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登 香爐峰(등 향로봉)
西山大師
萬國都城如蟻蛭 만국도성여의질
千家豪傑若醯鷄 천가호걸약혜계
一窓明月淸虛枕 일창명월청허침
無限松風韻不齊 무한송풍운부재
만국의 도성은 개미집과 한가지요
천가의 호걸은 초파리와 같도다.
한창에 비친 밝은 달을 (청허(=서산대사)가) 베개로 삼으니
한없는 솔바람 운치가 그지없네.
☞ 서산대사(西山大師) 1520(중종 15) ~ 1604(선조 37).
속명은 최여신(崔汝信). 본관은 완산(完山). 자는 현응(玄應), 호는 청허(淸虛). 법명은 휴정(休靜). 묘향산에 오래 머물렀기 때문에 묘향산인(妙香山人) 또는 서산대사(西山大師)로 불림.
12세 때 성균관에 들어가 3년 동안 글과 무예를 익힌 다음 15세 때 과거를 보았으나 낙방함. 이후 동료들과 함께 지리산의 화엄동(華嚴洞)·청학동(靑鶴洞)·칠불동(七佛洞) 등을 유람하다가 숭인장로(崇仁長老)의 권유로 불교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선법을 깨닫고, 숭인에게 출가, 21세에 영관(靈觀)대사에게 인가를 얻고 촌락을 돌아다니다가 정오에 낮닭 우는 소리를 듣고 활연대오(豁然大悟)하다.
30세에 선과(禪科)에 합격 대선(大禪)에서 양종판사(兩宗判事)에 올랐으나 곧 이를 버리고 후학을 지도하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8도 16종 도총섭(都摠攝)이 되어 의승군을 모아 평양탈환작전에 공을 세움. 그 후 군사를 유정과 처영에게 맡기고 묘향산으로 돌아감.
그의 제자는 1,000여 명이나 되었는데, 그중에서도 사명유정(四溟惟政)·편양언기(鞭羊彦機)·소요태능(逍遙太能)·정관일선(靜觀一禪)의 4대 제자가 조선 후기의 불교계를 주도하게 되었다.
저서로는 문집인 〈청허당집(淸虛堂集)〉을 비롯하여 〈선교석(禪敎釋)〉·〈선교결(禪敎訣)〉·〈심법요초(心法要抄)〉· 〈선가귀감(禪家龜鑑)〉ㆍ〈삼가귀감(三家龜鑑)〉·〈설선의(說禪儀)〉·〈운수단 雲水壇〉등이 있다.
묘향산 안심사(安心寺)와 금강산 유점사(楡岾寺)에 탑이 세워졌으며, 해남 표충사(表忠祠)와 밀양 표충사 및 묘향산의 수충사(酬忠祠)에 제향되었다.
※ 위의 시는 서산대사께서 금강산 향로봉에 올라 감회를 읊은 시인데 이 시를 요승(妖僧) 무업(無業)이 무고하여 정여립의 난에 연루된 혐의로 체포 되었으나 무혐의로 선조에 의해 석방되었을 뿐만 아니라 상찬(賞讚)을 받음.