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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성철 스님 다비식 때 먼발치서 절만 아홉 번

seongsoo 2012. 9. 19. 13:58

아버지 성철 스님 다비식 때 먼발치서 절만 아홉 번

성철 딸 불필 스님 가족사·수행 회고 담은 '영원에서' 출간

조선일보 2012.09.19

 

"가라, !"

 

누더기 같은 승복에 부리부리하게 눈만 빛나는 스님이 13세 소녀 이수경(李壽卿)에게 소리 질렀다. 19491, 소녀는 부산 묘관음사로 함께 찾아갔던 삼촌 손을 꼭 잡고 홱 돌아섰다. "삼촌, 우리 집에 가자!"

 

버럭 소리를 지른 스님은 한국 현대불교의 거목 성철(性徹·1912~1993). 소녀는 그의 친딸이었다. 소녀는 그날 묘관음사 아래 바다의 끝없는 수평선을 바라보며 어릴 적 어머니와 자신을 두고 출가해버린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과 미움을 모두 흘려보냈다. "이 세상에 내 아버지 아니었던 사람이 어디 있고 내 부모 안 된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평생 성철 스님을 아버지가 아닌 큰스님이라 불렀던 딸 불필 스님은 큰스님이 입적하셨을 때에도 울지 않았다. 멋지게 살다가 가셨는데 왜 우나?”라고 말했다. 불필 스님 뒤에 성철 스님 사진이 걸려 있다. /이태훈 기자

 

60년 넘는 세월이 흘렀다. 그때의 소녀는 이제 얼굴 여기저기 주름살이 곱게 자리 잡은 노스님이 됐다. 불교계엔 성철 스님의 친딸이자 수행 깊은 선승(禪僧)으로 널리 알려졌지만, 세상과의 접촉은 거의 없었던 불필(不必·75) 스님. 최근 회고록 '영원에서 영원으로'(김영사)를 펴낸 스님이 18일 해인사 금강굴에서 생애 첫 기자간담회를 가졌다.

 

스님은 "올해 (성철)큰스님 탄신 100주년을 맞아 큰스님의 가르침을 조금이라도 더 많은 분이 만날 수 있길 바라서 마음을 냈다"고 했다. 책에는 평생 한 번도 "아버지"라 부르지 못했던 성철 스님에 대한 감정, 어려서 먼저 세상을 떠난 다섯 살 위 언니, 남편과 딸을 절로 보내고 결국 자신도 출가한 어머니 등 그간 잘 알려지지 않았던 가족사와 수행 이야기가 담겼다.

 

불필 스님이 출가하기로 마음먹은 것은 1953년 봄 진주사범에 입학한 뒤, 통영 안정사 천제굴(闡提窟)로 성철 스님을 두 번째 찾아갔던 때였다. 당시 수경은 반항심, 그리고 종교인에 대한 궁금증으로 열심히 교회에 다녔다. 방에 마주앉자 성철 스님이 물었다. "그래, 니는 뭘 위해 사노?" "행복을 위해 삽니더." "그래? 행복에는 영원한 행복과 일시적 행복이 있는기라. 니는 어떤 행복을 위해 살라 카노?"

 

불필 스님은 "큰스님의 말씀을 듣는 순간, 바보가 아닌 이상 일시적 행복이 아닌 영원한 행복을 위해 살겠다고 마음을 정했던 것 같다"고 했다. 그날 성철 스님은 딸에게 10개의 선문답을 던졌고, 딸의 답을 다 들은 뒤 활짝 웃으며 말했다. "니가 10년 걸망지고 다닌 중보다 낫구나." 세상을 등지고 가족을 버린 채 산속에서 가난을 자청해 살던 아버지가 보인 첫 웃음이었다.

 

한 번도 딸을 부녀(父女)의 정으로 대한 적 없는 성철 스님. 이날은 이런 말도 했다. "남자는 다 도둑놈인기라. 그라니 부모 말고는 가까이 말그라."

 

수경은 "부처님은 6년 만에 도를 깨쳤지만 나는 더 열심히 해서 3년 만에 깨치고 돌아 오겠다"고 큰소리치고 출가했다. 1961년 통도사에서 비구니계를 받았다. 출가하는 딸에게 성철 스님은 예비 수행자들을 위해 써뒀던 법문 노트를 쥐여 줬다.

 

불필 스님은 그동안 "숨어 사는 도인이 되겠다"는 성철 스님과의 약속대로 "심산유곡에서 감자나 캐어 먹는 생활, 이 세상에 내 모습을 보이지 않고, 불교계에서 어떤 공직도 맡지 않는 몹시 못난 중노릇을 해왔다"고 했다. 불필 스님은 어머니 입적 때도, 아버지 성철 스님 다비식 때도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법으로 맺은 인연이니까요. 멋지게 살다가 멋지게 가셨는데 뭐 울 일입니까. 큰스님 다비식장에도 가지 않고 멀리 치솟는 다비식 연기를 보며 과거, 현재, 또 미래에도 정성을 다해 따르겠다는 소망을 담아 아홉 번 절을 올렸지요."

 

세상 사람들은 스님의 법명에 대해 석가모니 부처의 아들 '라훌라'(범어로 '장애'라는 뜻)에 빗대 '필요없는 자'라는 뜻이라 말해왔다. "왜 하필이면 불필입니까 물으니 '하필(何必)을 알면 불필의 뜻을 안다'하셨지요. 아마도 내가 이 공부를 다 마칠 때 이 이름을 지어주신 뜻을 깨닫는 것이 큰스님께 보답하는 길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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