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기는 수행의 일부…‘우행호시’의 자세로
스님들은 하루 중 많은 시간을 앉아서 참선하는데 소비하지만 그에 비례해 많이 걷는다.
사실 스님들만큼 많이 걷는 사람들도 드물 것이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평생을 길 위에서 걷고 길 위에서 열반에 든 것처럼 불교의 수행자들은 걷는 것을 수행과 전법의 기본으로 삼는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스님들은 걸을 때도 엄격한 법도와 방식이 있다. 그리고 종류도 다양하다.
참선하다 중간에 일어나 가볍게 걷는 것부터 화장실이나 법당 예불 혹은 공양을 하러갈 때 단체로 걷는 방식이 따로 있으며, 법당 주변이나 산길을 산책할 때 걷는 법도 별도로 규정되어있다. 또 먼 길이나 마을에 들어갈 때는 어떻게 걸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엄격한 법도가 있다.
스님들은 걷는 것 조차 수행이고 마음공부인 것이다. 스님들의 걸음을 가장 잘 드러내는 말이 우행호시(牛行虎視)다. 평소 몸가짐을 소처럼 진중하고 호랑이처럼 깨어있어 라는 선가(禪家)에 내려오는 경책인데, 수행자의 걸음걸이와 자세를 말하기도 한다.
즉 소처럼 조심스럽게 걷되 눈은 시퍼렇게 살아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보조국사 지눌 스님의 비문에는 스님에 대해 “스님은 또 위의를 잘 거두어 항상 우행호시(牛行虎視)로 지내시면서, 힘드는 일과 운력하는데 있어서는, 항상 대중에 앞서 솔선하였다”고 적혀있다. 〈삼국유사〉를 쓴 일연스님도 우행호시 했다고 하니 이같은 자세는 수행자들이 갖춰야할 최상의 자세임을 알 수있다.
부처님은 어떻게 걸었을까. 부처님의 가장 유명한 걸음은 역시 태어난 순간의 일일 것이다. 부처님은 태어나자 스스로 사방으로 일곱 걸음을 걸었다고 한다. 그리고는 “천상천하(天上天下) 유아독존(唯我獨尊) 삼계개고(三界皆苦) 아당안지(我當安之)”라고 외쳤다. “하늘과 땅 사이 에 나 홀로 존귀하다. 세상이 모두 고통이니 내 마땅히 이를 편안케 하리라”라는 이 탄생게는 사실은 보편적인 인간성의 존귀함을 선언한 것이다. 부처님이 태어나자 마자 걸었다는 것은 계급 인종 지위 귀천을 떠나 인간은 누구나 불성을 가진 귀한 존재라는 위대한 선언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사분율〉 21권을 보면 부처님이 “뒷짐을 진 이에게 법을 말하지 말라”고 한 것을 보아 뒷짐 지고 걷는 것을 경계했음을 알 수 있다. 부처님은 비구들이 뛰어다니거나 몸을 흔드는 것도 위의가 아니라며 금지했다. 하지만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사분율〉 제 30권에는 부처님이 뛰어다녀도 좋은 예를 들고 있다. 뛰어다닐 수 밖에 없는 병이 있거나, 도적, 나쁜 짐승을 만나거나, 가시를 지고 오는 사람을 피하기위해서, 혹은 강 도랑 진흙을 건너거나, 옷을 입었는데 가지런히 되었나 보기위해 몸을 뒤돌려 보는 것은 괜찮다고 했다. 부처님이 경계한 것은 “남한테 잘보이기 위해 몸을 뒤틀거나 흔드는 행위”였다. 비구보다 비구니에게 더 엄격했다.
걸음걸이는 중국에서도 엄격하게 규제했다. 종색선사의 ‘선원청규’ ‘출입’편에서는 “사찰 바깥을 나설 때는 주지, 수좌, 서장 등 순서대로 나란히 선다. 질서정연하고 위엄있게 걸어가며, 들쭉 날쭉 걸어서는 안된다. 걸을 때는 좌우로 쳐다보거나 웃고 떠들며, 큰 소리로 말해서는 안된다. 또 손을 드리워 팔을 흔들어서도 안된다”고 했다. 한 줄로 서서 조용히 앞만 보며 걸어야한다는 말이다.
그러면 스님들의 걸음걸이에는 어떤 종류가 있는가. 스님들이 가볍게 걷는 것 중에 경행(經行)이 있다. 경행이란 행선(行禪)의 일종으로 참선 중간에 잠시 걷는 것을 말한다. 보통 선방에서는 50분 좌선하고 10분 경행 즉 행선을 하는데 이때 스님들은 방을 돌며 졸음을 쫓고 오래 앉아있는 동안 굳어진 다리의 근육과 긴장을 푼다. 경행의 방법은 두 손을 모아 복부에 두며, 한 발짝 움직일 때마다 화두(話頭)를 한번씩 염한다. 경행을 하는 곳은 강당 외에도 한적한 곳, 집 앞, 강당앞, 탑 아래, 전각아래 등이다. 〈계초심학인문〉에서는 “경행(經行)을 할 때는 옷깃을 벌리고 팔을 흔들지 말라”고 했다. 경행은 참선 중간에 잠시 쉬는 것이기 때문에 이 때도 화두를 놓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스님들은 말한다.
걷는법 중에는 가볍게 걸으며 몸을 푸는, 포행(布行)이 있다. 포행은 경행보다는 멀리 움직인다. 요즘 선방에서는 공양을 마치고 1시간 가량 사찰 뒷산 등을 걸을 때 ‘포행한다’고 한다. 포행을 하기 전에는 게송을 외워야한다. 〈사미율의〉 ‘선당에 들어가는 편’에서는 ‘상(床)에서 내려올 적에는 가만히 게송을 외워야한다“며 “
종조인단직지모(縱朝寅旦直至暮)
일체중생자회호(一切衆生自廻護)
약어족하상신형(若於足下喪身形)
원여즉시생정토(願汝卽時生淨土)
아침부터 저녁까지 저 중생들 잘 비키리. 내 발 밑에서 죽거들랑 극락에서 가거라 하며 ‘ 옴시리 일리 사바하’를 7회 외운다”고 했다. 상에서 내려온다는 것은 밖에서 걸음을 옮기는 것을 말한다.
포행을 하기전 외는 게송 속에는 혹시 발에 밟혀 다치거나 죽는 생명이 있을 까 염려하는 마음이 들어있다. 걸을 때는 “큰말로 소리 지르면 못쓴다. 문의 발을 살그머니 들고, 다 내린 뒤에 손을 떼라.
신발을 끌어 소리내면 못쓴다. 큰 기침하거나 가래 돋구면 못쓴다"고 했다. 포행을 할때는 도반과 조용히 말을 나누거나 혼자 상념에 잠긴다. 이처럼 걷는 것에도 수행자의 위의와 생명에 대한 경외심이 서려있는 것이다.
단체로 걷는 방식도 있다. 해우소를 가거나 예불, 공양하러 갈 때 적용되는 방식인데 안행(雁行)이라고 한다. 기러기 행렬처럼 길게 줄을 짓는다고 해서 붙혀졌다. 해우소를 갈 때는 대중이 모여서 이동하며 먼저 ‘볼일’이 끝났다고 해서 혼자 오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기다렸다가 함께 움직여야 한다.
이처럼 걷을 때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자세가 두손을 가지런히 모으는 차수(叉手)다. 오른손을 왼손위에 포개는 방식이다. 걸을 때는 말을 해서는 안된다. 허리를 펴고 고개를 들되 눈은 15도 방향 전방을 주시한다. 절대 이러저리 두리번 거려서는 안된다. 왜 이토록 걷는 방식이 까다로울까. 걸음걸이도 수행이기 때문이다. 절대 마음을 놓지 말고 수행자로서의 위의를 철저하게 갖추어야 한다는 의미에서 이처럼 엄격한 법도를 마련했다.
〈초발심자경문〉에서는 “걸을 때는 옷깃을 벌리고 팔을 흔들지 말라”고 했다. 스님들은 초발심 시절에 배운 이 규정을 엄격히 지킨다. 오늘날에도 이 걷는 법은 엄격하게 지켜지고 있다.
스님들은 지금도 여러 명이 한꺼번에 움직일 때는 안행을 하며 반드시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걷는다. 하지만 모든 스님들이 이같은 법을 따르는 것은 아니다. 보통은 배우는 과정에 있는 강원 학인이나 행자들, 그리고 선방 스님들이 엄격하게 지킨다. 다만 웃고 떠들거나 어지럽게 걷는 스님들은 없다. 어른 스님을 모시고 걸을 때는 앞서거나 나란히 걸어서는 않되고 뒤에서 약간 비켜서서 걷는다, 다만 어른을 부축해야 할 때는 옆에서 팔을 잡고 부축해서 걷는다.
다른 규칙에 비해 걷는 법은 스님들도 자신만의 고유한 자세를 쉽게 고치지 못한다. 팔자 걸음을 걷거나 종종걸음으로 빠르게 걷는 등 한번 굳어진 자세를 고수하는 스님들이 많다. 총무원장을 지낸 한 스님은 늘 앞으로 넘어질 듯한 자세로 걸었다. 행정에 밝았던 이 스님은 무척 바쁜 편이었다. 성질도 아주 급했다고 한다. 발을 떼기도 전에 급한 마음에 상체부터 나갔기 때문에 이같은 걸음걸이가 습관으로 굳어졌다고 한다. 너무 빨리 걸어 시자스님들이 따라잡느라 많은 고생을 했다. 이 스님 뿐만 아니라 스님들은 발걸음이 빠르기로 유명하다. 그렇다고 자세를 흐트러 뜨리는 것은 아니다. 험한 산길 등을 자주 걸어 자연스럽게 걸음걸이가 빨라진 것이다.
종정을 지낸 성철스님을 모셨던 상좌 원택스님은 이 때문에 고생을 많이 했다고 한다. 성철스님은 빠른 걸음으로 유명했다. 혜암스님은 빠른 걸음으로 이틀 걸리는 마곡사에서 수덕사까지를 하루만에 갈 정도로 빨랐다고 한다. 베트남의 틱낫한 스님은 아주 느린 걸음으로 한걸음 옮길 때마다 ‘부처님’을 명호하며 서있을 때는 명상하는 독특한 걸음걸이를 수행의 한 방식으로 삼고 있다.
스님들은 걸을 때 삿갓을 쓰고 죽장이나 지팡이를 드는 것이 일반적인 ‘패션’이다. 요즘은 삿갓 대신 챙이 앞으로 나온 모자를 쓴다. 죽장은 걷는 힘을 덜어주는 역할도 하지만 죽장위에 달린 방울 소리로 미물들이 미리 피하도록 경고 하는 의미도 있다. 지금도 스님들의 발걸음은 일반인들로서는 따라가지 못할 정도로 빠르다. 특히 험한 산길을 걸을 때는 마치 축지법을 쓰는 것처럼 빠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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