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망향 비빔국수와 산두리 비빔국수
신동흔 기자 2011.04.16 03:04
한 뿌리에서 이젠 남남으로… 비빔국수 지존 대결
1. 망향비빔국수 1968년 연천의 한 군부대 앞에서 매운 비빔국수로 차츰 명성 얻어
2. 산두리비빔국수 막내딸이 포천 가게로 독립2007년 프랜차이즈 먼저 시작
3. 현대화 vs 전통, 산두리는 메뉴 다양화로 승부, 망향은 국수와 만두만 고집
"국물이 많은 특이한 비빔국수, 처음에는 살짝 단맛 때문에 매운맛을 느끼지 못하다가 절반쯤 먹으면…, '그분'이 찾아오시더군요."
누군가 '망향비빔국수 대 산두리비빔국수'라는 제목으로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글의 일부다. '그분'은 비빔국수 특유의 매운맛을 뜻한다. 인접해 있는 경기도 연천과 포천의 조그마한 국숫집으로 출발한 두 음식점이 최근 전국으로 가맹점을 확대하면서 매운 비빔국수의 '지존'을 가리기 위한 싸움이 벌어지고 있다.
두 가게의 비빔국수는 거의 비슷하다. 여느 비빔국수와 달리 국물이 많고, 비빔국수에 삭힌 백김치를 넣고, 면 위에 상추 이파리를 얹어주는 것까지 똑같다. 두 가게 음식을 모두 접해본 소비자들은 대부분 맛이 비슷하다고 느낀다. 여기에는 '출생의 비밀'이 있었다.
▲ 경기도 연천의 망향비빔국수 본점(왼쪽 사진/ 조선일보 DB제공)과 포천의 산두리비빔국수 본점.
시골 식당에서 출발한 국수집이 전국에 가맹점을 내기까지 40년이 걸렸다. 두 식당은 한 뿌리에서 났지만 이제는 남남이 되어 최대 라이벌 관계에 있다.
모든 이야기는 60년대 경기도 외곽의 자그마한 국숫집에서 시작된다. 망향비빔국수(이하 망향)는 지난 1968년 연천의 한 군부대 앞에서 창업자 가족이 국수를 비벼 팔던 것에서 시작했다. 1970년에는 인근 포천에도 두 번째 가게를 냈다. 80년대 '마이카 붐' 이후 서울 교외로 드라이브하는 사람들이 늘고 제대한 장병들까지 '추억의 맛'을 못 잊어 찾아오면서 국숫집은 나날이 번창했다.
이 국숫집 2남3녀의 세 딸 중 막내딸이 어머니 일을 도왔다. 막내딸은 나중에 포천의 가게를 맡아서 운영하게 된다. 연천과 포천의 두 비빔국숫집이 입소문을 타면서 큰딸과 둘째딸도 가세해 각각 미사리와 양주에 직영점을 오픈하고, 본격적인 '패밀리 비즈니스'에 나서게 된다.
프랜차이즈는 지난 2007년 산두리비빔국수(이하 산두리)가 먼저 시작한다. 막내딸은 망향비빔국수로 프랜차이즈 사업을 하기를 원했으나, 집안의 반대가 심했다고 한다. '굳이 프랜차이즈를 할 필요가 있느냐'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의 고집을 꺾지 못했다. 가맹점사업을 위해 포천 가게의 간판을 '산두리비빔국수'로 바꿔달았다. 이곳에 산두리의 본점이 들어선 사연이다. 이후 산두리는 2008년부터 시작된 국수집 붐을 주도하면서 가맹점을 늘려 갔다. 2009년에는 가맹점 숫자가 43개까지 됐다. 2008년부터는 망향의 형제들도 프랜차이즈에 뛰어들었다. 한집안에서 서로 다른 두 개의 프랜차이즈를 만들어 경쟁하게 된 것이었다.
먼저 프랜차이즈를 시작했던 막내딸은 지금은 비빔국수 사업에서 손을 뗐다. 산두리의 현재 가맹점 숫자는 20개로 줄었다. 비슷한 시기에 프랜차이즈 국숫집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나면서 문을 닫거나 업종을 전환하는 점포가 많았다고 한다. 그 사이에 송사(訟事)도 겪어야 했다. 2009년 말에는 산두리 상무 출신인 현 조윤철 대표가 경영권을 넘겨받았다.
▲ (왼쪽)망향비빔국수 / (오른쪽) 산두리비빔국수
업계에서는 두 비빔국숫집의 경쟁이 지금부터 시작이라고 보고 있다. 이제는 두 가게 모두 '손맛'보다 공장에서 생산하는 '시스템'에 의존하고 있다. 모두 별도의 공장에서 가맹점에 보내는 재료와 야채육수를 만들고 있다. 현재 가맹점 숫자는 망향이 38개로 산두리보다 세(勢)에서 앞서 있다. 망향 관계자는 "본점이나 직영점, 가맹점 구분없이 모두 공장에서 생산한 동일한 재료와 육수, 김치를 사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동안 국수 전문점은 외식시장에서 그다지 주목받지 못했다. 특히 비빔국수는 가정에서 쉽게 만들 수 있는 음식이어서 굳이 바깥에서 돈 주고 사먹어야 할 음식이란 인식이 약했다. 하지만 2008년의 경제 위기가 이런 트렌드를 바꿔놓았다. 전문가들은 국수를 '불황'과 연결된 창업 아이템으로 본다. ▲저렴한 대중적 먹을거리 ▲간편한 조리법 ▲소규모 생계형 창업이 가능한 '삼박자'를 갖췄다는 것이다. 국내에 국수 체인점들이 집중적으로 생겨나기 시작한 것도 2008년 무렵부터였다.
두 회사 앞에 가로 놓인 현실은 녹록치 않다. '김용만의 닐니리맘보' '봉채국수' '국수나무' '명동할머니국수' 등 경쟁자들이 많아졌다. 또 '여름 메뉴'인 비빔국수의 한계를 극복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창업 컨설팅 전문기업인 FC창업코리아의 강병오 대표는 "원조집과 프랜차이즈는 다른 만큼 비빔국수와 함께 먹을 수 있는 주먹밥 등의 부가 메뉴, 저녁용 메뉴, 비빔국수를 대체할 만한 겨울철 메뉴를 개발하면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다시 가맹점 확대에 나서기 시작한 산두리는 전략을 바꿔 국수 외에 겨울 메뉴인 국밥과 수육, 어린이용 돈가스 등 다양한 메뉴를 갖추고 있다. 산두리 조윤철 대표는 "비빔국수의 전통을 유지하면서 동시에 도심 음식점의 특성에 맞는 메뉴를 적극 선보일 예정"이라고 말했다. 철원 오대쌀로 만든 현미쌀국수 등 국수 제품도 활발하게 개발하고 있다. 반면, 망향은 여전히 만두 메뉴 외에는 '온리(only) 국수' 전략을 택하고 있다. 맛은 망향의 비빔국수가 산두리에 비해 신맛이 강하고 더 매운 편이다.
두 회사는 지금까지 서로 겹치는 상권을 피해왔다. 산두리 관계자는 "상권 분석을 통해 동종 업종이 없는 지역을 점주들에게 추천하고 있다"고 말했다. 앞으로 국수 가게 숫자가 늘어 갈수록 '비빔국수 지존'을 가리기 위한 진짜 승부가 본격화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