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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석 기자와 함께 걷는 옛 고갯길(11)경북 영주 마구령, 장사꾼이 말 몰고 오르내리던…

seongsoo 2013. 10. 5. 18:47

김윤석 기자와 함께 걷는 옛 고갯길(11)경북 영주 마구령, 장사꾼이 말 몰고 오르내리던…

충북·경북·강원 3도의 경계
부석장 보기 위해 넘던 고개
포토뉴스
 산은 나누고 막는 장벽으로서만 존재하지 않는다. 물론 산이 높고 험할수록 산을 경계로 풍습과 말투도 사뭇 다른 독특한 문화를 이루며 살아가지만, 산기슭에 모여 사는 사람들은 끊임없이 서로 넘나들며 동질성을 지키려 애썼다. 산의 이쪽과 저쪽을 잇는 그 중심은 으레 고갯길이다. 태백산과 소백산 사이, ‘양백지간’에 위치한 경북 영주 마구령(馬驅嶺·820m)과 고치령(古峙嶺) 골짝에는 단종의 전설뿐 아니라 <정감록>을 믿는 후예들이 더러 남아 있다.

 백두산에서 남쪽으로 뻗어내려온 백두대간은 태백산을 지나 서쪽으로 방향을 틀면서 국토의 중앙부에 명산 소백산(1,440m)을 펼쳐 놓았다. 소백산의 주봉은 비로봉으로, 국망봉(1,421m), 제1연화봉(1,394m), 제2연화봉(1,357m), 죽령 남쪽의 도솔봉(1,314m)에 이르도록 웅대한 산맥을 형성하고 있다. 역사적으로는 삼국의 치열한 각축장이었고, 오늘날 충북과 경북을 나누고 강원을 아우르며 3도의 경계를 이루고 있다.

 소백산맥을 넘는 3대 고개는 죽령·문경새재·추풍령이다. 예부터 백두대간 소백산 아래 경북 영주에서 충북 단양으로 넘어가는 고개로는 죽령, 죽령 동쪽으로 사람들의 발길이 뜸한 고치령과 마구령이 있다. 죽령이 선비들이 청운의 꿈을 품고 한양으로 향하던 관문이라면 고치령은 소백과 태백을 나누는 고개요, 마구령은 단양 영춘면 의풍계곡에서 민초들이 부석장을 보기 위해 넘나들던 고개다. 마구령과 고치령은 길이 좁고 험해 백두대간을 따라 걷는 등산객들이 찾기 전까지만 해도 인적이 드물었다.

 마구령과 고치령 사이에 위치한 의풍계곡은 <정감록>에 나오는 십승지(十勝地)중 하나로 널리 알려진 곳이다. 의풍계곡은 비결서인 <정감록>과 <유산결(遊山訣)>에 언급되는 ‘양백지간(兩白之間)’, 곧 소백과 태백의 사이에 자리 잡은 까닭에 피란처 중 으뜸으로 꼽혔다.

 예부터 의풍계곡으로 가는 길은 험난했다. 영남에서는 마구령과 고치령이 있어 접근하기 쉽지 않았고, 단양과 강원 영월에선 남한강을 따라 소백산과 태백산 험산준령을 넘어야 했다. 숲이 빽빽해 대낮에도 어두워 길을 잃기 쉬웠으니 임란이나 병란도 비켜간 천혜의 은둔지였다. 한때 <정감록>을 믿는 후예들이 몰려와 좁은 계곡을 따라 200여가구 남짓 살았다는데 지금은 곳곳에 빈집들과 집터만 덩그러니 남아 있다. 하지만 신통하게 효험을 봤다는 사람들은 약초꾼이나 산장지기를 일삼아 이곳을 떠나질 못한다.

 백두대간 마구령은 부석사 인근 임곡리에서 남대리로 넘어가는 고개로, 충북 단양군 영춘면과 강원 영월군 김삿갓면을 마주한다. 장사꾼들이 말을 몰고 다녔던 고개라 마구령(馬驅嶺)이라 하고, 경사가 심해 논을 매는 것처럼 힘들다 하여 ‘매기재’라고도 불린다. 그 이름만큼 고갯길은 험하다. 길은 좁고 발밑으로 깎아지른 벼랑이 아슬하게 서 있다. 돌고 도는 굽이마다 하늘이고, 돌고 돌아서면 좌우가 벼랑이다. 한고비를 넘으면 하늘에 성큼 다가서고, 한굽이를 돌면 하늘 끝에 닿는다. 마구령은 하늘로 오르는 고개다. 어느덧 하늘에서 내려가는 풍경은 오르는 것보다 훨씬 수려하다. 남대리에 내려서면 주막거리를 알리는 커다란 표지석이 발걸음을 세운다. 마구령을 넘어다니던 행상과 선비들이 쉬어가던 주막이 꽤 번창했음을 넌지시 알려주는 지명이다. 산 너머 마을에 장이 서는 날이면 이웃의 단양과 영월 사람들이 나무와 약초 등을 지게에 지고 주막거리를 지나 고치령을 넘어 순흥장과 단산장을, 마구령을 넘어 부석장을 다녔다.

 이곳 남대리는 영주 순흥면에 유배와 있던 금성대군이 ‘단종복위운동’을 주도할 때 병사를 양성하던 곳이라는 이야기도 전해오고, 단종이 잠시 머물렀다는 빗적거리에 단종쉼터와 단종대왕비가 조성돼 있다. 단종쉼터는 집 안에서 말하는 소리가 밖으로 새나가지 않아 ‘생방터’로 불리며, 단종의 수하와 금성대군 사이에 밀지가 오간 곳이라는 말이 전해 온다.

 마구령 지척에 고치령(古峙嶺)이 있다. 고치령은 말 그대로 옛 고갯길로, 단산면 좌석리에서 마락리를 넘어 충북 단양군 영춘면과 연결된다. 고개를 넘는 운치는 마구령보다 고치령이 한결 낫다. 연화교를 지나 고치령 정상까지 4㎞에 걸친 숲과 계곡, 차량도 뜸한 한적한 길, 11월 중순이면 누렇게 물들다 지쳐 떨어지는 낙엽송이 한폭의 그림같이 아름답다.

 고치령 마루에는 산령각(山靈閣)이라 쓰인 편액이 눈에 띈다. 역사 속 비운의 두 인물, 태백산 산신령이 된 단종과 소백산 산신령이 된 금성대군을 함께 모신 곳이다. 숙부인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찬탈당한 뒤 영월 청령포에 유배됐다 관풍헌에서 사사된 단종을 민초들은 태백산의 산신령으로 받들어 모셨다. 어린 조카 단종의 복위를 꾀하다 친형 수양대군에게 죽임을 당한 금성대군은 소백산의 산신령으로 모셨다. 혈육조차 버린 단종과 금성대군의 혼령을 민초들은 이곳 산령각에 함께 모셨으니 소백산 신령 금성대군과 태백산 신령 단종이 산령각에서 하나가 된 것이다.

 고치령을 넘어 마락리로 내려가면 차가운 바람에 낙엽송이 서둘러 누런 잎을 떨어뜨린다. 말이 떨어질 정도로 비탈이 심하고 위험한 길이라 마락리란 이름을 얻은 깊은 골을 따라 돌아가는 길바닥에는 낙엽송이 만든 황금빛 카펫이 깔려 있다. 만추를 수놓는 낙엽송의 풍경도 올해가 마지막일 듯하다. 경제적 가치가 없는 낙엽송을 베어 굽은 길목에 쌓아 놓았다.

 경치는 마락리로 내려가는 길이 좋고, 운치는 좌석리에서 오르는 길이 빼어나다. 마락리를 벗어나면 영춘면 의풍리다. 의풍리는 삼도접경마을로, 십승지에 꼽힐 만큼 오지다. 강원 영월군 김삿갓면, 충북 단양군 영춘면 의풍리, 경북 영주시 단산면 남대리가 접해 있는 곳이다. 행정구역은 달라도 생활권이 같은 한지붕 세가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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