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일보, 살며 생각하며> 2016-06-03
□ 즐거운 강아지 기르기
김주영 소설가
일본 작가 마루야마 겐지의 ‘개와 웃다’를 읽었다. 그는 원래 개를 좋아하지 않았다. 어릴 때의 기억 때문에 적의조차 품고 있었다. 그런데 시골 생활을 시작하면서 가깝게 지내던 친구들이 하나둘씩 연락이 끓어지고 소원해져 떨어져 나가더니 나중에는 친구라고 부를 만한 사람들이 주변에서 사라지고 말았다고 한다. 시골 생활은 매우 적막했고, 외로움에 시달리게 된 것이 그가 개를 기르게 된 동기라고 했다. 그런데 개를 기르게 되면서 책에서, 혹은 자연과 사람들에게서 배운 것보다 더욱 중요한 것들을 배우게 됐다고 고백한다.
그 책을 읽기 2개월 전에 나는 두 마리의 개를 분양받기로 결심했다. 개를 기르겠다고 나서자 주위의 많은 사람이 이구동성으로 눈썹을 치켜들며 손사래를 쳤다. 내 결심을 꺾은 그들의 치명적인 한마디는 “네가 책임질 거야?”였다. 나는 그 말에 멈칫하고 말았다.
40여 년 전 일이다. 개에 대한 아무런 예비지식도 없이 덜컥 반려견 한 마리를 얻어 기르다가 비명횡사시킨 뼈아픈 사연이 내게 있었기 때문이다. 어린 딸아이와 함께 집 근처 산기슭에 그 녀석을 묻고 돌아오는 길에 딸아이는 허리가 시리도록 서럽게 울었다. 그 슬픈 기억이 나를 주저하게 했다.
그러나 나는 한 달 정도 고민을 거듭한 끝에 결국 개를 기르기로 결심하고 말았다. 그것도 한 번 짖기 시작하면 멀리 떨어진 동네가 쩌렁쩌렁 울리도록 목청이 요란한 덩치 큰 개를 기르기로 한 것이었다. 동네 사람들이 무슨 난리라도 일어난 것이 아닐까 해서 곡괭이를 집어 들고 달려오기라도 한다면 더욱 좋겠지.
시골에 있는 내 거처는 마을과 뚝 떨어진 위치에 있고 해가 지고 나면 사위는 그야말로 적막강산이 된다. 시쳇말로 개미 새끼 한 마리 눈에 띄지 않는다. 누구랄 것도 없이 나이가 들면 자연이 그리워지고, 소득이 줄어들어도 홀가분하게 그리고 단순하게 살고 싶어진다. 조금 부족해도 마음이 편한 곳에 살고 싶다. 엄마 등에 업혀 있는 어린아이의 미소에 반하고, 두 눈을 부릅뜨고 탐욕을 좇아가기도 싫어지고, 많은 고민을 하며 살고 싶지도 않다. 일보다 휴식 위주의 일상을 꿈꾸게 된다. 그리고 복잡한 것보다는 조용한 것을 바라게 된다.
그런데 이곳에 와서 얼마 지나지 않아서 심정에 변화를 느끼게 됐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바로 이 고요의 광활함이 오히려 감옥에 갇힌 것처럼 나를 옥죄고 든다는 것이다. 평소에는 안중에도 없었던 적요라는 물건이 가슴속까지 파고드는 것을 두 눈으로 선명하게 목격하게 됐다. 서가에는 평생을 읽어도 못다 읽을 책들이 쌓여 있고, 쓰기 시작한 소설도 있고, 음악도 있고, 창밖 저 멀리로는 갖가지 이야기로 명멸하고 있는 모텔의 불빛도 바라보인다.
그런데 이게 무슨 불상사인지 한마디로 치명적으로 외롭다. 눈에는 보이지 않는 그것이 시골 생활의 나를 괴롭힌다. 그래서 창문을 열면 빤히 바라보이는 장소에 말이나 소를 길러도 충분한 공간이 확보된 멋진 개집부터 짓고 말았다.
사냥개를 길러본 경험이 있는 후배를 수소문했다. 그의 도움을 받아 먼 도회지에서 태어나 2개월이 지난 강아지 두 마리를 서둘러 입주시켰다.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나를 지켜보았다. 그들의 의구심 많은 얼굴에는 “정말 네가 감당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었다. 물론 나는 그들의 걱정을 모른 척했다. 끽해야 새끼 두 마리가 아니겠느냐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우선, 여기저기 쉴 새 없이 싸대는 똥을 치우는 일이 문제였다. 두 마리가 지정한 자리도 없이 번갈아 가면서 여기저기 싸고, 뒤로 돌아서면 또 싸댔다. 물똥 싸면 뭘 잘못 먹었는지 걱정이고, 된똥 싸면 변비 아닌가 걱정이어서 심지어 항문을 들여다보기도 했다. 밥을 주고, 물을 주고, 같이 놀아 주고, 핥아대는 것을 참아 주고, 바짓가랑이 물고 늘어지는 것을 고운 손길로 내치고, 입 닦아 주고, 눈 닦아 주고, 약 먹여주고, 목욕시키고, 달아나려는 놈 붙잡아 들이고 하다 보면 돌아가신 어머니가 나 어릴 적 입버릇처럼 되뇌시던 “아이고 내 팔자야” 하는 넋두리가 내 입에서 나도 모르게 튀어나와 소스라치고 말았다.
그들을 뒷바라지하는 일을 마무리하지 못하면 다른 아무 일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네가 책임질래 하는 눈초리가 내 등 뒤에서 떠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의식하면서 하루를 가까스로 버티는 나를 발견한다.
나를 더욱 놀라게 하는 것은, 아침에 일어나면 두 마리의 개가 내가 걸어 나오는 방향으로 시선을 붙박은 채로 하염없이 앉아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다. 글을 쓰다가도, 음악을 듣다가도, 책을 보다가도 문득문득 소스라치는 것은 밥 줄 시간을 놓친 것은 아닐까 하는 것이었다. 그때마다 개를 기르기로 작정한 것은 잘못된 생각이었다는 후회였다.
그러나 후회는 잠깐, 이 아이들 예방주사 맞힐 날이 언제라 했나 하는 생각이 뒤통수를 쳤다.
나는 혼자 사는 사람들이 기르고 있는 반려견에 집착하는 것을 목격하고, 달갑잖게 생각했던 기억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지금은 내가 이들과 헤어져 있을 때, 천둥소리에 놀라 떨지 않고 코를 골며 잠들어 있기를 바라고, 내가 눈에 보이지 않아도 끙끙대지 않기를 바라고, 좀도둑이나 유기견이 접근하면 엄청난 기세로 짖어 내쫓기를 바라며, 내가 오랜만에 나타나면 내 목덜미를 맹렬하게 핥아주기를 바라고 있다. 이런 변고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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