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안 개암사 가는 길
백제의 눈물 흩뿌린 자리… 천년 세월 눈꽃으로 피었네
신년의 서설(瑞雪). 내린 눈이 쌓이고, 그 위로 폭설이 또 내려 덮었습니다. 전북 부안의 너른 들판이 며칠 동안 계속된 폭설로 온통 눈 세상이 됐습니다. 지붕마다 한 자가 넘게 눈이 덮였고, 눈으로 길이 다 지워졌는데도 눈발은 그치지 않았습니다. 곰소항에 가지런히 말려 놓은 물메기며 갈치 위에도 눈발이 분분하게 흩날렸고, 곰소만의 갯벌에서 바지락을 잡는 이들의 어깨 위에도 눈발이 내려앉았습니다. 곰소포구에서 출항을 준비하며 장작불을 쬐던 어부는 신발에 묻은 눈을 털어내면서"거 눈 참 지긋지긋하게도 온다"고 푸념처럼 혼잣말을 했습니다.
전북 부안 개암사 뒤편에 우뚝 서있는 울금바위. 빠른 걸음으로 20분이면 가닿을 수 있는 울금바위 거대한 암봉 아래는 백제 멸망후 부흥군을 이끌던 복신이 머물렀다는 ‘복신굴’이 있다. 백제의 패망, 그리고 옛 왕국을 되살리려던 유민들의 꿈이 거기 있다.
눈발이 흩날리는 부안의 들판을 지나고 곰소만의 너른 갯벌과 포구도 지나서 개암사로 향합니다. 눈으로 지워진 산길을 조심스레 더듬어 가는 길. 그 길 끝에 개암사의 다 지워진 단청의 대웅보전이 눈을 뒤집어쓴 채 갓 세수한 처자의 얼굴처럼 단아하게 서 있었습니다. 눈을 쓸어낸 싸리비 자국이 선명한 절집 마당은 쌓인 눈이 소리를 빨아들여 고요한데, 간혹 대웅전 처마 끝에 매달린 풍경만이 바람을 따라 뎅그렁거리고 있었습니다.
개암(開巖). 찻잔을 앞에 놓고 개암사 주지 스님은 '바위(巖)를 열다(開)'란 뜻의 절집 이름을 일러 '상서로운 기운'을 말한다고 했습니다. 스님 말을 되뇌다가 개암사 지붕 뒤편에 우뚝 솟은 울금바위에 절로 눈길이 갔습니다. 절 집을 향해 문을 활짝 열어젖힌 것 같은 바위의 모습. 개암사에서 눈 쌓인 산길을 짚어 울금바위를 향해 오르는 길은 옛 백제로 떠나는 여정에 다름 아니었습니다. 눈 세상의 숲길을 걸어 복신굴과 원효굴, 주류성이었던 울금성을 만났습니다. 오래된 시간이 쌓이고, 그 위로 지나간 시간이 또 덮인 역사. 패망한 역사의 마지막 자취는 쓸쓸했습니다.
눈이 많기로 이름난 곳, 부안. 울금바위를 들렀다가 내변산 쪽으로 행로를 잡아 사방을 눈으로 둘러친 직소폭포로 드는 여정을 보탰습니다. 가을의 초입부터 가뭄으로 메말라 끊어졌던 폭포의 물줄기가 폭설이 내리면서 이어지고 있다고 했습니다. 오르내림이 거의 없는 부드러운 눈길을 따라 산중 호수를 거쳐 폭포까지 이르는 길은 마치 선경과도 같아 '노고없이 만난 횡재'처럼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부안에서 쓸쓸함으로 말하자면 겨울 모항의 바다와 곰소만의 적막을 빼놓을 수 있을까요. 썰물 때 바다가 멀리 물러나면서 드러난 곰소만의 갯벌은 은박지처럼 차갑게 빛났습니다. 그 갯벌 위에서 아낙네 몇몇이 혹한에도 갯벌을 긁으며 바지락을 잡아내고 있었습니다. 주말에는 어떨는지 모르지만 평일의 곰소항에서는 찬바람에 좌판의 생선들이 쩡쩡 얼어붙었습니다. 상인들만 무료하게 앉아 손님을 기다리는 사이, 잠시 그쳤던 눈발이 다시 흩날리기 시작했습니다.
개암사는 백제 무왕 35년(634)에 묘련대사가 세웠다고 전하는 절이다. 개암이라는 이름은 기원전 282년 변한의 문왕이 진한과 마한의 공격을 피해 이곳에 성을 쌓을때, 우(禹)장군과 진(陳)의 두 장군으로 하여금 좌우 계곡에 왕궁의 전각을 짓게 하였는데 동쪽을 묘암, 서쪽을 개암이라고 한데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고려 충숙왕 1년(1314)에 원감국사가 이곳에 와서 절을 다시 지어 큰 절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으며, 그 뒤에 여러번 수리가 있었다.
석가모니불상을 모시고 있는 대웅전은 앞면 3칸·옆면 3칸 크기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만든 공포가 기둥 위뿐만 아니라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으로 꾸몄다. 우람한 기둥 덕에 안정감을 주고 있으며, 조각기법에서도 세련미가 있는 건물로 조선 중기의 대표적인 건축이다.
절 위로는 500여 m 떨어진 곳에 울금바위라는 큰 바위가 있다. 이 바위에는 세개의 동굴이 있는데, 그 중 원효방이라는 굴 밑에는 조그만 웅덩이가 있어 물이 괸다. 전설에 의하면 원래 물이 없었으나 원효가 이곳에 수도하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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