없다든지. 재물이 있다든지 없다든지. 이제 이따위 갖고는 제발 좀 시비를 하지 마라.

 

부처님은 그거 하나도 없어도 잘만 지내셨잖아 그죠? 나무 밑에서 그 흔한 음식도 없이, 옷도 제대로 없이, 집도 없이, 친구도 하나 없이, 자식도 하나 없이, 그렇게 지내도 행복하게 지냈는데. 우리는 그 분에 비하면 가진 게 너무 많아. 얼마나 많아. 많아서 병이지 없어서 병든 적은 없어. 정말 없어서 병들면 제가 준다. 그랬잖아요. 사흘 굶으면 양식을 준다 그랬잖아요. 지금 다 건강이 나쁜 것도 많이 먹어서 건강이 나쁘고. 옷도 많아서 집에서 다 탈이고. 가족도 너무 많아서 탈이고. 공부도 학교 너무 다녀 탈이에요. 애들도 학교를 너무 가르쳐 불효되지. 국민학교만 가르치면 불효 절대 안 된다니까. 제가 내 말씀 드리잖아요. 효자 만들라면 쫓아 내버리라니까. 그냥.

 

그러니 지금은 많아서 탈이지 없어서 탈은 아니다. 그러니까 많은 줄을 알고 돌이켜서 정진을 하고 버리는 공부를 해야 된다. 옷도 오늘 집에 가서 열어보고 반 탁 잘라서 이웃집에 줘 버리고 살거 양식 딱 보고 아이고 이거 뭐 열한달이나 먹을 게 있네. 3일만 있으면 되지하고 딱 잘라 줘버리고. 그렇게 생각하면 줄게 많아요? 없어요? 즐게 수두룩하다 이거야. 부족하다면 그렇게 해라. 그래서 마음속에 부족함이 없는 게 뭐다? 부자다. 부자가 따로 있는 게 아니다. 그러니까 부처님 법 만나서 좋은 경전 만나서 들을 수 있는 거를 복이라고 생각하시고. 그것만 해도 한량없는 복인데. 뭘 소소한 것 까지 다 챙길라 그러세요? 이것부터 먼저 챙겨놓고 틈나시거든 챙기세요.

~ 마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