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뭡니까

함바(はん-ば, 飯場)집에 갇힌 사람들

seongsoo 2011. 1. 20. 09:17

□ 함바(はん-ば, 飯場)집에 갇힌 사람들

2011년 01월 19일 (수) 울산매일 김병길 주필 편집이사

 

1978년 6월 어느 날 정치부 기자 L선배는 전세 아파트를 구하기 위해 복덕방을 찾았다. “평당 분양가 30만원이었던 어느 아파트 분양가가 준공도 되기 전에 3배 이상 뛰었다”는 등 쇼킹한 소문을 듣자 귀가 쫑긋했다. 당시 서울에선 강남지역에서 시작된 아파트 분양 열기가 절정에 달했다. 그런 아파트 열기를 타고 현대는 1975년 3월부터 강남의 압구정동에 대단위 아파트 타운 건설에 착수했다.

 

총 728가구의 절반은 사원용, 절반은 일반 분양용으로 승인 받아 지었는데 평당 분양가가 엄청나게 뛰었다. 복덕방의 얘기 중 사원용으로 승인받은 아파트를 사원이 아닌 일반인들, 그것도 특수층에만 특혜분양 하고 있다는 얘기는 심상찮았다. 1978년 6월30일 L선배의 기사로 소문이 사실로 드러난 이 사건은 그해 내내 아파트 투기 열기와 함께 세상을 뜨겁게 달구었다.

 

6월30일 사정당국은 특혜분양을 받은 이른바 ‘사회지도층’인사 600여명을 밝혀내고 해당 부서와 직장에 통보했다. 특혜 분양을 받은 고급 공무원, 장성, 언론인 등 259명의 명단이 언론에 공개됐다. 그중엔 공직자 190명, 국회의원 6명, 언론인 34명, 법조인 7명, 예비역 장성 6명 등이 포함됐었다. 그리고 뇌물 수수자 5명 구속, 공직자 26명 파면·사직 등 40여명이 처벌됐다. 시중에선 이들을 ‘아파트에 갇힌 사람들’이라고 했다.

 

이 사건에 연루된 언론인 중 신문사를 사직 한 뒤 후일 정계에 진출한 모씨는 “공직생활에 큰 교훈이 됐다”고 술회했다. 그에겐 큰 교훈이 되었는지는 몰라도 이 사건은 우리 사회에 아무런 교훈을 남기지 못했다. 이후 더욱 극성스럽고 교활한 수법의 아파트 분양 비리와 각종 부정부패 사건이 줄줄이 어어졌기 때문이다.

 

33년전 ‘아파트에 갇힌 사람들’이후 2011년에는 ‘함바집에 갇힌 사람들’로 세상이 시끄럽다. 부하들의 청렴을 강조해온 경찰청장이 함바(건설현장 식당) 운영권 로비 대상이 돼 일파만파 줄소환 사태가 벌어졌으며 함바 브로커의 비리는 전천후로 건설현장이면 어디든 드러났다.

공권력을 최일선에서 집행하는 경찰청장의 비리는 개인 비리로 끝나지 않고 국가 공권력 자체를 웃음거리로 만들고 말았다. 경찰청이 제출받은 자진신고서에 따르면 전국의 총경 이상 간부 41명이 브로커 유상봉씨를 직접 만났거나 전화통화를 했다.

 

강 전 청장은 작년 11월 경찰 인사를 앞두고 “인사청탁을 한 사람에겐 불이익을 주겠다”고 공개 경고까지 했다. 브로커 유 씨가 경찰서장들에게 청장과의 친분을 과시하며 “승진 청탁하려면 지금 하라”고 떠들고 다닐 때 였다. 그 시각 “인사 청탁하면 불이익 주겠다”고 했으니 청장의 말은 코미디로 들렸을 것이다. 위가 이러니 말단에서는 유흥업소 단속 정보를 흘려주고 뒷돈을 챙기는 일이 이상할게 없다.

 

‘생선이 썩을 때에는 머리부터 썩는다’는 명언이 있다. 꼬리는 제일 나중에 썩는다. 사회도 마찬가지다. 권력층이 먼저 부패 하고 국민이 그 뒤를 따른다. 이른바 ‘사회지도층’이 법을 어길 때 국민이 그 본을 따른다. 법에 걸리지 않는다고 모두 무죄가 되는 건 아니다. 가령 100억원 중에 단 몇 백만원의 떡고물이 몸에 묻어도 ‘사회지도층’의 경우에는 충분한 범죄행위가 된다. 비리의 배경에 권력이 도사리고 있었다면 더욱 그렇다. ‘법은 거미줄과 같다. 작은 벌레들만 걸려든다.’발자크가 그런 말을 했을 때 프랑스 사회는 부패할 대로 부패했을 때 였다. 권력과 금력이 판을 치던 때였다.

 

학교에서 가난한 어린이가 옆 아이의 색연필이 탐이 나서 훔치다 들키면 선생님으로부터 호되게 벌을 받는다. 그러나 힘센 아이라면 훔칠 필요가 전혀 없다. 그저 “잠깐 써보자”고만 하면 된다. 힘센 아이의 환심을 사기 위해 자진해서 진상하는 아이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힘센 아이는 조금도 법을 어기지 않았다. 그렇다고 연필을 훔친 아이보다 착하다 할 수는 없다.

 

범죄는 한 시대, 한 사회의 거울이다. 어떠한 형태의 범죄가 유행했는가로 그 사회를 헤아릴 수 있다. 그런 면에서 ‘함바집에 갇힌 사람들’을 보면 요즘 사회의 병리를 그대로 반영한 것이나 다름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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