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수행, 나에게 주는 선물

seongsoo 2016. 7. 1. 09:58

[ESSAY/2016.06.29]

수행, 나에게 주는 선물

금강 스님·미황사 주지

 

살다가 고민이 깊어지면 '빈 그릇'이 쓸모 있을 때 많아

나를 비우면 오히려 채워지니 뜨거운 이 여름 휴가 대신

오롯이 나를 만나는 수행의 시간을 스스로에게 선물하면 어떨지

 

좋은 인연을 만나는 것은 나에게 주는 선물이다. 인연은 꼭 사람만은 아니다. 수많은 책과 만나는 것도, 다양한 문화·역사와 만나는 것도 있다. 날마다 변화하는 환경도 있다. 그래도 내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수행과 만나는 일이다.

 

'함부로 인연을 맺지 마라. 진정한 인연과 스쳐가는 인연은 구분해서 맺어야 한다. 진정한 인연이라면 최선을 다해서 좋은 인연을 맺도록 노력하고, 스쳐가는 인연이라면 무심코 지나쳐버려야 한다.' 는 법정 스님 말이 생각난다. 이 수행 중에도 진정으로 잡을 것과 흘려보내야 할 것을 잘 알아야 한다.

 

"자기가 짊어지고 온 고민을 풀고 싶으면 뒤로 미뤄두세요. 그동안 그거 풀려고 노력 많이 했을 테지만 여전히 답답할 거예요. 조용한 이곳에 머물며 고민의 실마리를 해결하고 싶어 오셨을 텐데 문제는 풀리지 않을 겁니다. 귀한 시간만 낭비하고 온갖 추측과 상상의 나래만 펴다 잘못된 답을 찾게 될 겁니다. 문제를 정말로 풀고 싶다면 문제를 버리고 자신을 향상시키는 데 집중하세요. 그 방법밖에 없습니다. 조용히 나를 향상시키는 일에 집중하다 보면 답이 나를 찾아올 겁니다." 여름철 소중한 휴가나 방학을 이용해 수행하려고 일주일씩 산사를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하는, 잡을 것과 놓을 것에 대한 나의 첫째 당부다.

 

우리 생각은 어떤가. 선택 앞에서 늘 분별하지 않는가? 하지만 분별은 좋아함과 싫어함, 깨끗함과 더러움, 아름다움과 추함을 저울질하는 '상대적 모순'에 빠지게 한다. 그러다 보니 상대적 행복이 있고 상대적 불행이 있다. 이 상대적 모순을 뛰어넘으려면 매 순간 상대적 모순의 밑바닥에 있는 절대적 모순을 넘으려는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다. 그래야 극복하려는 의지가 생겨나고 한순간 비약하게 된다. 가을 나무가 나뭇잎을 떨어뜨리듯, 여름 매미가 허물을 벗듯, 한 꺼풀 벗는 이것이 자신을 향상시키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잠시 멈추고 자신을 살펴야 하는 이유다.

 

 

사람들은 고민이 깊어지면 책이나 강연에서 얻은 지식, 다른 곳에서 경험했던 갖가지 방법을 동원해 문제를 해결하려 든다. 우리가 가장 일반적으로 찾는 해결법이다. 그러나 오히려 방해가 될 때가 많다. 이런 해결법을 앞세우는 것은 과거의 경험과 정보에 의지하려는 습관 때문이다. 현재 내 모습에 당당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럴 때 가끔 빈 그릇이 쓸모 있다. 나를 비움으로써 채워지는 이치를 경험해볼 필요가 있다.

 

침묵도 해결 방법의 하나다. 입에서 향기가 나게 하려면 일단 멈추는 것이 필요하다. 화나는 말, 상처 주는 말, 부풀려지는 말, 오해를 하게 하는 말은 사람들과 맺은 관계에서 시비를 만들고, 믿음을 깨고, 입에서 악취를 풍기게 한다. 마음을 고요하게 하고 말을 멈추고 그 에너지를 자기 안으로 돌리면 큰 힘이 생긴다. 마음도 너그러워지고 실수가 없게 된다. 그때에야 부드럽고 지혜로운 말이 나오며 깊은 고민도 한결 가벼운 것이 된다.

 

수행하는 기간에는 한곳에서 움직이지 말아야 한다. 조금 어려움이 있다고 피하려 하거나 포기하면 다음의 가능성은 없다. 마치 나무가 아무리 추운 겨울에도 움직이지 않고 제자리를 지키듯이 해야 한다. 그래야 꽃피는 봄을 만날 수 있다.

 

지난달 남편을 잃고서 망연히 그 인연의 끈을 붙잡고 과거의 기억에 머물러 지내던 나이 든 보살님이 찾아왔다. 자신이 대면하고 있는 모든 것과 마주치기가 두려워 도망치듯 산사로 수행하러 온 것이다. 깃들어 있는 동안 그가 마주한 산의 기운과 별, , 맑은 공기, 새소리, 바람 소리가 모두 설법처럼 들려왔고 마음이 한결 가벼워짐을 느낄 수 있었다고 고백했다. 그러고는 부평초처럼 흔들리지 않고 큰 나무의 뿌리처럼, 단단한 나무로 땅속 깊이 자리 잡고 살아야겠다는 발원을 할 수 있었다고 한다. 자연이 주는 위안은 의외로 클 때가 있다. 수많은 말보다 자연 속에 깃드는 것만으로 위로가 되기도 한다. 이렇듯 갇혀 있는 마음에서 떠나 새로운 자연과 만나는 것이 선물이다.

 

군 제대 후 갈피를 잡지 못하고 방황하는 청년이 있었다. 그는 푸른 산의 장엄함과 맑은 정기, 시원한 공기 속에서 기분이 산뜻해지며 편안해짐을 느꼈다고 말했다. 좌선에 대해 배우면서 자신의 무의식 속에 자리한 온갖 번뇌와 망상이 어떤 것인지를 인식하게 되었고, 그것들을 비우는 시간을 보낼 수 있어서 좋았다고 했다. 자신에게 준 귀한 선물 8일은 힘든 고비가 찾아올 때마다 자기를 지켜줄 버팀목이 될 거라고 했다.

 

뜨거운 여름이 기다리고 있다. 많은 사람이 휴식과 즐길 곳을 찾아 떠날 것이다. 잘 쉬고 놀아야 충전되는 법이다. 오롯이 나를 만나는 수행의 시간을 내게 선물하는 것도 좋은 휴가법이 아닐까 싶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