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주지산
월간마운틴 글 ㆍ사진 양계탁 기자 입력 2013.02.15 13:49 수정 2013.02.15 14:03
주차장~황룡사~갈림길~능선안부~대피소~정상~갈림길~황룡사
아아! 이곳은 첩첩산중 설국이어라
전라·충청·경상 삼도의 경계가 맞닿아 있는 민주지산은 먼 옛날 삼국시대에는 백제와 신라의 접경지대였다.산세가 전체적으로 완만하고 크게 험한 곳이 없는 민주지산은 특히 봄철에 흐드러지게 피어나는 진달래꽃으로 유명하다.이 시기에는 정상 북쪽에 위치한 각호산(1176m)에서 시작해 석기봉(1200m)을 거쳐 남동쪽 끝자락에 자리한 삼도봉(1178m)까지 이어진8km주능선이 온통 분홍빛 진달래꽃으로 치장한 꽃길로 변한다.다른 산의 경우 진달래가 군락을 이루는 데 반해 민주지산의 진달래는 능선을 따라 꽃을 피우는 것이 특징이다.이 산을 외부인들에게 알린 일등공신은 또 있다.산의 북쪽에 위치한12km의 물한계곡.잘 보존된 짙은 수림과 주능선 곳곳에서 모인 맑은 물이 한줄기 옥류가 되어 흘러내리는 이 계곡은 여름철이면 더위를 식히고자 하는 이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눈이 많은 내륙지방에 위치한 민주지산은 겨울이면 만개하는 설화로도 이름나 있다.
1월의 어느 평일 오후에 찾은 민주지산.삼삼오오 무리지어 산을 오르내렸을 산꾼들이 비운 자리는 깊이를 알 수 없는 적막감이 대신하고 있었다.모처럼의 호젓한 평일산행에 일행들은 기대감으로 한껏 부풀었고,두런두런 이어지는 말소리는 걸음을 옮길 때마다 하얀 눈 위로 아로새겨지는 발자국 마냥 끊일 줄을 몰랐다.얼마간의 상가지구를 지나자 왼편으로 황룡사가 모습을 드러냈다.지난1972년에 창건된 이 사찰은 비록 규모는 그리 크지 않지만 물한계곡의 울창한 숲과 맑은 물이 한데 어우러진 명당 한편에 자리하고 있어 제법 고즈넉한 정취를 자아냈다.잠시 경내를 둘러보다 발길을 돌렸다.등산로는 사찰 앞 계곡 오른쪽으로 나 있다.
완만한 오름길로 이어지는 초입
물한계곡을 왼쪽으로 두고 산길로 접어들었다.영동군에서 가장 높은 민주지산과 그 위성봉격인 석기봉,삼도봉 등이 흘려보낸 물이 합수되어 흐르는 물한계곡.잘 보존된 수림과 옥수가 빚어내는 청정미로 국내에서 제일가는 원시계곡이라 일컬어지며 여름철이면 빼어난 풍광과 함께 피서를 즐기고자 하는 행락객들로 문전성시를 이루는 곳이다.그런 까닭에 황룡사에서부터 물한계곡 깊숙한 곳까지 철조망이 둘러쳐져 있고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온통 새하얀 백설에 몸을 내맡긴 물한계곡은 한 여름철의 그것과는 또 다른 분위기를 연출했다.등산로 양옆으로 키높은 나무들이 하늘을 향해 쭉쭉 뻗어 올라간 모습을 바라보노라니 그 기운이 전해지는 듯 몸에 힘이 절로 돈다.한 구비씩 돌 때마다 더 깊은 산의 품을 향해 뻗어있는 널따란 등산로.얼마간 그 소리 없는 일렁임에 몸을 내맡긴 채 휘적휘적 산길을 걸어본다.
↑ 키높은 잣나무 숲을 지나고 있는 취재팀, 등산로는 이곳을 지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두 갈래로 갈린다.
이윽고 제법 큰 잣나무 숲이 시작되나 싶더니 갈림길 하나와 만난다.삼도봉으로 이어진 좌측 계곡길 대신 오른쪽 쪽새골이란 이름의 골짜기를 거쳐 민주지산으로 오르기로 한다.해가 지기 전에 정상에서 약20분 정도 거리에 마련되어 있는 무인대피소에 들기 위함이다.운 때만 맞는다면 내일 아침 산정에서 온 산을 붉게 물들이는 일출과 마주할 수 있으리라.
"정상에서 바라보는 일출이 장관이라는데 내일 꼭 날씨가 맑았으면 좋겠다."
"그러게 말이야.주위에 더 높은 산이 없어 날씨가 좋을 땐 사방으로 크고 작은 산들이 일망무제로 펼쳐진다지."
저마다 머릿속에 산 하나씩을 그리며 등산로를 오르는 일행들.눈 덮인 산길은 발바닥에 와 닿는 지면의 감촉으로 봐서 비포장 임도인 듯 했다.높이를 더하며 쌓인 눈의 양도 점차 늘어나 몹시 미끄러웠다.
차가운 겨울날씨로 바닥까지 얼어붙은 실개천 두 개를 건너고,커다란 돌들이 성곽처럼 에둘러진 모퉁이 하나를 돌자 갈림길이 나온다.여기서 직진하면 각호봉과 민주지산 사이의 능선 안부를 거쳐 정상으로 가는 지름길.이 코스는 등산로의 경사가 급하고,중간에 험한 바위구간과 만나게 된다.반면 왼쪽길로 접어들면 계곡사이로 난 너덜지대를 지나 주능선 직전에서 깔딱고개를 오르게 된다.편안한 임도길로 산을 오르던 일행들은 지름길을 택해 오르기로 한다.갈림길에서 주능선 안부까지는30분 남짓 소요된다.
발목까지 빠지는 눈길을 가쁜 숨을 몰아쉬며 오르던 일행들 앞에 능선 오르기 전 바위구간이 모습을 드러낸다.그리 긴 구간은 아니지만 커다란 바위들이 듬성듬성 놓여 있어 발 딛기가 여간 조심스럽지 않다.바위 사이 한 뼘이 채 되지 않는 흙에 기대어 살아가는 잡목들이 버팀목이 되어 주어 고맙기 그지없다.그렇게 얼마간을 오르자 차가운 바람이 뺨을 때리며 흘러내리던 땀이 순식간에 식어버린다.
강풍이 몰아치는 능선,대피소 안은 천국
↑ 페치카 앞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는 취재팀. 눈보라가 몰아치는 산중에서 맞는 대피소에서의 하룻밤은 색다른 경험이었다.
해가 뉘엿뉘엿 지기 시작하는 시각,주능선에 올라섰다.온 누리를 밝게 비추다 또 다른 시작을 기약하며 사라져가는 태양.한참을 바라보다 정상 쪽으로 발걸음을 옮긴다.골짜기를 휘돌며 올라온 바람은 능선에 닿을 즈음 회오리바람으로 변해 내려앉은 눈을 공중에 휘날리고,맨얼굴에 와 닿는 차가운 눈의 감촉에 깜짝깜짝 놀라는 일이 허다해진다.오후 다섯 시,해가 빨리 저무는 겨울산인만큼 이제 밤을 보낼 쉼터에 들어야 할 때였다.문득 가야할 방향을 바라보니 하얗게 눈을 뒤집어쓴 무인대피소 지붕이 멀리 시야에 들어오며 칼바람에 잠시 위축되었던 몸에 새로운 힘이 솟아오름을 느낀다.능선 오른쪽으로는 고만고만한 높이의 산들 너머로 영동군이 아득하다.
안부에서 대피소까지는20분 정도면 닿을 수 있다.능선에서 약20m아래에 자리한 무인대피소는 영동군이 민주지산 일대 정비 사업을 추진하던 지난2001년11월에 지어졌다.단층 구조에8평은 족히 되어 보이는 목조건물로 내부에는 넒은 평상이 설치되어 있고,한쪽 구석에는 비상 시 나무를 뗄 수 있는 페치카가 설치되어 있다.사실 국립공원도 아닌 곳에 이런 무인대피소가 있다는 사실은 뜻밖이었다.알고 보니 대피소 건립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민주지산 일대에30cm가 넘는 많은 눈이 내렸던 지난1998년4월,행군훈련 도중 강풍과 폭설로 조난을 당한 특전사 대원6명이 저체온증으로 사망하는 비극적인 사고가 있었던 것.당시 사고가 발생한 곳도 지금의 대피소 자리 부근이다.크고 작은 나무들 사이로 바라본 하늘에는 빠르게 잿빛 구름이 몰려들고 있었다.해가 넘어간 자리를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어둠이 채우고 있음을 느끼며 서둘러 산장 문을 열었다.
"와!이거 상상 밖인데?완전히 호텔이다,호텔."
약속이나 한듯 일행들의 입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상주하며 관리하는 사람이 없음에도 말끔히 정돈되어 있는 내부는15명 정도는 너끈히 묵어갈 수 있는 규모였다.배낭을 풀러 짐정리를 마친 일행들은 서둘러 산장 밖으로 나갔다.그리고 잠시 뒤,폐 공사자재와 죽은 나뭇가지들을 주워와 불을 지피기 시작했다.눈에 젖은 나무는 기대했던 '따닥따닥' 소리가 아닌 '치이익' 소리를 내며 수증기를 피워냈다.그렇게 페치카 앞에서 시간을 보내는 사이 바깥에는 소리 없이 눈이 내리고 있었다.
일출 대신 눈앞에 펼쳐진 광대한 설국
↑ 민주지산 정상, 멀리 삼도봉으로 이어진 능선을 바라보고 있는 기자
밤새 불어 대던 바람소리에 잠을 설쳤던지 이른 새벽부터 눈을 떴다.서둘러 내다본 바깥 날씨는 아직도 잔뜩 흐린 속에 간간히 눈발마저 날리고 있어 일출에의 기대감을 산산이 부숴버렸다.간단히 식사를 마친 일행들은 단단히 무장을 하고 산행을 시작했다.밤새 내린 눈의 양은 족히20cm정도는 되어 보였다.특히 기존에 쌓인 눈에 신설까지 더해진 능선은 간혹 배꼽 위까지 눈 속에 빠져 운행 속도가 더뎠다.하지만 온 산을 뒤덮은 하얀 눈과 주렁주렁 탐스럽게 열린 설화를 온몸으로 즐기며 아무도 가지 않은 눈 위를 걸어가는 느낌은 짜릿함 그 자체였다.결국 선두에 서기 위한 소리 없는 경쟁까지 벌어졌다.
짧은 바위 구간을 넘어서니 잡목 한 그루 찾아볼 수 없이 민둥한 모양새의 정상이 모습을 드러낸다.정상에서의 조망은 과히 명불허전이었다.멀리 삼도봉을 기점으로 끝없이 뻗어 나간 백두대간과 사방 어디를 둘러보아도 하얀 눈을 뒤집어쓴 채 성큼 다가서는 산들의 파노라마는 우리나라가 산악지형 국가임을 여실히 보여주었다.또 구름 속에서 매초마다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산들은 골짜기에서 피어오른 안개와 한데 뒤섞여 신비감마저 갖게 했다.
"이런 겨울산행 정말 오랜만이다.이건 숫제 내려가고 싶은 맘이 싹 가시네."
"그러게,우리 그냥 하루 더 산에서 묵을까?"
실제로 그러진 못했지만 그 순간만은 진심에서 우러나온 얘기였다.각자 바쁜 일정들만 아니었다면 산의 품에 안겨 하루 정도는 일상의 끈을 놓아버리고 싶었으니까.'산은 항상 그 자리에 있으니까'라는 누군가의 명언이 오늘따라 식상하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민주지산에서 약 두 시간 남짓한 거리에 위치한 삼도봉까지의 산행은 예상치 못했던 적설로 인해 아쉽지만 포기해야 했다.허리까지 눈이 차오르는 능선길을 단 세 명이서 번갈아 러셀하며 진행한다는 건 가부여부를 떠나 너무나 많은 시간이 지체될 터였다.결국 하산을 결정했다.물한리쪽으로 하산은 정상에서 남쪽으로 난 능선을 따르다가 갈림길을 만나면 왼쪽으로 내려선다.한동안 내리막을 내려서다 임도를 만나면 전날 올랐던 코스를 거쳐 원점 회귀할 수 있다.삼도봉쪽으로 뻗어간 능선을 한참동안 바라보다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긴다.골짜기로 들어서니 바람이 잠잠해지며 아쉬웠던 마음이 다소간 진정된다.분위기를 바꿔볼 주제를 찾던 중 문득 시야에 가파르게 날이 선 설사면이 들어왔다.착용하고 있던 아이젠을 벗은 뒤 경사진 설사면에 비스듬히 몸을 날렸다.신설을 한가득 품에 안은 채 미끄러져 내려가는 모습을 지켜보던 일행들의 얼굴에 화색이 돈다.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평소 무뚝뚝한 경상도 사나이인 양 기자도 뒤이어 눈썰매를 탔노라고 했다.그 모습을 상상하니 싱긋 웃음이 나왔다.
널따란 등산로가 좁아지며 완연한 골짜기로 들기 전,얼굴을 돌려 멀리 민주지산 정상을 올려다본다.그곳에는 여전히 바람이 모였다 사라지길 반복하며 눈가루를 공중으로 흩날리고 있을 터였다.
"우리 언젠가 민주지산에 다시 한 번 오지요?"
"그러자고,그 땐 꼭 하루 더 산에서 보내기로 해."
민주지산은 그렇게 마침표가 아닌 쉼표로 마음속에 자리 잡았다. m
충북 영동군 용화면과 상촌면의 경계에 위치한 민주지산(1241m)은 북쪽으로 각호산,남동쪽으로 석기봉과 삼도봉이 이어진다.이 산줄기는 충북 영동과 전북 무주,경북 김천과 맞닿아 있다.산 정상에 서면 장쾌하게 펼쳐진 산줄기와 멀리 덕유산과 무주리조트까지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봄이면 산 능선을 따라 진달래길이 이어지며 산행 기점인 물한리계곡은 여름철 계곡 피서지로 이름난 곳이다.또 겨울에는 적설량이 많아 심설산행을 즐기기 좋다. ⓜ
information
민주지산 산길과 주변 몰거리
산길
산행은 용화면 민주지산자연휴양림이나 상촌면 물한계곡을 기점으로 한다.가장 많이 이용되는 물한리 기점은 잣나무숲까지 평탄한 길이 이어진다.첫 갈림길에 이르면 왼쪽은 삼도봉,오른쪽은 민주지산과 각호산으로 길이 나뉜다.오른쪽으로 가다가 계곡을 두 번 건너면 각호산과 민주지산 사이의 능선 안부를 거쳐 정상으로 가는 지름길이 있다.민주지산 정상에서20분 거리에 떨어진 능선 아래에는1998년 특전사6명이 동사한 사건 이후 세운 무인대피소가 자리 잡고 있다.민주지산은 산 하나만 오르는 것보다 산 능선을 타고 각호산이나 석기봉,삼도봉을 잇는 산행을 많이 한다.석기봉 정상 아래에는 삼두마애불이 바위에 새겨져 있고 삼도봉에 오르면3도가 대화합을 기원하며 세운 기념탑을 볼 수 있다.각호산~민주지산~석기봉~삼도봉을 잇는 종주산행은 삼도봉에서 시작하는 것이 훨씬 쉽다.
교통
서울에서 출발시 경부고속도로 황간IC를 이용하는 것이 가장 빠른 길이다.기차는 서울역에서 영동역까지1일25회 운행된다.동서울종합터미널에서 영동행 고속버스는 오전10시부터 오후6시까지1일4회 운행하며2시간40분 정도 소요된다.이밖에 대전이나 무주,청주,김천 등지에서 영동을 오가는 시외버스가 자주 다닌다.
문의 영동시외버스터미널
043-744-1700
주변볼거리
● 난계국악박물관
충청북도 영동군 심천면 고당리에 위치한 난계국악박물관은 우리나라3대 악성 중 한 사람인 난계 박연의 뜻과 업적을 기리고 국악에 대한 자료를 수집·전시·보존하고 있다.박물관1층에는 국악실과 난계실·영상실 등이 있고, 2층에는 정보검색코너와 국악기체험실이 마련되어 있다.오전9시부터 오후6시(동절기는5시)까지 개관하며 매주 월요일과 공휴일에 휴관한다.입장료는 어른5백원,청소년 및 군인3백원,어린이2백원이다.박물관 근처에 자리한 난계묘와 난계생가·국악기제작촌·난계국악당 등도 함께 둘러볼 수 있다.
문의043-742-8843
● 송호국민관광지
금강이 흐르는 영동군 양산면 송호리에 조성된 송호국민관광지는 양산가의 발생지다.이 일대를 중심으로 영국사,봉황대,비봉산,강선대,함벽정,여의정,용암,자풍서당 등 양산팔경이 자리 잡고 있다.사시사철 푸른 소나무숲이 장관인 송호국민관광지는 주차장,샤워장,취사장,체력단련장,어린이 놀이터,산책로,방갈로 등의 시설을 갖추고 있다.입장료는 어른1천원 청소년과 군인은8백원 어린이는5백원이며 단체30인 이상은 각각1백원 할인된다.
송호국민관광지 관리사무소043-740-32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