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두천 소요산
- 오르는 곳마다 콸콸콸 후련하구나 -
▲ 장맛비가 잠시 주춤했던 6월28일 경기 동두천 소요산의 선녀탕폭포가 시원하게 물줄기를 쏟아 냈다. 선녀탕계곡의 좁은 협곡 사이에서 등산객들이 물에 발을 담그고 더위를 쫓고 있다. 동두천 = 김낙중기자 sanjoong@munhwa.com
‘봄 철쭉, 가을 단풍’의 소요산이지만 여름에도 괜찮다. 산 입구에서 제일 먼저 만나는 원효폭포를 비롯해 자재암 안쪽의 옥류폭포, 하백운대와 상백운대 사이 계곡에 숨어 있는 선녀탕폭포 등 아담한 폭포들이 연이어 나온다. 특히 요즘에 수량이 많아져 볼 만하고 시원한데, 6월28일 찾았을 때는 선녀탕계곡에 물안개도 피어올랐다.
◆ 원효와 요석공주의 사랑
전철로 가기 편한 소요산은 의정부·동두천 등 경기 북부 주민들에게 친근한 산이다. 규모는 작지만 기암괴석의 계곡을 품고 있고, 자재암을 입구로 해서 말굽 모양으로 봉우리들이 둘러쳐져 있어 원점산행이 용이하다. 그렇다고 쉽게 볼 산은 아니다. 제법 가파르고 길어 한 바퀴를 돌자면 넉넉히 4시간은 잡아야 한다.
소요산 이름의 ‘소요(逍遙)’는 장자의 ‘소요유(逍遙遊)’ 편에서 나온 말이다. 현대에는 슬슬 거닐어 돌아다닌다는 의미로 쓰인다. 소요산에는 선가(仙家)와 인연이 있는 조선 중기 매월당 김시습(1435~1493년)과 화담 서경덕(1489~1546년)이 유유자적하며 머물렀다는 얘기들이 전한다. 그 때문에 산 이름이 지어졌다고 하지만, 그보다 앞서 974년(고려 광종 25년)에 이름이 정해진 것으로 기록에 남아 있다. 우리나라 산과 봉우리 이름에는 ‘선도’에서 따온 것이 적지 않아 이상할 건 없다. 요즘에는 평일에 주변 도시의 노인들이 소요산 입구에서 유유자적하며 노닌다.
소요산은 선가보다는 아무래도 불가(佛家) 쪽과 인연이 깊다. 원효대사(617~686년)와 요석공주, 두 분의 아들인 설총의 전설이 깃들어 있다. 신라 제29대 태종무열왕의 차녀인 요석공주가 원효대사와 인연을 맺어 설총을 낳았고, 소요산에 초막을 짓고 수행하던 원효대사를 따라와 수행처 근처에 별궁을 짓고 설총과 함께 기거하며 아침저녁으로 원효가 있는 곳을 향해 절을 올렸다는 것이다. 자재암 부근에는 요석공원이 있고 별궁지 표지석을 세워 놓았다. 공주봉은 요석공주에서 온 이름이다. 제대로 된 근거자료는 없는 얘기들이지만 자재암도 원효가 지은 사찰로 전해진다.
그런데 원효의 전설이 깃든 소요산의 최고봉이 의상대인 것도 재미있다. 알다시피 의상(625~702년)은 원효와 당 유학길을 동행했다가 원효는 도중에 되돌아왔고 의상은 유학을 끝까지 마쳤다. 의상은 ‘유학파’로 국사(國師)의 높은 지위를 누렸지만 원효는 민초들에 섞여 살았다. 그런데 소요산에는 의상대가 공주봉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 경기의 ‘소금강’
서울에서 소요산까지는 직선거리로 44㎞다. 소요산을 두고 ‘한수(漢水)’ 이북 최고의 명산이라 부르는 이들도 있고 경기의 소금강(小金剛)으로도 불린다. 특히 가을에 오랜 세월의 풍화를 겪은 기암괴석이 단풍과 어우러진 모습은 한 폭의 풍경화 같다.
산행은 소요산 주차장에서부터 시작된다. 산의 규모는 작지만 된비알도 여럿이고, 칼바위 등 위험구간들도 있다. 자재암에서 주요 코스가 갈라진다. 길게 타자면 바로 왼쪽 하백운대 방향으로 오른 뒤 시계 방향으로 돌면 된다. 선녀탕과 폭포를 보자면 오른쪽으로 속리교를 건너 죽 오른다. 선녀탕에서는 정상 능선으로 바로 오를 수 있는 길이 여럿 되기 때문에 코스를 놓고 망설일 것은 없다.
소요산에서 가장 힘든 세 코스는 자재암에서 하백운대로 오르는 길과 나한대에서 의상대 사이에 있는 칼바위, 나한대 된비알 등이다. 이번에 가보니 곳곳에 계단을 설치하고 쇠말뚝과 로프로 안전시설을 해놓아 한결 등반이 수월했다. 하백운대로 오르는 길은 아름드리 소나무도 많고, 건너 의상대능선을 보면서 오를 수 있다.
하백운대까지만 올라도 이미 정상 능선을 타게 되는 것이다. 중백운대(510m)와 상백운대(559m)를 지나면 만나는 것이 500m에 이르는 칼바위능선. 조심해야 하지만 좌우로 경관이 좋다. 칼바위능선을 지나면 고도상 100m 이상은 내려가게 되는데 이어 나한대(571m)를 만난다. 그래서 다시 가파른 코스를 오르게 된다. 나한대~의상대능선에서는 동북쪽 광덕산과 화악산, 서쪽 마차산, 감악산이 눈에 들어온다. 의상대 정상은 기대보다 볼품은 없다. 바위로 이뤄져 있고 정상 표지석이 놓여 있다.
의상대에서 공주봉 사이의 코스는 이번 태풍 ‘메아리’로 인해 일부 등산로가 훼손돼 있었다. 굴러떨어진 바위가 길을 막고 있어 조심해야 한다. 공주봉을 거쳐 일주문으로 내려오는 코스가 종주 코스다.
엄주엽기자 ejyeob@munhwa.com/게재 일자 : 2011-07-01 14:17
※ 등산코스
- 소요산역-관리사무소-자재암-하백운대-중백운대-선녀탕-관리사무소(1시간30분)
- 소요산역-관리사무소-자재암-하백운대-중백운대-상백운대-관리사무소(2시간30분)
- 소요산역-관리사무소-자재암-하백운대-중백운대-상백운대-나한대-의상대-공주봉-관리사무소(4시간)
여기, 아세요? 108 계단 오른 뒤 번뇌 씻는 ‘해탈문’
▲ 원효대 해탈문(解脫門)
동두천시는 최근 소요산 원효대 코스에 ‘해탈문’을 설치했다. 해탈문은 108계단 위에 세워졌고 불교의 윤회를 형상화한 4조각의 나무로 구성됐다. 108 번뇌를 의미하는 108계단을 올라온 뒤 속세의 수많은 번뇌를 벗고 해탈의 경지에 이른다는 뜻을 담고 있다고 한다. 지역 주민들이 일상에서 벗어나 소요산에 와 그동안 쌓인 번뇌와 스트레스를 떨치고 새로운 마음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하고자 만들게 됐다고 한다.
▲ 소요산 풍혈(風穴)
소요산에도 풍혈이 두 군데가 있다. 겨울에는 더운 바람, 여름에는 찬바람이 나오는 구멍을 말한다. 모두 이 산을 자주 타는 지역 주민들이 발견했다.
공주봉 풍혈이 조금 더 크다. 이 풍혈은 공주봉 북서릉상 헬기장 북쪽에 숨어 있다. 약 4m 깊이 바위 웅덩이 속으로 내려서면 남쪽 방향으로 폭 1.5m로 벌어진 바위 틈이 있는데, 그 안쪽 약 2m 깊이 틈에서 바람이 나온다. 이 바람은 겨울에는 눈을 녹일 정도로 따뜻하고 여름에는 시원하다. 중백운대에서 50m 떨어진 곳에도 풍혈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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