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 법회인유분(法會因由分)_법륜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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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그러면 오늘부터 금강경 강의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교재를 펴 주시기 바랍니다. 자~ 금강경은 어떤 위치에 있는 경전이냐. 이거 한 번 살펴보겠습니다. 반야심경하고 비슷한데, 우선 불법승 삼보 중에 어디 들어가죠? 법보에 들어가죠? 법보에 다시 세 가지가 있습니다. 경.율.론 3장이 있는데 어디 갑니까? 경장에 들어가죠. 경 가운데서는 소승경전하고 대승경전이 있는데 어디에 속합니까? 대승경전에 속한다.
대승경전은 여러 개로 나눌 수 있지마는 반야부, 법화부, 열반부, 화엄부, 정토계 계통의 경전, 여러 가지가 있죠. 그 가운데 이건 어디에 속할까요? 반야부 계열의 경전이다. 반야부 계열의 경전은 600권이 있는데 그 가운데 하나입니다. 경전에 정식이름은 금강반야바라밀경입니다. 줄여서 금강경이다. 이렇게 말하고 있지마는 금강반야바라밀경이다. 이 금강반야바라밀경, 즉 금강경은 몇 차례 번역이 되었습니다.
즉 산스크리스트어로 되어있는 것을 한문으로 번역이 되었는데 저희들이 쓰고 있는 이 번역본, 한문본은 구마라십 대사가 번역한 겁니다. 구마라십. 구마라집이라고 하시는 분이에요. AD400년경에 번역이 된 것입니다. 그것을 한글로 번역한 것은 석가여래부촉법 제68세이신 용성진종대사님께서 번역한 것, 즉 용성큰스님께서 한글로 번역한 것을 모본으로 해서 강의를 하도록 그렇게 하겠습니다. 우선 9페이지 한 번 펴주세요.
金剛摩訶般若波羅蜜經금강마하반야바라밀경. 금강이란 사람 사람의 고유한 무위 불심을 일러 말씀하신 것이요. 마하란 나의 자성이 광대무변하여 절대적으로 큼을 일러 말씀하신 것이오. 반야란 근본 뿌리를 요달하는 지혜를 말씀하신 것이며, 또 밖으로 일체 차별의 일을 다 알아서 분명히 요달하는 것을 지혜라 말하는 것이다. 바라밀이란 생사의 바다를 초월하여 무상가간에 도달함을 일러 말씀하신 것이요. 경은 고기잡는 통발과 같아서 이 일부 대일을 담아 후진의 길을 열어 깨닫게 함인 것이다.
이 금강마하반야바라밀경의 대의는 아집과 법집을 파하고, 상이 공함을 나타냄이요. 대요는 무상으로 종을 삼고, 무주로 체를 삼고, 묘행으로 용를 삼음이요. 대개는 수보리 선현존자는 내심으로 잠잠히 의심하시고 세존님께서는 말씀으로 응답하심이니. 부처님께서 타심통이 있으심으로 일체중생의 마음먹은 것을 다 아시는 용공인 것이다. 이렇게 용성스님께서 간략하게 금강경 대의에 대해서 말씀을 하셨습니다.
지금 저희들이 공부하는 이 금강경은 서분, 정종분, 유통분. 이렇게 3부분만 나누지 않고. 내용이 길기 때문에 전체를 32분으로 나누어서 편집이 되어 있습니다. 자~ 그러면 금강경 제1분 法會因由分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법회인유분이다 이렇게 이름을 붙인 이유는 이 법회가 이 부처님의 말씀이 어떤 인연과 연유로 있게 되었느냐. 그런 배경을 설명하는 장이다. 이런 얘기에요.
如是我聞여시아문하사오니. 여시아문이라는 것은 이와 같이 제가 들었사오니 이런 말이죠. 이럴 때 아가 누구라 그랬습니까? 아난다 존자라고 말씀을 드렸죠? 부처님이 열반에 드시고 500아라한이 모여서 경전을 편집을 했다. 이때 마하가섭존자가 사회자가 되고. 아난다존자가 경전의 편집에 초안을 내고, 우파리존자가 율장의 초안을 냈습니다. 그래서 500비구가 잘 검토를 해서 하나하나 경전을 편찬을 했다 이거요. 이럴 때 초안을 낸 아난다존자가 부처님의 말씀을 회상하면서 저는 이렇게 들었습니다. 이렇게 시작을 했기 때문에 맨 앞에 뭐라고 나온다? 여시아문으로 시작이 된다. 이런 얘기요. 이와 같이 저는 들었사오니
一時한때에. 일시에. 그러니까 몇 년, 몇 월, 며칠, 몇 시에 이렇게 정확하게 써야 되는데. 그냥 시간을 정확하게 쓰지 않고 한때에 이렇게 썼어요. 이렇게 쓴 데는 보통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는 인도사람들은 시간에 대한 개념이 별로 없습니다. 요즘 가서 있어도 시간에 대한 관념이 별로 없어요. 그래서 차를 대절해도 한 시간 타고 가서 3시간 기다렸다가 한 시간 타고 오면, 차 탄 시간만 계산해서 값을 주면 돼요. 기다리는 건 값이 없습니다.
그다음에 사람들을 불러와서 일을 시킬 때도 한나절하고, 그다음 한나절 놀면, 한나절만 주면 돼요. 그런데 인도만 그런 게 아니라 우리나라도 옛날에 다 그랬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시간이 돈이다. 이래가지고 시간이 다 돈으로 계산되지만, 옛날에는 시간은 돈이 아니었습니다. 공기가 돈이 안 되죠. 흘러가는 물도 옛날엔 돈이었어요? 아니었어요? 아니었죠. 대동강 물 팔아먹는다고 봉이 김선달이라고 대사기꾼 취급을 하는데. 요즘은 사기꾼이 하도 많으니까. 대동강 물만 팔아먹는 게 아니라. 흘러가는 시냇물도 다 팔아먹죠. 시대가 많이 바뀌었죠. 그런 연유가 있구요.
또 하나는 시간이라고 하는 것은요. 우리가 여기 살면 시간이 다 똑같다고 생각하지마는, 사실은 시간은 우리가 정한 거에요. 여기에 지금 낮 11시, 4시, 하지마는 지금 미국은 밤 10시란 말이오. 뉴욕은. 인도는 지금 아침 한 8시쯤 됐어요. 우리보다 3시간 반이 늦으니까. 시간은 사람들이 사는 데 따라 다 같습니까? 다릅니까? 달라. 지구 안에서도 다 다르죠. 그런데 지구 밖에까지 생각하면 어떠냐? 엄청나게 다릅니다.
그런데 옛날에 부처님 당시에 사람들은 사람이 인도에만 지구 안에만 산다. 이렇게 생각했어요? 저 넓은 우주에도 많이 산다고 생각했어요? 저 넓은 우주에도 산다고 생각했죠. 그러니까 인간계 위에 사천왕세계, 그다음에 도리천세계가 천상도 많이 있잖아. 그죠? 저 타방에 또 다른 부처님이 계신다 이러잖아. 그러니까 법문을 듣는 사람을 이 소승불교에서는 고 자리에 앉아 있는 눈에 보이는 비구스님만 듣는다. 이렇게 생각했는데.
대승불교인들은 그런 생각을 하지 않고. 바로 눈앞에 보이는 사람뿐만 아니라. 또 눈앞에 보이는 일반 신도들뿐만 아니라. 보이지 않는 저 천상의 사람들, 신들, 귀신들까지 다 듣는다. 이렇게 생각을 했어요. 그러기 때문에 시간을 어느 때에 어느 때에 이렇게 표시를 해야지. 몇 월 며칠 몇 시에 하면은 이 사람한테는 맞는데 저 사람한테는 안 맞고. 이렇게 생각을 해서 여기서 일시에 라고 썼다. 이렇게 보는 견해가 있다 이 말이오. 한때에 아무튼, 시간표시는 하기는 했어요? 안 했어요? 했죠.
佛불이. 부처님이. 부처님을 부르는 명호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불이라는 뜻은 붓다라는 뜻이고, 붓다라는 뜻은 깨달았다. 이런 뜻이에요. 깨달으신 분은 어떠냐? 온 바도 없고 간 바도 없다. 그 분은 생도 아니고 멸도 아닌. 즉 깨달으면 생도 아니고 멸도 아닌 세계니까, 생멸이 없는 세계니까, 구정이 없는 세계니까, 깨끗하고 더러운 것이 있으면 버리기도 하고 취하기도 해야 되는데. 깨끗하고 더러운 게 없으면 버릴 것도 없고 취할 것도 없으니까 한 바가 없죠.
아무 할 바가 없는, 한 바가 없는 그런 분을 우리가 부처라 그래. 그래서 아무 한 바가 없다. 올 것도 없고, 갈 것도 없고. 여여히 오고, 여여히 갔다. 이래서 如來여래다 이렇게 부릅니다. 첫째 여래다. 두 번째는 應供응공이다. 應供응공. 그 분은 모든 욕망이 사라져 버렸다. 바라는 바가 없다. 어떤 행을 해도 그 행의 뒤에 흔적이 남지 않는다. 이것을 무위의 행이라 이래. 함이 없는 행이다. 이 말이오. 그러니 그 분은 대중들로부터 아무리 많은 보시를 받아도 빛이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것을 다 중생에게 회향하기 때문에. 그래서 그분은 마땅히 공양을 받을 자격이 있다. 그래서 응공이다 이렇게 말해요. 응당히 공양 받을 자격이 있는 분이다. 正遍知정변지라 그래. 정 (바를 正정) 변(두루 遍변)자 에요. 정변지 또는 정등각이라고 번역해요. 그 분은 바르고 보편적인 즉, 보편타당한 진리를 깨달으신 분이다. 그래서 정변지 이렇게 말해요. 즉,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증득한 분이다. 이런 뜻이에요. 정변지.
明行足명행족. 이론과 실천이 다 구족 하신 분이다. 우리가 보통 말 할 때, 이론은 있는데 실천이 없다. 실천은 있는데 이론이 없다. 이렇게 말하죠? 이론과 실천이, 앎과 행이, 아는 것과 행하는 것이 뭐하다? 다 갖추어져 있다. 그래서 명행족 이렇게 말해. 善逝선서. 그 분은 고해의 바다를 훌쩍 뛰어넘어서 저 세계로 가버렸다. 즉, 열반을 증득했다. 이렇게 해서 선서 이렇게 말해. 그 분은 이 중생의 괴로움을 하나도 남기지 않고 다 알고 다 구제해 줄 그런 능력이 있으신 분이다.
이 세상사를 훤하게 하나도 빠짐없이 다 안다. 해서 世間解세간해 이래. 세간해. 調御丈夫조어장부. 그분은 중생의 갖가지 삿된 마음을 다 항복 받을 수 있는 능력이 있다. 마치 조련사가 말을 잘 다루듯이. 그렇게 중생의 마음을 잘 조복시킬 수 있는 그런 능력이 있다고 해서 조어장부라 그래. 조어장부. 그 분은 사람뿐만 아니라 신들의 스승이다. 신과 인간의 스승이시다 해서 天人師천인사라 그래. 천인사. 신과 인간의 스승이다. 그분은 깨달은신 분이다 해서 佛불. 그 분은 이 세상에서 가장 존귀하신 분이다 해서 世尊세존. 이렇게 말해.
그러니까 그분이 갖고 있는 그 특징, 그 인격을 한마디로 해서는 다 나타낼 수가 없다. 그냥 깨달은 자. 이렇게 해서 그걸 다 표현할 수가 없단 말이오. 그래서 그분은 이런 분이다. 이런 분이다. 이런 분이다 하는 것을 우리가 여래 10호라 이래. 여래 10호. 여래 10호가 뭐라고요? 첫 번째가? 여래, 응공, 정변지, 명행족, 선서, 세간해, 조어장부, 천인사, 불, 세존. 그 가운데 여기 뭐라고 쓰여져 있어요? 불이라고 쓰여져 있죠. 금강경에서는 불이라고 쓰거나 세존이라고 쓰여지거나, 여래라고 쓰여지거나 이렇게 한 3종류 정도가 보일 겁니다. 아시겠습니까? 불이라고 나오든, 여래라고 나오든, 세존이라고 나오든, 다른 건 뭐 안 나오고. 10호 중에 3가지가 아마 많이 나올 거요.
佛불이, 부처님께서.
在재. 머무르다 이 말이죠?
舍衛國祇樹給孤獨園재사위국기수국고독원. 사위국, 사위성입니다. 코살라국의 서울이 사위성이에요. 사위성을 가지고 그냥 사위국이다. 이렇게 말했는데. 이런 표현법은 요즘도 많이 씁니다. 미국을 미국이라 안 그러고 뭐로 대칭 합니까? 워싱턴 당국자는, 워싱턴에서는 이렇게 하고 치우죠. 한국을 뭐로 대치한다? 서울로, 러시아를 모스크바로, 일본을 동경으로, 영국을 런던으로, 프랑스를 파리고, 독일을 베를린으로. 이렇게 그냥 써버린다. 이 말이오.
그러니까 그 나라의 수도를 가지고 그 나라의 서울을 대칭할 때가 있다. 대신할 때가 있다 이 말이오. 그래서 여기서 사위국이라고 하니까. 나라 이름이 사위국이 아니고. 원래 나라 이름은 코살라국의 사위성입니다. 무슨 말인지 이해하시겠어요? 인도말로는 슈라바스티입니다. 슈라바스티. 슈라바스티에 기수급고독원. 기수급고독원이라는것이 뭐냐? 이 기수라는 것은 기타태자의 숲이라는 뜻이에요. 기타태자의 숲이다.
이 기타태자의 인도의 원언은. 제다. 숲은 바나, 그러니까 기타태자의 숲을 인도말로 하면 뭐라고요? 제다바나에요. 제다바나. 급고독이라는 것은 외로운 이를 돕는다. 이런 뜻이에요. 한문을 그대로 번역하면. 외로운 이를 돕는다를 인도말로 뭐라 하냐 하면 아난드핀디카입니다. 아난드핀디카, 자선사업가 이런 얘기에요. 그러니까 이 급고독이라는 것은 사람 이름이라기보다는 사람 별명이에요. 그 원래 이름은 뭐냐? 수닷타입니다. 수닷타. 수잣타가 아니고 수닷타입니다. 수잣타는 처녀보살의 이름이죠.
부처님이 도를 이루기 전에 6년 고행 후에 쓰려져 있을 때 우유 죽을 갖다 준 사람이 수잣타고. 이 사람은 수닷타입니다. 수닷타는 장자. 큰 무역을 하는 부자이름이에요. 그 사람 별명이 급고독입니다. 아난드핀디카. 급고독이다. 즉, 자선사업가다 이런 얘기에요. 원이라는 것은 정원하고 쓸 때 원이죠. 제사위국. 사위국의 사위국의 기수급고독원에 계시사. 이렇게 되는 거요.
즉, 사위성에 기수국고독원이라고 하는 절에 계실 때 이 말이에요, 그럼 기수국고독원이라는 절이 어떤 절인가? 그걸 한마디로 말하면 제다바나. 우리말로 하면 기원정사다. 기수국고독원의 첫 자하고 끝 자만 따서 기원이 되죠? 그래서 기원정사다 이렇게 불러요. 이 절은 부처님께서 도를 이루시고. 성도 후 3년 째 되던 해에 지어진 절입니다. 부처님께서 그때 빔비세라왕의 귀의를 받고 왕사성 밖에 중림정사를 최초로 창건하시고, 중림정사에 계실 때 그때 이 코살라국의 사위성에 살고 있는 수닷타 장자라고 하는 사람이 이 왕사성에 무역을 하러 왔어요. 즉 장사를 하러 왔다 이거야.
그러다가 부처님을 뵙고 너무너무 그 말씀이 좋고, 그 말씀을 듣고 깨달아서 그 기쁨에 의해서 부처님을 자기 나라로 초청을 하게 된다. 그래서 부처님과 제자들이 오시는 것을 생각해서 그분들이 머무를 처소를 마련하려고 땅을 물색했다. 이럴 때, 성으로부터 멀지도 않고, 성으로부터 가깝지도 않고, 성으로부터 멀면 왜 안 되느냐? 탁발하러 가기가 불편하고, 성으로부터 너무 가까우면 어떻게 되느냐? 소란하다. 이 말이야. 멀지도 않고 가깝지도 않은 조용한 숲을 물색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 숲은 이 나라에 왕자 것이었습니다. 제다라고 하는 왕자. 한문으로 고쳐서 우리식으로 읽으면 기타라고 하는 왕자 것이었어요. 그래서 가서 팔으라고 했는데 이 사람이 팔지를 않겠다고 하니까. 3번을 간청을 했어요. 그래도 거절을 하니까 값을 얼마든지 주겠다고 제안을 했어요. 그러니 왕자가 안 팔 심산으로 금화를 가지고 와서 그 땅에다 깔아라. 그러면 팔겠다. 그건 사실은 불가능한 일이었어요.
그런데 이미 가격이 흥정이 되었기 때문에. 수닷타 장자는 집에 가서 모든 금화를 가지고 와서 땅에다 깔기 시작했어요. 이런 시도를 한다는 것만 봐도 벌써 부자라는 것을 알 수 있어요? 아니요? 엄청난 부자라는 것을 알 수 있죠. 그러나 아무리 부자라도 당시의 부자가 금돈으로 땅을 깐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죠. 돈을 벌기 위해서 장사를 하는 사람이 도대체 부처님 말씀을 듣고 어떻게 심성이 변했기에. 부처님을 위해서 그 많은 돈을 하나도 남김없이 다 쓸려고 그러겠느냐? 그러나 어림도 없었어요.
그런데 그는 계속 남한테 돈을 꿔서라도 그럴 깔겠다고 하니까 소문이 자자하게 났겠죠. 그래서 기타태자가 이곳에 와 봤어요. 정말 그러고 있는 거요. 그래서 당신 왜 그렇소? 하고 물어봤더니. 바로 붓다를 초대하기 위해서 그렇다는 거요. 그래서 붓다가 어떤 분이오? 붓다는 이러 이런 분입니다. 그런 분이라면 저도 한 몫 거들겠습니다. 이렇게 해서 나머지 땅을 무상기증을 받았다. 이거요.
그곳에다가 수행자들이 머물 수 있는 처소를 간단하게 마련했다. 이것을, 이렇게 해서 생긴 절을 기원정사다 이렇게 말합니다. 인도사람들은 제다바나다. 이렇게 말하는 거요. 제다바나. 그러니까 기수라는 것은 기타태자의 숲이라는 뜻이고, 급고독이라는 것은 거기다 급고독장자, 수닷타장자가 절을 마련했다. 그래서 합해서 기수급고독원. 나중에는 기원정사다. 이렇게 부릅니다. 부처님께서 사위성의 기원정사에 계실 때에
與大比丘衆여대비구중 千二百五十人1250인. 與여는 (더불 與여)자요. 대비구라는 것은 큰 스님이라는 뜻이죠. 큰 스님들, 1250인과 丘구, 함께 계실 때. 더불어 계실 때. (더불 與여) 큰 스님들 1250인과 더불어 계실 때에 이 말이오. 이 1250명이 누굽니까? 큰 스님은 어떤 사람이 큰 스님이에요? 키가 큰 스님이 큰 스님이오? 몸무게가 많이 나가야 큰 스님이오? 눈이 커야 큰 스님이오? 아니죠? 교단에서 일찍 출가해서 승납이 오래된 사람들. 그래서 깨달음을 얻은 사람들을 이름하여 큰스님이다. 이렇게 말해요.
그래 큰 스님은 여러 의미가 있습니다. 큰 스님이다 할 때는 연세 드신 분을 지칭하는 노스님을 뜻 할 때가 있고, 큰 스님이라 하면 도력이 아주 높다 하는 의미도 있고. 큰 스님이라 할 때는 스승의 스승님을 부를 때 큰스님이라고 부릅니다. 아시겠어요? 여러분들이 스승을 부를 때는 스승님, 스님. 이러면 되는데. 그 스승님의 스승님을 부를 때는 어떻게 불러야 된다? 큰 스님 이렇게 부른단 말이오. 이게 막 혼재되어 있죠. 사용이.
여기서 이 큰 스님은 덕이 높은 스님. 절에 들어오신 지가 오래되신 스님. 깨달으신 분들. 이런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이 1250명이라는 것은 부처님께서 교진여동 5인과 야사친구 55인, 그리고 우루빈라가섭, 나제가섭, 가야가섭등 1000명. 그리고 사리부트라와 목갈리나 제자들 200명, 이러면 1260명이 되죠. 이분들은 부처님이 도를 이루시고 거의 1년 안 가까이 제자가 되신 분이기 때문에. 교단 안에서는 승납이 많은 분들이죠. 오래되신 분이기 때문에. 주로 1200대중 할 때는 이 사람을 상징하는 거다. 1250인과 더불어 계셨다.
爾時이시에. 이때에 이 말이오.
世尊食時着衣持鉢세존식시착의지발. 世尊세존이라고 나오죠. 부처님께서 食時식시, 식사 때가 됐다 이런 얘기요. 식사 때가 돼서. 着衣持鉢착의지발 옷을 착하고, 옷을 입으시고. 持鉢지발, 바루를 지니시고 이 말이오. 외출복을 입으시고 바루를 들고 이 말이에요.
入舍衛大城입사위대성. 그 사위성으로 들어갔다 이 말이오. 왜 들어갔을까요? 밥을 얻어 드시러 갔다 이 말이오. 밥때가 됐다 하는데 언제가 밥때일까? 밥 먹을 때가 밥때라고요? 맞아요. 나라마다 다 밥 먹는 시간이 서로 다르죠? 그죠?
그러니까 마을 사람들이 밥을 먹을 때가 바로 식시입니다. 마을 사람들이 밥을 먹을 때에 밥을 얻으러 가야 밥을 얻을 수가 있다 이 말이오. 자 아직도 밥이 덜 됐는데 밥을 달라 하면 욕 얻어먹죠. 아직 식사 때도 안됐는데 어디 와서 아침부처 거지가. 이렇게 욕 얻어먹어요. 밥 다 치우고 나서 가면 어때요? 또 욕 얻어먹어요. 얻어먹는 주제에 일찍 일찍 오지 뭐 한다고 늦게 왔어. 이런단 말이오. 그러니까 얻어먹는 사람은 언제 딱 맞춰 와야 되나? 상대가 밥을 먹고 있는 중에 가야 됩니다. 한국 사람은 먹고 있는 중에는 어쨌든 한 숟가락이라도 나눠요? 안 나눠요? 나누지.
이 한국만 이런 게 아니라 동양에서는 다 그렇단 말이오. 얻어먹기도 쉽고. 불평도 안 듣고. 제일 좋은 때가 바로 밥을 먹고 있을 때다. 대중이 밥을 먹고 있을 고 때에 탁! 걸식하러 가야 된다 이 말이오.
乞食於其城中걸식어기성중. 그 성 가운데서 걸식을 했다. 밥을 빌었다 이 말이오. 사위대성에 들어가셔서 그 성 가운데서 밥을 빌었다 이 말이오. 밥을 어떻게 빌었느냐?
次第乞已차제걸이에서. 차례로 밥 빌리기를 마치시고 이 말이오. 차례로 밥을 빌리는 것을 마치다. 차제로 밥을 빌리다. 차제걸이하다 이게 무슨 말이냐? 밥을 빌어먹는 사람에게도 규칙이 있고, 원칙이 있습니다. 아시겠어요? 원칙 어기고 빌어먹으면 안 돼요. 어떤 원칙이 있느냐? 달라고 할 때, 첫째 달라고 해서 안 된다. 뭘 달라고 해서는 안 된다. 주는 대로 받아야 됩니다. 어떻게 해야 된다고요? 주는 대로 받아야 되. 이것은 맛이 있느니, 이것은 맛이 없느니. 영양가가 있느니, 영양가가 없느니, 짜니 싱겁니, 이런 얘기 하면 안 돼. 주는 대로 받아야 돼. 주는 것만 갖고도 감사하게 생각해야 돼. 주는 대로 받아야 되고. 정말 고맙게 생각해야 돼.
그런데 몇 집까지 갈 수 있느냐 이거야. 밥을 못 빌으면 계속 가야 되겠죠. 그런데 7집까지만 가도록 했어요. 그래서 그걸 7가식이라 그래. 7집을 얻어먹는다 이 거야. 왜 7집을 가라 그랬을까? 한 집에 가서 다 한 끼 다 먹으려면 사람들 양식이 없어지겠죠? 7집을 다녀서 한 끼의 분량을 채우면 우리말에도 十匙一飯십시일반이라는 말이 있잖아. 그죠? 한 숟가락씩만 내도 어때요? 한 사람의 식사량이 된단 말이오.
7집을 반드시 가야 되냐? 아니에요. 한집을 가서 충분히 얻으면 갈 필요가 없죠. 그러나 7집을 넘었는데도 충분히 못 얻었거나 하나도 못 얻었으면 어떻게 한다? 그냥 돌아와야 돼. 왜 그러냐? 사람들이 음식을 두고도 안 줄 때는 나에 대해서 비난하는 마음이 있다 이거야. 내 스스로 깊이 반성을 해서 비난하는 마음이 그분들에서 없어지도록 자기수행을 해야 된다.
두 번째는 그 사람이 정말 없어서 못 줄 때는 어떻게 하느냐? 그 들도 굶고 있으니 어때요? 나도 굶어야 되요. 이런 두 가지 이유로 7집만 빌어라. 이렇게 말했어요. 여기는 7집만 빌으라는 얘기가 없죠? 그러나 계율에 그렇게 돼 있어요. 차례로 밥 빌기를 마쳤다 하는데 어떻게 마치느냐? 충분히 빌었을 때 마치게 되겠죠? 못 빌어도 7집을 갔는데도 밥을 못 얻으면 어때요? 그날은 굶어야 된다.
還至本處환지본처. 본래의 자리로 돌아오셔서. 본래의 자리로 돌아온다는 것이 무슨 말이에요? 기원정사로 돌아왔다. 아무리 남의 집에 가서 밥을 얻어먹는 거렁뱅이라 하더라도 거지에요 부처에요? 부처지. 부처가 될 사람들이잖아. 그러니까 배고프다고 음식을 허겁지겁 먹는 게 아니다. 이 말이오. 여법하게 받아서 가지고 와서 둘러앉아서 나눠 먹는다. 이 말이오. 환지본처. 본래 자리로 돌아오셔서.
飯食訖收衣鉢반사흘수의발. 반사흘, 밥을 드시고. 밥을 드셨다 이 말이오. 밥을 다 드시고. 수의발, 의발을 옷과 발우를 거두다 이 말이오. 옷과 발우를 거둔다는 것은 외출할 때, 아까 옷을 입고 가셨거든요. 착의지발 그랬죠? 옷을 착하고 바루를 들고 나갔단 말이오. 그러니까 이번에는 거꾸로 옷을 개어놓고 바루도 씻어다 놔야 되겠죠.
洗足已세족이, 발을 씻으시고. 외출하고 오면 발이 지저분하죠? 맨발로 다니니까. 그러니까 참선을 하거나 뭘 하려고 하면은 발을 씻어야 된다. 그래서 세족이.
敷座而坐부좌이좌. 자리에 앉으셨다. 이 자리에 앉으셨다. 여기서는 소박하게 말했는데 다른 대승경전보면 다 어떻게 설명합니까? 부처님이 자리에 앉으셨다가 아니고 부처님께서 삼매에 드셨다. 이렇게 나와요. 그런데 여기는 아주 소박하게 부처님께서 자리에 앉으셨다.
如是我聞여시아문 一時일시 佛불 在舍衛國祈樹給孤獨園제사위기수급고독원 與大比丘衆여대비구중 千二百五十人천이백오십인 俱구 爾時이시 世尊세존 食時식시 着衣持鉢착의지발 入舍衛大城입사위대성 乞食於其城中걸식어기성중 次第乞已차제걸이 還至本處환제본처 飯食訖반사흘 收衣鉢수의발 世足已세족이 敷座而坐부좌이좌
자~ 이렇게 법회가 시작 될 어떤 배경이 지금 설명이 되고 있습니다.
제2. 선현기청분(善現起請分)_법륜스님
buddhastudy.egloos.com/3915047
善現起請分 선현이 일어나서 법문을 청하다 이런 뜻이에요. 여기서 선현이 누구냐? 수보리를 말합니다. 수보리가 자리에서 일어나서 부처님께 법을 청하는 장면을 기록해 놓은 게 선현기청분입니다.
時 때에. 때라는 건 어떤 때죠? 밥을 다 드시고 발을 씻고 다 자리에 앉아 있을 때입니다. 즉 명상에 잠겨 있을 때요.
長老須菩提 장로수보리. 장로라는 말은 원래 불교 용어에요. 기독교 용어가 아닙니다. 장로라는건 원로들이다. 이 말이오. 수보리는 부처님의 10대 제자죠? 그러니까 그 당시에 원로취급을 받았단 말이오. 장로 수보리가
在大衆中 대중 가운데 계셔서. 대중가운데 앉아 있다가 이 말이오.
卽從座起 자리를 좇아 일어났다. 그러니까 앉아 계시다가 일어났다. 이 말이오.
偏袒右肩 오른쪽 어깨를 드러내고
右膝着地 오른쪽 무릎을 땅에 대고.
合掌恭敬 두 손을 딱 모아서 부처님을 우러러 받들면서
而白佛言 부처님께 말씀하시되
希有世尊 희유하십니다. 거룩하십니다. 세존이시여.
如來 여래께서는
善護念諸菩薩 모든 보살을 염려하고 있다. 이거야. 잘 보호하고 염려하고 있으며
善付囑諸菩薩 모든 보살들에게 잘 부촉하고 있다. 무엇을 그렇게 하고 있다는 거요? 깨달음의 법을 이 말이죠. 때에 장로수보리가 대중가운데에서 일어나셔서 오른쪽 어깨를 드러내고 오른쪽 무릎을 땅에 붙이고, 손을 모아 합장하면서 부처님을 우러러 바라보면서 말씀을 여쭸다 이 말이야. 희유하십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는 모든 보살을 잘 염려하고 보호하고 있으며 모든 보살에게 바른 법을 잘 부촉하고 있다 이런 얘기요.
世尊善男子善女人 세존이시여 어떤 남자와 어떤 여인이
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발한, 낸 이 말이죠. 발한 사람은
應云何住 어떻게 그 마음을 머무르며
云何降伏其心 어떻게 그 마음을 항복 받나이까. 이랬어. 아뇩다라삼먁삼보리가 뭐라 그랬습니까? 무상정등각이라 그랬죠? 최고의 깨달음. 최고의 깨달음을 얻겠다고 마음을 낸 선남자 선여인이 말이야 즉, 깨달음을 얻겠다. 붓다가 되겠다. 이렇게 발심을 한 선남자 선여인은 그 마음을 어떻게 머물러야 하며, 그 마음을 어떻게 항복 받아야 하느냐? 이런 질문이에요. 어떻게 머무른다. 이 말은 어떻게 가지느냐? 어떻게 항복 받느냐? 이 말은 어떻게 다스리느냐 이 말이오. 그 번뇌 망상을 어떻게 다스려야 하고, 어떻게 한결같이 유지되도록 그것을 가져야 하느냐? 이걸 묻는 거요.
佛言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되
善哉善哉 착하고 착하도다 이 말이오. 착하고 착하구나.
須菩提 如汝所說 수보리야 네가 설한 바와 같아서. (같을 如여, 너 汝여). 네가 설한 바와 같아서. 설한 바 소설이란 말이오.
如來善護念諸菩薩 여래는 모든 보살을 잘 염려하고 생각하고 있으며
善付囑諸菩薩 모든 보살들에게 잘 부촉하고 있다
汝今諦請 네가 지금 청하는 바와 같이
當爲汝說 마땅히 너를 위하여 설하리라. 네가 지금 물으니 거기에 대해서 내가 법을 설하리라 이런 얘기요.
善男子善女人이
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한이는 최상의 깨달음을 얻겠다고 마음을 낸 선남자 선여인은, 선남자선여인 발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한마디로 말하면 뭐가 될까? 보살이 됩니다. 어떤 남자나 어떤 여자가 최상의 깨달음을 얻겠다고 마음을 내면 그걸 뭐라고 한다? 보살이라고 한단 말이오. 발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좀 줄이면 발보리심, 더 줄이면 발심. 아시겠어요? 발심. 마음을 냈다. 어떤 마음을? 깨닫겠다고. 어떤 깨달음을? 최상의 깨달음을 얻겠다고 마음을 냈다. 이거를 가장 줄여서 말하면 발심. 조금도 더 늘이면 발보리심. 정확하게 말하면 발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 선남자 선여인이 발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를 하면 이거를 이런 사람을 뭐라고 한다? 보디사트바, 보리살타라고 한단 말이오. 그러니까 한마디로 말하면 보살은 이 말이죠.
應如是住 응당히 이와 같이 머무르며. 뭘? 마음을 이 말이죠. 이와 같이 머무른다는 것은 마음을 이와 같이 가지며.
如是降伏其心 이와 같이 그 마음을 항복 받아라. 즉 그 마음을 다스려라 이 말이죠. 여기 지금 답이 나왔어요? 안 나왔어요? 안 나오고. 여시 했죠. 이와 같이 하고 이와 같이를 뒤로 옮겨 버렸죠. 이와 같이 그 마음을 다스리고 그 마음을 항복 받아라. 그러자 수보리가
唯然世尊 그렇게 하겠습니다. 세존이시여
願樂欲聞 원하옵나니 즐거이 듣기를 바랍니다. 기꺼이 듣겠습니다. 들을 마음이 100% 꽉 차 있다 이 말이오. 말해도 듣기 싫어서 돌아앉아 있는 게 아니다 이거야. 비 오는 날 바가지 거꾸로 쥐고 있는 게 아니고, 입이란 입은 다 벌리고 비 오는 날 하늘 쳐다보고 있다 이 말이죠. 즐거이 즐거이 듣기를 원한다. 이것을 원요욕문이다 이렇게 말해요.
자 이렇게 해서 이 법회. 즉 금강경의 본론이 들어가기 시작한다. 그러니까 금강경의 본론이 제3분이 뭡니까? 제목이? 대승정종분이죠. 대승불교의 가장 바르고 으뜸이 되는 것이 들어있는 내용이다. 이 말이오. 그래서 대승정종분이다. 거기서부터 정종분이 들어간다. 이 말이오. 그럼 앞에 있는 이 두 분은 뭐요? 소위 서분에 속한다. 이 말이오. 아시겠어요? 이 경이 설해진 배경. 즉 법문이 설해지는 장소와 시간과 상황에 대한 배경, 그리고 법문을 청하는 배경. 이런 게 1, 2분에 설해져 있고. 제3분부터 이제 본격적인 문답에 들어가게 된다.
그런데 여기서 가만히 보면 조금 이상한 점을 발견하지 못합니까? 수보리는 오늘 아침 부처님하고 처음 만났습니까? 전에부터 부처님 모시고 살았습니까? 부처님 모시고 살았죠? 그런데 왜 밥 잘 먹고 휴식시간에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 부처님을 찬탄하고 공경하고 그래요? 위대하셔라. 세존이시여. 이런단 말이오. 갑자기 또 그러니까 부처님이 또 야 야 그런 말 하지 마라. 이래야 될 텐데. 그래그래 네 말이 맞다. 또 이런단 말이오. 칭찬하면 겸손할 줄 알아야지.
부처님이 수보리 말에 부화뇌동해서 또 잘난 척해서 되겠어요? 그런데 그렇게 쓰여져 있죠. 왜? 이럴까? 이 말이오. 그래서 이 1, 2분은 금강경이 설해진 배경이다. 본론이 아니고 서론으로서 배경이다. 이래 볼 수도 있는데. 글자의 기준에서 보면 이렇게 볼 수 있고. 깨달음의 눈으로 보면 어떠냐? 선적 관점에서 보면 어떠냐? 뒤에 거는 다 사실은 허드레소리고, 요지는 어디에 들어있다? 이 1분에 들어있다 이 말이오.
그러니 그게 뭐겠느냐? 금강경 좀 읽었다. 이러면 선방에서 조실스님이 그리 묻는단 말이오. 아시겠어요? 1분에 들어있는데, 1분에 있는 어느 내용인가? 어느 글자인가? 이리 묻는단 말이오. 숙제에요 이게. 수보리는 출가한 지가 이미 오래됐어요. 늘 부처님 모시고 같이 살았죠. 부처님 법문을 여러분들이 저한테 얘기 듣듯이 이보다 더 좋은 법문을 매일매일 들었단 말이오. 들으면서 부처님에 대한 존경심이 있어요? 없어요? 있겠죠. 늘 부처님을 존경하고 늘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바르게 살아왔단 말이오.
아무리 바쁘더라도 법문 시간엔 와서 법문을 들었단 말이오. 그래서 자기는 참 많이 깨달았다. 이렇게 생각했단 말이오. 왜? 아라한을 증득을 했으니까. 그런데 오늘 아침에 오늘 아침에 문득 크게 깨달았어.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도 깨닫지 못했던, 그 어떤 것을 오늘 아침에 수보리는 크게 눈이 확 뜨였단 말이오. 그래서 너무너무 기뻐서 그 깨달음의 기쁨을 부처님한테 토해냈다 이 말이오. 그랬더니 부처님께서 수보리가 뭔가 크게 깨달은 줄을 아셨단 말이오. 그래서 그 수보리의 그 깨달음에 대해서 호응을 해 준 거요. 응답해 준 거란 말이오. 그게 지금 여기 들어있는 거요.
그럼 1분에 뭐 있어요? 자~ 눈을 감고 가만히 한 번 그려보세요. 자~ 숲이 있습니다. 무슨 숲이라고요? 제다바나. 제다바나라고 하는 숲이 있어. 그 숲에 이 나무 밑에는 부처님이 앉아 계시고, 저 나무 밑에는 수보리가 있고, 그 옆에 나무 밑에는 아난다가 있고, 그 옆에 나무 밑에는 사리부트라가 있고, 그 옆에는 마하가섭이 있고, 그 옆에는 목련존자가 있고. 몇 명이나 이렇게 산다? 1,250명이 큰 숲에 이렇게 살고 있단 말이오. 조용하게.
그런데 때가 됐어. 무슨 때가 됐다? 밥때가 됐어. 그러니까 부처님께서 자리에서 일어나서는 가사를 수 했다 이 말이오. 인도에는 이 보통 웃통을 벗고 있습니다. 웃통을 벗고 외출을 나갈 수가 있어요? 없어요? 없지. 그러니까 그 하나로 되어 있어요. 인도가사는. 그걸 위에다 걸쳤다 이 말이오. 이게 옷을 입으시고 이 말은 가사를 수하시고 이 말이오. 그리고는 바루를 드시고 이 말은 깡통을 들고 이 말이에요. 밥 얻어먹으러 가려면 벌거벗고 갈 수는 없죠.
떨어졌든 말든 입고 가야 되고. 얻어먹으러 가는 주제에 빈손으로 가면 안 되지. 얻어먹을 그릇은 가져가야 된단 말이오. 그걸 들고는 죽~ 성내로 들어가니. 부처님이 앞에 서면 그다음에 아난다가 서고, 그다음에 수보리가 서고. 그다음에 아니룻다가 서고, 사리붓드라가 서고. 죽~ 해서 기러기가 날아가면 줄즐이 줄을 서서 날아가죠. 그러듯이 죽~ 줄을 서서 성내로 들어간단 말이오. 들어가면 앞에 간 사람이 저 멀리까지 갑니다. 제일 끝까지. 먼저 간 사람이.
먼저 간 사람이 제일 끝에 가서 골목으로 들어가면은 한 사람은 옆으로, 한 사람은 이 골목으로… 맨 끝에 온 사람은 제일 가까운 골목에 들어가겠죠? 이렇게 해서 밥을 딱 빈단 말이오. 집집마다 다 집 앞에 가서 가만히 서 있습니다. 밥 주세요 이렇게 말해요? 안 해요? 안 해요. 밥 먹는 옆에 가서 뚝 서 있단 말이오. 그러면 먹는 사람이 주고 싶으면 주고, 주기 싫으면 안 줘. 주는 사람은 감사합니다. 안 주면 안 고맙습니다. 이래하는 게 아니라. 주든지 주지 않든지 그건 누구 인생이다? 그들의 인생이다. 간섭하지 않는다. 뭘 주든지 그것은 그들의 마음이죠. 뭘 달라고 말하지 않는다. 분별하지 않고 무심하게 있습니다.
줄려면 주고 말려면 말아라. 건방지게 있는 게 아니고. 정말 다소곳이. 그러나 얻으려는 욕망 없이 서 있어야 되요. 이게 뭘 주나 해서 분별을 하고, 보고 이러면 이게 거지가 되는 거요. 껍데기는 거지지만 속은 거지가 아니에요. 붓다란 말이오. 부처님의 제자들이니까 새끼 부처잖아. 그죠? 딱 서 있는단 말이오. 그러면 한 숟가락도 주고, 안주기도 하고, 한 그릇도 주고 하면 그거 하루 먹을 치, 한 번 먹을 치가 될 때까지 받아서 다시 쪼옥 돌아오면 어떻게 될까? 나중에 들어간 사람이 빨리 나오겠죠. 조로록 간단 말이오.
그러니까 여러분들도 요대로 앉으면 저기 신발 딱 벗고 들어와서 제일 저쪽부터 끝부터 들어오는 순서대로 딱딱딱딱 앉는 거요. 또 저쪽부터 짝짝짝짝 앉고. 그 신발을 벗을 때도 왼쪽부터 오른쪽으로 가며 쪽 벗어놔. 법회 끝나고 나갈 때도 어떻게 나가느냐? 저 끝부터 순서대로 나가면 신발 헷갈릴 일이 있어요? 없어요? 없어. 그런데 여러분들은 제일 먼저 들어 온 사람이 저 입구에 문 여는데 거기 떡 앉아 있어. 기둥 옆에. 앞으로 오라, 뒤로 가라. 마이크를 잡고 얘기를 해도 엉덩이를 눌러가지고 움직이지를 않고 이러면 안 돼요.
이것부터 붓다 이미 붓다를 닮는 게 아니란 말이오. 이게 공부요. 딱~ 가서. 그리고 고대로 돌아온단 말이오. 그러고 나무 밑에 돌아와서는 둥그렇게 앉아서는 밥을 먹는데. 이 똑같이 얻으러 가도 많이 얻어 온 사람도 있고 적게 얻어 온 사람도 있겠죠. 또 환자 같은 경우는 못 가는 경우도 있고. 그럼 다 다시 분배를 해. 거지의 가장 자랑스러운 점이 뭔지 알아요? 같이 나눠 먹는 거요. 같이 나눠 먹을 줄을 모르는 거는 거지 그룹에서 쫓겨납니다. 감옥 안에서도 있으면 그래요.
바깥에서 물건이 들어오면 자기 거라고 자기가 먹고 그리 안 해요. 그러면 거기서 쫓겨나요. 누가 넣어줬든 관계없이 똑같이 나눠 먹어. 그런 걸 제가 가만히 보면 죄인은 전부 밖에 있는 거 같애. 그러고 또 그 안에 들어오면 다 그렇게 해요. 억지로 겁이나 그렇게 하는 게 아니고. 다 그런 마음이 들어. 그런데 밖에만 나오면 눈이 휘가닥 뒤비져 버려. 왜 그런지 모르겠어. 그래 딱 나눠 먹고 말이오. 바루를 씻어서, 내일 또 얻어먹으러 가려면 깨끗이 씻어 놔야지. 안 그러면 파리 끓고 그러잖아. 그죠? 음식은 절대 내일 먹을 거까지 저장하면 돼요? 안 돼요? 안 돼. 딱 오늘 먹을 거만 끝내야 돼. 딱 씻어 바루 덮어놓고.
옷 없는데 자꾸 입고 있으면 떨어져요? 안 떨어져요? 떨어지지. 거 벗어가지고 딱 얹어 놓고. 숲에 있을 때는 누가 사람을 만나는 게 아니니까. 다 이렇게 벗고, 밑에 하나만 입고. 딱~ 앉아 발 씻고 와서 자리에 앉아 있단 말이오. 부좌이좌 여기는 이렇게 설명했지마는 나중에 대승경전에 가면 삼매에 들었다. 이러는데 부좌이좌가 훨씬 좋죠? 자연스럽게 자리에 앉았단 말이오. 밥 먹고 난 뒤에 자연스럽게 먹고 나서 앉아 조용한데. 수보리가 벌떡 일어났단 말이오.
그런데 오늘 수보리가 부처님과 같이 탁발하고 또 와서 밥 먹고 이 자리에 앉아있으면서 뭘 갑자기 생각이 들었느냐? 법의 진리가 그 부처님의 일거수일투족에 그대로 다 있다는 것을 깨달은 거요. 법이 따로 있는 게 아니고 그 밥 빌 때, 그러니까 일어나서 때에 밥 그릇 들고 옷 입고 걸어갈 때는 걸어가는 거에. 밥 빌 때는 밥 비는 거에. 돌아올 때는 돌아오는 거에. 나눌 때는 나누는 거에. 먹을 때는 먹는 거에. 먹고 나서는 치우는 거에. 끝나고 나서는 앉는 거에.
그 하나하나에 그대로 여래의 무상심심미묘법문이 다 들어있는 거를 오늘 확연히 깨쳐버렸어. 또 하나는 그분의 그런 삶이 자신의 그런 자유로운 삶뿐만이 아니고. 미래에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 수행해 갈 수많은 수행자들을 부모가 어린애 돌보듯이 다 돌보고. 부모가 어린애들에게 모범이 되듯이 다 그렇게 미래의 수행자들을 염려해서 어떤 모범을 보여주고 있다. 그걸 깨달은 거에요. 부처님은 아까도 얘기했지만, 여래, 응공, 정변지, 명행족, 선서, 세간해, 무상사, 조어장부, 천인사, 불, 세존이시잖아, 그죠? 그러니까 무엇을 받은들 업이 됩니까? 안됩니까? 안되지.
무엇을 드신들, 어디에 찬들. 깨달음을 얻기 전에는 .행한다고 그렇게 고행을 했다 하더라도 깨달음을 얻고 난 뒤에는 큰 나라의 왕들이 다 부처님의 제자죠? 그 돈 많은 신도들이 부처님의 제자죠. 또 출가한 스님들도 주위에 1,200명이나 같이 살죠. 그런데도 왜 손수 밥을 얻으러 다니고 얻어서 먹고 그럴까? 남이 얻어다 준 거 먹을 수도 있고. 또 신도들이 서로 오라고 그러는데 가서 대접받고 먹을 수도 있고, 좋은 옷 서로 갔다 주는데 입을 수도 있고, 좋은 집 주는데 거기가 잘 수도 있는데.
깨닫기 전에는 수행한다고 그렇지만 깨닫고 난 후에는 뭘 해도 왕보다도 더한 걸 가져도 하나도 잘못된 게 안 되는데. 누리고도 남을 만한 자격이 있어요? 없어요? 있는데. 왜 그렇게 살았었겠느냐 이거야. 뭐 때문에? 여러분도 잘살기 위해서 조금 고생하는 거 이해가 되요? 안돼요? 이해가 되지. 그런데 깨달음을 얻었는데 천하를 다 얻은 뒤에도 그렇게 산단 말이야. 그것이 바로 미래의 중생들에게 미래의 보살들에게 바른 법이 무엇인지를 법을 부촉하는 거요 지금. 법을 전하는 거다. 이 말이오.
그러니까 그 법 전하는 도구가 딱 두 가지죠. 다 떨어진 옷 하나 하고 그거 밥 얻어먹는 깡통하고 두 개를 법의 징표로 정한단 말이오. 전법에서. 무슨 말인지 아시겠어요? 이게 뭐요? 의발이란 말이오. 의발. 의발이란 말 들어보셨죠. 의발을 전한다. 이러잖아. 어떻게 살아야 되느냐? 이게 딱 핵심이란 말이오. 그 마음을 그러니까 거기 염려하고 보호하며. 그러니까 조금이라도 수행자들이 잘못되지 않도록 염려하면 보호하면 바른 법을 부촉한다. 이거요.
그런데 수보리가 오늘 아침에 그걸 탁 느꼈단 말이오. 그러니 그 부처님에 대한 존경심이 옛날에도 존경했지마는 그 말씀을 듣고 바르게 일러주는 거기에 존경했는데. 오늘은 완전히 그 일거수일투족, 시시때때로 바로 그분께서 우러나오는 중생에 대한 한량없는 자비와 그런 공덕을 느꼈단 말이오. 내가 말을 너무하면 숙제가 안되기 때문에 이만큼 하려고 그래요. 그래서 자리에서 일어나서 부처님을 세 바퀴 돌고 오른쪽 어깨를 드러내고, 인도에서는 최고의 존경 표시입니다.
그다음에 오른쪽 무릎을 땅에 꿇고, 부처님을 우러러봤다 이거요. 이게 뭐다? 합장공경이다. 편단우견 우슬착지 합장공경 이 말이오. 사실 여기 앞에 부처님을 세 바퀴 돌고 이것도 있어야 되는데. 이건 빠졌죠? 옷을 오른쪽 어깨를 드러내고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모아 부처님을 우러러보면서 공경이라는 것은 자기를 낮추고 부처님을 높이 받드는 마음이에요. 그러면서 뭐라 그랬어요? 희유세존이다. 희유합니다. 세존이시여. 이건 참으로 불가사의하고, 이해하기 어렵고, 그런 일이다. 이거요. 이건 정말 거룩한 일이다.
부처님께서는 저 미래의 수행자들. 깨달음을 얻겠다고 마음을 낸 선남자 선여인들, 발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발한 그 선남자 선여인들, 그 보살들, 잘 염려하고 보호하며 바른 법을 전해주고 있다. 그러니까 듣고. “야야 너 갑자기 뚱딴지같이 왜 그러냐? 밥 잘 먹고.” 이렇게 얘기를 해야 될 텐데. 선재선재라, 착하고 착하구나. 수보리야. 네가 말한 그대로다. 부처님도 아양 떠는 것을 좋아하나? 사실이 그렇다. 이거요. 사실이. 칭찬이 아니라 정말 그렇다.
그러니까 벌써 수보리의 그 얼굴에 도는 밝은 기운을 보고 부처님은 수보리가 알았구나. 뭘 알았구나, 이미 짐작했겠죠? 그러니 여기에 응답이란 말이오. 희유하십니다. 세존이시여. 하는 데 대해서 응답이 뭐다? 선재선재라. 연꽃을 한 송이 탁 드니까 빙그레 웃었다 이런 거와 같은 거란 말이오. 사실 이게. 선재선재라. 여여소설 네가 말한 것과 같다. 이 말이오. 그렇다. 인가해 준거죠. 네가 안 것과 같다. 이게 첫 번째요. 자 자리에서 일어나서 부처님께 합장공경할 때 이미 부처님은 알았어? 몰랐어? 알았지.
수보리의 마음이 벌써 탁 터질 때 부처님은 알았고. 수보리가 와서 부처님을 세 바퀴 돌고, 오른쪽 어깨를 드러내고, 무릎을 꿇고, 합장 공경을 할 때, 이미 부처님은 말 없음 가운데 이미 알았다 이거야. 수보리는 그걸 표현을 했죠. 뭐라고? 희유하십니다라고. 표현을 했어. 이거 참으로 기적 같은 일이다. 이거요. 이건 도저히 이 세상에는 있을 수가 없는 일이다. 그렇게 최고의 극찬을 한 거요. 그것은 어떤 허풍이 아니라, 그가 깨달음을 뭐라고 표현할 수가 없어서 그렇게 썼단 말이오. 부처님께서는 다 알으시죠. 그 마음을. 선재선재라.
부처님께서는 미래의 수행자들을 위해서 그들을 보호하고 바른 법을 일러주시고 계십니다. 그러니까 부처님께서 뭐라 그랬어? 여여소설. 네가 말한 대로다. 그렇다. 여기 응답이 왔죠. 수보리는 미래의 중생들을 위해서 나는 이렇게 알았어요? 몰랐어요? 알았고. 나는 이렇게 말 없음 가운데서 알았고. 부처님으로부터 또한 인가를 받았다. 이거요. 그러나 어리석은 중생들을 생각하거나 미래의 수행자들을 생각할 때 이렇게 넘어가서는 안 되겠죠?
그래서 수보리가 부처님께 질문하는 거요. 누구를 위해서? 오늘 우리 같은 사람들을 위해서 말이오. 여래가 계시지 않을 때 수행자들을 위해서. 깨달음을 얻고자 하는 수행자들은, 즉 보살은 그 마음을 어떻게 다스리고 그 마음을 어떻게 지녀야 합니까? 그렇게 물은 거요. 여러분들도 궁금하잖아. 그죠? 도대체 이 마음을 어떻게 항복 받느냐? 이거는 이 마음을 어떻게 다스리느냐고,
이 마음을 어떻게 머무르느냐? 이 말은 이 마음을 어떻게 가져야 되느냐? 이 마음을 어떻게 가지고 어떻게 다스려야 하느냐? 그를 이 마음을 어떻게 항복 받고 어떻게 머물러야 하느냐? 한문으로는 그렇게 되어 있죠. 묻기는 머무르는 것을 먼저 묻고 항복 받는 것을 나중에 물었지만, 사실은 항복 받는 게 먼저 되고 머무는 게 나중에 돼야 되겠죠. 왜? 먼저 마음을 번뇌를 조복 받고 그것을 계속 어떻게 유지할 거냐? 이렇게 되는 거 아니오.
이렇게 하니까 청하니까 부처님께서 응당히 거기에 대해서 내가 대답을 해 주겠다. 여금제청 당위 여설이다. 네가 지금 청하는 거에 따라서 내 마땅히 너를 설해주리라. 이것이 거울 앞에 물건이 오면 부처님은 그냥 비추죠. 수보리 묻는 말에 그대로 설법이 이루어진다. 이거요.
설법을, 질문을 해 놓고 우리는 보통 그래요. 질문을 해 놓고는 이렇게 대답을 하려고 그러면 답을 하면 자기는 딴짓을 하고 있죠? 안 듣고. 그런 사람 많아요. 질문만 던져 버리고 지는 딴짓 하고 있어요.
대답을 해 주겠다. 마땅히 내가 너를 위해서 설하리라 하니까. 수보리가 마음을 탁 가다듬고 마른 땅에 단비가 내리듯이 목마른 자가 물을 얻듯이 그렇게 간절한 마음으로 법문을 들을 자세를 갖추었다. 그게 뭐다? 원요욕문이다. 원한다. 그냥 원하는 게 아니라. 즐거이, 즐거이 듣기를 바란다. 그러니 마른 땅에 봄이 돼서 싹이 트려 하는데 비가 안 와서 싹이 못 터. 온도도 갖춰서 있고, 씨앗도 있고, 다 됐는데 꼭 한 가지 없는 게 뭐다? 비가 안 와서 싹이 안 텄는데 비가 딱 내리니까 금방 싹이 터 버렸단 말이오.
고무풍선이 탱탱하게 돼 있는데 바늘구멍을 탁 건드리면 어때요? 탕 터져버리죠. 그렇게 탱탱해야 돼. 바라는 게. 기도를 하려면 간절해야 되. 화두를 들려면 그 화두에 간절해야 되. 그래서 선가귀감이나 여기 보면 뭐라 그래요? 얼마나 간절해야 되느냐? 고양이가 쥐 잡듯이. 고양이가 쥐 잡을 때 한눈팔아요? 안 팔아요? 안 팔지. 배고픈 아이가 엄마 찾듯이, 갓난아이가 배고프면 엄마 찾을 때, 딴 생각해요? 안 해요? 안 한단 말이오.
목마른 사람 물 찾듯이. 주린 자가 밥 찾듯이. 그렇게 간절해야 된다. 이거요. 그러니 여러분들은 기도 같은 것이 잘 성취가 잘 안 되는 것은 솔직하게 말해서 간절하게 말 할 것까지 없잖아. 그죠? 뭐 애 시험에 걸리면 좋고. 안 걸려도 그만이잖아. 그거 안 걸리면 내일 죽는 일은 아니잖아. 간절해지겠어? 안 지겠어? 안 져요. 남편 일찍 들어왔으면 좋겠다지만 뭐 안 들어와도 그만이지. 정말 간절한 게 아니란 말이오. 간절하지 않은 걸 자꾸 간절하게 일부러 애쓸 게 없잖아. 간절한 형편이 되면 저절로 간절해지겠어요? 안 간절해지겠어요? 지겠지.
그러니 억지로 간절해지려고 애쓸 거 없어. 아무 의심도 안는데 무라, 무라. 이러니까 밥 먹다가도 잊어버리고, 얘기하다가도 잊어버리고 그러잖아. 그런데 그걸 뭐 하러 잡고 있어. 그런데 정말 인생을 진지하게 살펴보면 야~ 내가 정말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걸까?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줄도 모르면서 바쁘긴 왜 바쁠까? 딴 거 모르겠는데 왜 바쁠까? 이거야. 뭔가 자기 인생을 살피면서 세상을 보면서 아~ 저거 왜 저럴까? 이렇게 간절하면 잊어버리라. 해도 잊어버려 져요? 안 져요? 안 잊어버려 져.
산꼭대기에다가 금덩어리를 묻어놓고 집에 왔는데 어디 묻었는지 며칟날 묻었는지 잊어버려라. 잊어버릴게. 집에 와서 아무리 잊어버린다. 잊어버린다. 잊어버려 져요? 안 져요? 잊어버려 지려면은 그게 더 생생생생 생각이 더 난단 말이오. 왜? 그게 자기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니까. 똥 한 무더기 놔 놓고, 아무 날 아무 시 어디 똥 놔 놨다. 매일매일 외우려고 해도 한 한두 달 지나면 잊어버려요. 왜 그럴까? 중요하시가 않다. 그러니까 잊어버리려면 잊어버리려고 노력하지 말고 무엇을 알아야 된다? 그것이 중하지 않음을 알아야 돼. 아무 그게 쓸모없음을 알아야 되. 아시겠어요?
그러니까 재생이 무상인 줄을 알고, 제법이 공한 줄을 알면 그거 집착하려고 할 거 없이 저절로 안 하게 돼요. 하려고 해도 안 돼. 똥 누고 뒤를 안 돌아 보잖아. 그죠? 돌아볼 이유가 없단 말이오. 또 인생에 정말 진정하게 자기 인생을 관찰하면, 밥 먹거나 놀란다고 잊어버리려야 잊어버릴 수가 없어. 잊어버리려야 잊어버릴 수가 없이 간절하게 참구가 되야 화두지, 아무거나 화두가 아니란 말이오. 옛사람들은 이 누고? 아무개입니다. 이름 물은 줄 알고 대니까. 야 임마 그건 네 이름이지 않느냐? 예. 진짜 넌 누고? 이럴 때 콱 막혀 버린단 말이오.
야 진짜 내가 누구지? 내가 누구지? 그건 이름이고, 그건 몸뚱이고, 그건 생각이고. 그럼 난 뭐야? 이러면 그걸 물으면 밥이 안 넘어간단 말이오. 혼 빠진 사람처럼. 직장에 다니긴 다니지마는 그게 딱 목에 가시 배기듯이 배겨서 꼼짝도 안 한단 말이오. 그럼 어떤 사람은 그 질문에 그럴 거고, 어떤 사람은 딴 문제로 그러겠지. 뉴턴 같은 사람은 사과가 툭 떨어진 거 보고 왜 위로는 안 떨어지고, 옆으로는 안 떨어지고, 하필 밑으로 떨어질까? 우리 같으면 어때요? 야~ 쓸데없는 짓 하지 말고 밥이나 먹어라. 이럴 텐데. 그 사람은 그냥 밤낮 주야로 밥 먹어도 그 생각, 늘 그 생각밖에 안 든단 말이오. 뭔가 이유가 있을 거다. 이거요. 간절해야 뭐가 나오는 거요.
간절하지 않은 건 뭐요? 두 가지밖에 없어. 하나는 제법이 다 공한 줄 알아서 아무것도 세상에 간절하게 없죠. 바라는 마음이 없으니까 간절할 게 있어요? 없어요? 없지. 그렇거나 안 그러면 미쳤거나. 제정신이 아니거나, 혼이 빠져서. 그래서 바보 아니면 천재라 듯이. 깨달은 도인이 아니면 범부 중생이 아니거나, 둘 중의 하나일 거요. 잘 살펴봐요. 자기가 어느 쪽에 속하는지. 잘 살펴보면 안 살펴봐도 알어? 그러니 간절해야 돼.
그러니까 어떤 문제를 풀 때 간절한 거 하고 사로잡힌 거 하고 틀려요. 그걸 해결하기 위해서 간절한 거 하고, 저놈의 시끼 죽일 놈. 이래서 그 생각만 사로잡혀있단 말이오. 내가 왜 이렇게 돼야 하나 하는 그 의문. 그렇게 된 거에 대한 간절한 의문이 있을 때는 상담도 간단합니다. 이렇게 몇 마디 질문만 툭툭 던지면 그냥 고무풍선 터지듯이 텅텅 터진단 말이오. 그러면 스승이 잘 찔러줘서 그러나? 지가 탱탱해서 그러나? 지가 탱탱해서 그래.
왜? 스승이 잘 찔러 줘서 그렇다. 그러면 이 세상에 못 깨달은 거 다 스승 탓이 되니까 그죠? 지가 탱탱하기 때문에. 자기가 탱탱하기 때문에. 그 탱탱하면 가다가 돌부리에 채여서 넘어지다가도 터지고, 대나무 밭에 돌멩이 떨어지는 소리를 듣고도 터진단 말이오. 이 세상에 스승 아닌 게 없어져. 온갖 군데서 깨닫고 원리를 터득하게 된단 말이오. 그런데 고무풍선 바람 빠져 희죽희죽 한 거는 바늘로 찔러도 어때요? 표나 나나? 표도 안 나지. 그러니 간절해야 되. 법문을 듣는 것도 뭐 해야 되고? 간절해야 되고. 기도할 때도 뭐해야 된다? 간절해야 되고. 참회를 할 때도 간절하게 참회를.
아, 정말 내가 잘못했구나. 이렇게 탁 뉘우쳐 줘야 된단 말이오. 화두를 들 때도 간절해야 되겠지. 옴마니반메훔 주력을 할 때도 딱 집중을 해 간절해야 되겠죠. 비파사나 명상을 할 때도 수식관 할 때도, 자기가 그 호흡에 일초일획도 놓치지 않으려고 탁 깨어 있으려고 간절해야 되. 그러면 뭐든지 바라는 바가 이루어진다. 이 말이오. 그러든지 아예 제법이 공한 도리를 턱 알아서 아무 허공에 바람 지나가듯이 하든지. 그렇게 멍청하게 사니까 어렵죠.
그런데 내가 질문을 받으면서 느껴요. 나는 내 딴엔 설명을 잘한다고 했는데. 쪽지를 받아 이래 읽어보면. 내가 도대체 법문을 했나? 안 했나? 싶을 때가 있어요. 그리고 그런 의도로 안 했는데 전혀 따로 받아들이고, 설명을 12번도 더 했는데 또 질문하고. 그러니 아~ 내가 설법을 잘못했구나. 이걸 느껴서. 아는 줄 알고 대충 넘어가서 생기는 거 같애. 좀 더 자세하게 재미있게 세세하게 설법을 해 줘야 되겠구나. 이렇게 느껴요. 질문을 해야 나도 발전이 있어요? 아시겠어요?
질문하는 거를 딱 들으면, 이런 질문 해서가 아니라 엉뚱 질문일수록 하면 엉뚱 질문하는 게 그 사람 책임이라면 그런데. 왜 저런 질문을 할까 하고 나한테 돌려보면, 내가 설법에 문제가 있구나. 이런걸 알 수 있단 말이오. 그러면 나한테 문제가 있는 줄 알면 누가 발전한다? 내가 발전하는 거요. 아시겠어요? 법문 듣고 여러분들이 자기 것으로 하면 누가 발전하고? 여러분이 발전을 해요. 못하는 법문도 잘 들어버리면 누구 게 된다? 자기 게 되고, 나한테는 아무 도움이 안 돼.
그런데 여러분들이 하는 질문은 거꾸로 나한테 도움이 되겠죠. 왜? 내가 뭘 어떻게 해야 될지 새로운 길을 찾아 나갈 수가 있기 때문에. 자 원요욕문이 뭔지 아시겠어요? 그러니 간절한 마음으로 듣기를 바란단 말이오. 그러니까 바로 대승정종분이 나오잖아요. 뜸들일 필요가 있어요? 없어요? 없어. 요점을 바로 얘기해 버린단 말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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