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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에서 대승불교와 소승불교는 어떻게 다른가?

seongsoo 2014. 6. 27. 17:55

불교에서 대승불교와 소승불교는 어떻게 다른가?

 

불교사상을 설명할 때 강의 비유가 자주 쓰인다. 크고 급격한 흐름을 가진 강이 있다. 강의 이쪽(此岸)은 우리가 살고 있는 미혹(迷惑)의 세계 또는 번뇌의 세계이다. 그리고 강 건너 저쪽(彼岸)은 깨달음의 세계이다. 번뇌의 불이 꺼진 고요함의 경지로 불교에서는 이를 열반이라 부른다.

 

불교의 목적은 우리가 이 강을 건너서 깨달음의 세계, 열반의 세계인 피안에 도달하는 것이다. 즉 강을 건너는 것이 불교의 목적이다. 지금, 강의 비유를 들었으므로 건너다()’라고 표현했다. 그러나 굳이 강이 아니라도 된다. “사막을 넘어간다라 해도 좋을 것이다. 그럴 경우에는 (?)’변을 떼고 라고 쓰면 된다. “인연없는 중생은 제도(濟度)하기 어렵다할 때의 그 이다. 하여튼 깨달음의 피안 세계에 도달하는 것이 불교의 목적이다.

 

그럼 강을 건너기 위해서 어떻게 하면 좋을까? 가장 보편적인 방법은 헤엄치는 것이다. 헤엄치기 위해서는 우선 알몸이 되어야 한다. 금은보화를 배낭에 넣어 메고 건너갈 수는 없다. 급류에 쓸려 죽게 될 것이다. 똑같이 가족을 데리고 건너갈 수도 없다. 겨우 자기 혼자 헤엄쳐 건너 갈 수 있을 뿐이다. 아니 자기 혼자라도 헤엄쳐 건너간다는 보장도 없다. 헤엄치는 방법을 모르는 사람은 도중에 익사해 버린다.

이것이 소승불교이다.

 

알몸이 되어 재산도 버리고 처자도 버리고 자기 혼자만이 겨우 피안에 건너갈 수 있을 뿐이다. 알몸이 되어 모든 것을 버린다는 것이 즉 출가(出家)’이다. 소승불교는 출가한 사람만이 피안에 건너갈 수 있는 가능성을 갖고 있다는 가르침이다. 자기 혼자밖에 구제될 수 없기 때문에 소승(小乘)’이라 하는데, 이는 뒤에 일어난 대승불교가 이러한 독선적인 출가중심주의의 불교를 비판하여 낮춰 부르는 것이다. 그리고 자기들의 새로운 불교를 대승불교라고 이름 지었다.

 

대승불교는 큰 탈 것이라는 의미이다. ‘탈 것가르침을 뜻하므로, 대승불교는 많은 사람을 저쪽 깨달음의 피안에 운반할 수 있는 탈 것 즉 가르침이다.

이러한 대승불교가 성립된 것은 인도에서 기원 전후의 일이다(마침 그리스도교의 성립과 비슷한 때이다). 따라서 대승불교의 성립은 석가의 사후 수백 년 뒤가 된다.

 

그럼, 대승불교는 석가와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종교인가. 그 문제에 대해서 대승불교는 다음과 같이 생각하고 있다.

 

 

앞에서 강을 건너가는 비유를 썼지만, 이번에는 바꿔서 등산에 비유해 설명해보자.

 

아무도 올라간 적이 없는 높은 산을 정복하기 위해서는, 처음에는 전문가가 올라갈 필요가 있다. 바른 장비를 가지고 미리 훈련을 한 등산가가 인적이 아직 닿지 않은 산에 올라간다. 처음에는 그것도 실패할지 모르지만 점차 누군가가 선편(先鞭)을 붙여준다. 그렇게 하면 뒤에 오는 사람은 훨씬 편해진다.

이 전문적 등산가가 출가자인 것이다. 석가는 처음부터 비전문가 즉 재가신자(在家信者 : 집에 머무르며 불법을 닦는 일반 신자)를 오르게 하는 것과 같은 무모한 일을 하지 않고 출가자라는 전문가를 오르게 한 것이다. 그들에 의해 길이 닦여진 뒤에는 비전문가도 가볍게 오를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출가자들은 자신들의 등산에만 전념해 있고 재가신자 즉 비전문가의 일을 생각하려 하지 않았다. 재가신자를 오르게 하기 위해 지도를 만들기도 하고 산장을 만들기도 하는 것이 올바른 길인데도 그것을 하려 하지 않았다. 석가는 원래 출가자가 재가자를 위해 가르침을 주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계셨다는 것이 대승불교 측의 주장인 것이다. 소승불교에서는 출가자가 자기 위주의 독선적 사고에 빠져 석가의 근본정신을 잊어 버렸다고, 대승불교는 소승불교를 비난하고 있다.

 

그리고, 대승불교는 석가 본래의 정신에 되돌아와 출가자뿐 아니라 재가의 신자들도 등산을 할 수 있게 된 불교라고 말하고 있다. 이것이 소승불교와 대승불교의 차이다.

 

소승불교라는 것은 대승불교 쪽에서 던진 경멸적 호칭으로, 현재에도 동남아시아에 이 불교를 신봉하는 사람들이 많으나 그들은 물론 자신들을 소승이라 부르지 않는다. 그들 자신의 호칭은 상좌부불교(上座部佛敎)’이다. ‘상좌장로(長老)’라는 뜻이므로 장로파 불교라는 의미가 된다.

 

또 소승불교에서는 대승불교에 대해 날카로운 비난이 있다. 그 첫 번째는 대승불교가 비불설(非佛說)’이라는 것이다. 즉 대승불교는 석가의 사후에 나온 신흥종교로 석가가 직접 설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두번째는 대승불교의 사고방식으로는 불교가 타락할 위험이 있다는 것이 소승불교 사람들의 주장이다. 실제로 대승불교의 일부 스님들이 대처(帶妻 : 아내를 둠)를 하고 있는 것을 보고 동남 아시아의 승려들은 얼굴을 찌뿌린다. 이 점에서는 대승불교도 반성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카페 이름 : 수미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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